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유학생

by toddle

나는 어릴 때 서양을 무척 동경한 사대주의자였다. 세계 지도 보는 걸 좋아했고 세계사도 좋아했다. 항상 외국에 나가보고 싶었다. 유학을 가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도피처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살아가는 환경에 만족하질 못했으니까.


어릴 때는 한국이 싫었다. 특히 유교 사상이 너무 싫었다. 나는 내가 납득이 안 가면 어른들에게 꼬박꼬박 말대답을 하고 대드는 애였어서 버릇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서양에서는 한국인인데 김치도 못 먹는다느니, 여자애가 칠칠맞지 못하다느니 그런 말을 안 들을 것 같았다. 나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평등하고 모든 게 합리적일 것만 같았다. 대체 그때의 나는 무슨 유토피아를 상상하고 있었던 걸까? 거기는 여기와는 완전히 다른 아주 좋은 곳일 것만 같았고, 무엇보다도 거기 가면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줄 알았다. 내가 지금 이런 건 환경이 이래서라고, 환경이 바뀌면 나도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상황이 안 돼서 막연하게 대학원 유학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돌연 유학을 준비했다. 대학 생활에 환상을 품고 있었는데(그러고 보면 나는 모든 것에 환상을 품고 있었다) 막상 와보니 실망스러웠다. 그 시대 많은 또래들이 그랬겠지만 나도 내 대학생활이 <뉴논스톱> 같을 줄 알았다. 그런데 오티에 참석도 못한 데다가 학부여서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았다. 아웃사이더였다. 그래도 아웃사이더 친구들이 있기는 했지만 내가 상상한 대학생활과 너무 달랐다. 수업도 재미없고 너무 쉽게 성적이 잘 나오는 것도 실망이었다. 그 시절은 아직 학점, 스펙에 목숨 걸 때가 아니라 특히 1학년은 놀기 바빴으니까. 엄청 재미있지도 엄청 학구적이지도 않은 게 실망이었다. 그래서 한시라도 더 빨리 외국에 나기야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거라고 합리화했다. 처음엔 부모님이 반대하셨는데 도저히 포기가 안 돼서 혼자 수속을 끝내고 학비 송금할 때가 돼서야 말씀드렸다. 통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부모님이 져주셨다.


나는 내가 유학생활을 잘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향수병 같은 건 절대 걸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유학이 가고 싶었고 말리는 데도 내가 원해서, 우겨서 가는 거니까 당연히 잘 해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엄청난 착각이라는 것도 모르고.


공항에서 부모님과 인사하고 비행기에 탔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설렜다. 그런데 기숙사에 도착해서 처음 집에 전화를 걸 때 분명 그전까지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엄마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눈물이 줄줄 흘렀다. 금세 얼굴은 눈물콧물 범벅이 됐고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계속 눈물이 났다.


유학생활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나는 내가 외국생활에 되게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극내향형이 살아가기에는 한국도 쉽지 않은데 외국은 훨씬 더 어려웠다. 영어는 서툴고 성격은 소심해서 다가가지 못하고. 그러니 친구가 없었다. 그래도 한인회에 나가거나 한국인 친구를 만들지는 않았다.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거기에 너무 의존하게 될 것 같아서.

외로웠다. 지구 반대편에서 나는 완전히 혼자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되는 게 너무도 두려웠던 나는 또 혼자가 되었다. 수업을 기다리면서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를 나누는 애들 사이에 혼자 서 있으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밥을 혼자 먹기가 그래서 화장실에서 샌드위치를 먹기도 했다. 무거운 짐도 혼자 옮겼고 무슨 일이든 도와줄 사람 없이 알아서 해야 했고 아플 때도 혼자 앓았다. 그리고 거의 매일 혼자 울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은 나 없이도 잘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당연한 건데 그때는 나만 외톨이가 된 것 같아서 서러웠다. 이제 다들 내가 필요 없는 것 같아서. 이제 나는 없어도 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그 와중에 조별과제 같은 것 때문에 애들하고 모였다가 어떤 한국인 얘기가 나왔다. 부모님을 따라 외국 여기저기서 살았던 듯하고 인턴기자 뭐 이런 것도 하고 있었던 듯하고 애들 말로는 성격도 정말 좋다고 했다. 아직도 그 애 얘기가 나오자 애들 얼굴이 환해졌던 게 기억이 난다. 그 애를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언젠가 다른 애들하고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을 스쳐가듯 본 것 같기도 하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졸업하고 나서도 자주 그 애가 떠올랐다. 내가 원하지만 갖지 못하는 걸 다 갖춘 애였다. 그 애를 떠올리며 열등감에 시달렸다. 그럴 때면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누구는 저렇게 하는데 왜 나는 저렇게 할 수 없을까 생각하며 괴로웠다.


내 선택을 후회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내린 나를 증오했다. 적응하지 못하는 나를 증오했다. 어디서 나처럼 적응 못하는 유학생이 올린 글을 보고 욕하는 댓글만 골라 읽었다. 한심하다,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도 많은데 그럴 거면 왜 갔냐 그런 말들.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그런 말이었어서. 이럴 거면 대체 왜 유학을 오겠다고 우겼냐고, 왔으면 어떻게든 적응해야 하는데 왜 한심하게 투정하고 울고만 있냐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래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내가 더 미웠다. 겨우 하루하루를 버텼다.


매일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차마 돌아가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방학 때는 정말 견딜 수가 없어서 한국에 갔다.


한 번은 방학을 앞두고 며칠 전부터 속이 너무 안 좋았다. 며칠 제대로 먹지도 못 하고 비행기 타는 날도 사과 한쪽 먹었는데 계속 속이 안 좋아서 기내식도 하나도 못 먹었다. 어떻게 한국까지 왔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는데 병원에 가보니 위궤양이라고 했다.


유학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다 그만두고 돌아오고 싶다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너무 한심하고 쪽팔려서. 친구들은 부럽다고 하기도 대단하다고 하기도 했다. 그 앞에서 사실 나 친구도 하나도 없고 적응 못 해서 매일 운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가족에게는 더더욱 말할 수 없었다. 티 안 내려고 애를 썼지만 티가 나긴 낫겠지.


졸업하기만 기다렸다. 그래야만 한국에 돌아갈 수 있었으니까. 중간에 그만둘 용기도 나지 않아서 꾸역꾸역 버텼다. 그럼 내 실패를 모두에게 인정하는 꼴이 될 테니까. '유학 갔다가 졸업도 못하고 돌아온 애'가 될 수는 없었다.


생각해 보면 아주 친구가 없었던 건 아니다. 가끔 인사나 주고받는 중국인 친구도 있었고, 교환학생으로 온 일본인 친구랑은 제법 친하게 지냈고, 마지막 학년에는 대학원에 온 한국인 언니를 우연히 만나기도 했다. 그 언니가 아플 때 된장국을 끓여다준 적이 있었다. 마지막 학년에야 생긴 그 나라 친구도 하나 있었다. 어떻게 알게 됐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마지막 학년을 마쳤을 때 Graduation Bear라고 학사모 쓴 곰인형을 선물로 준 친구도 있었고.


매일 울기만 했던 것도 아니다. 대체로 우울하고 힘들었지만 뭐 그냥저냥 지냈다. 그때 유행하던 한국 프로그램들 다운받아 보기도 하고. 내가 한 음식이 맛있으면 기분이 좋았고. 기숙사가 1인 1실이라 좋았고 방 안에 딸린 화장실에 욕조도 있어서 거품 목욕도 즐겼다. 아직도 생각나는 너무 좋아하는 요거트도 있었다. 되게 끔찍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또 그렇게 끔찍하지만도 않았다.


그때 내가 외향적인 인간으로 변신할 수는 없었더라도 혼자서 나름 괜찮게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실제로 그런 날들도 꽤 있었고. 혼자인 걸 너무 비참하게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나하고 조금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면, 꼭 멋지고 완벽한 유학생활을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더라면 나는 좀 더 편하게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외로움이야 어쩔 수 없었을 테지만. 결국 나를 그렇게 쪼그라들게 만들었던 건 내가 바라는 나였다. 그걸 포기 못해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증오하고 괴롭혔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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