나는 없는 게 참 많은 사람이다. 회사 다니면서 그나마 조금 모은 돈을 프리랜서하면서 까먹는 중이고 차는커녕 운전면허도 없으며 집도 당연히 없다. 월세를 감당할 돈도 없어서 부모님집에 얹혀 살고 있다.
스펙도 이렇다 할 경력도 능력도 없고 친구도 별로 없다. 유학을 다녀오긴 했지만 유학생활과 성적은 형편없었고, 되지도 않을 고시를 준비하느라 7년을 날렸다. 그러니 현실감각마저 없다. 평생 연애경험도 없는 모솔이다.
그렇다고 내 인생이 엄청 불행했던 건 아니다. 그냥 뭐가 좀 없었을 뿐. 사실 회사다닐 때도 그렇고 어느 정도 운이 따라준 적도 있었다. 가족도 있고 얹혀 살 집이 있고 정말 좋은 친구도 하나 있고 어쨌든 먹고사는 데 기여하는 졸업장도 있고 얼마 안 되지만 돈도 있다. 오히려 나는 고생 안 하고 자랐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다.
사회에서 생각하는, 나이대에 따라 완수해야 하는 퀘스트라는 게 있는데 나는 그걸 하나도 완수하지 못했다. 대학 졸업 이후에는 남들의 페이스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남들이 취직하고 돈 벌고 할 때 나는 방구석에 틀어박혀 고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들이 이제 어느 정도 밑천을 마련하고 차를 사거나 집을 살 때 나는 겨우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진 것도 이룬 것도 하나 없이 나이만 먹었다. 그나마 번역가로 데뷔해서 나온 첫 책이 첫 결과물이었다. 그전까지는 무언가를 해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항상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래서 내 자신에게 수없이 채찍질을 했지만 그걸로 얻은 건 정신질환과 건강 악화뿐이었다. 아무리 자신을 채찍질해도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20대에도 30대에도 내 나이와 내 현실을 생각하면 숨막히게 불안했다. 지금도 그렇다. 모든 게 너무 늦은 것만 같고 이 나이 돼서야 내 일을 찾았으니 이래서 살아갈 수나 있는지 여전히 불안하다. 궁금했다. 나처럼 이렇게 이룬 거 없이 나이만 먹었어도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사람이 있기는 한지. 성공기보다는 아무것도 극복하지도 성공하지도 못한 사람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너만 그런 거 아니라고. 그래도 다 살아진다고. 괜찮다고 해주는 그런 얘기가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은 뭔가 특별한 부분이 있거나 뭔가를 이겨냈거나 이루어낸 사람들의 얘기뿐이었다. 그래서 어딘가에 있을 나같은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그냥 나같이 인생을 낭비하고 뭐든 해내기보다는 회피만 하던 인간도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고. 뭐가 많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살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역경을 극복한 성공기는 쓸 수 없다. 한때 무언가 극복했다고 착각했던 적도 있었으나 결국 극복이란 없었고 성공보다는 실패와 패배에 익숙하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내가 오랫동안 부끄러워 숨겨온 나의 비밀이자 치부다. 사실 나는 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난 날의 나를 용서해주고 위로해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