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김치를 못 먹는다고?

by toddle


어렸을 때부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뭔가 잘못돼 있고 이상하다, 지금 이대로 괜찮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보통 사람들처럼 할 수 없는 게 많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 적도 없었으니까.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가 편식, 특히 김치를 못 먹는 거였다.

어릴 때부터 편식이 심했다. 야채는 거의 못 먹었는데 당연히 김치도 못 먹었다.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리고 싫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특히 총각김치나 깍두기 냄새가 견디기 어렵다.

어릴 때 밥상에서 아빠가 억지로 먹이려고 윽박지른 적이 있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어쩔 수 없이 입에 넣었는데 생리적으로 안 맞는 건지 심리적인 거부감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구역질이 났다. 그래서 더 혼났다. 이거 먹는다고 죽냐고. 어쩔 수 없이 구역질을 하면서 꾸역꾸역 삼켰다.

친척들, 특히 우리 외가 친척 어른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참 지적질이랑 싫은 소리를 잘했다. 그래서 싫어했다. 그런 사람들이 밥상머리에서도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같이 밥 먹을 때마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너는 한국 사람이 김치도 못 먹냐고.


나는 김치를 못 먹는 내가 부끄러웠다. 왜 남들 다 먹는 걸 나는 먹을 수 없을까. 내가 뭔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도저히 먹을 수는 없어서 대신 못 먹는다는 숨겼다.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거나 할 때는 나는 집김치 아니면 안 먹는다고 거짓말을 했다. 김치를 못 먹는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까 두려웠으니까.


그러다 고등학교 때 한 친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너무도 당당하게 자기는 김치를 안 먹는다고 했다. 나는 거짓말까지 하며 숨겨온 사실을 그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했다. 저래도 되는 거구나 하는 걸 처음 느꼈다. 그때까지 내 좁은 세계에는 김치를 못 먹는 사람도, 못 먹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처음 봤다. 아, 못 먹는 사람도 있는 거구나, 말해도 되는 거구나, 못 먹어도 저렇게 당당할 수도 있구나. 너무 충격적이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하지만 그 친구를 보고도 몇 년을 더 거짓말하며 살았다. 저래도 된다는 걸 안다고 갑자기 나도 당당해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는 케첩도 마요네즈도 못 먹었다. 그냥 먹어본 적도 없고 어떤 맛인지도 모르는데 거부감부터 들었던 것 같다. 햄버거를 먹을 땐 야채를 전부 빼고 빵과 패티만 먹었고 감자튀김은 케첩을 찍지 않고 그냥 먹었다.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케첩도 먹고 야채도 몇 가지는 먹을 수 있게 되고 김치는 못 먹어도 김치볶음밥이나 김치부침개는 먹을 수 있게 됐다. 안 먹어본 음식에 대한 거부감도 많이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식집 가서는 김치를 안 먹고 중국음식 먹을 땐 단무지를 안 먹고 치킨 먹을 땐 치킨무를 안 먹고 피자 먹을 땐 피클을 안 먹는다.


이제는 못 먹는 건 못 먹는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긴 했다. 뭘 못 먹는다고 하면 별 반응 없는 사람도 있고 이걸 못 먹느냐고 놀라는 사람도 있는데 그냥 그러려니 넘길 수도 있게 됐다. 그래도 여전히 누가 왜 안 먹느냐고 물어보지 않는 한 말하지 않는다.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굳이 알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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