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고시생

한 번이라도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다

by toddle

대학을 다니면서 졸업이 다가올수록 불안했다. 원래는 국제회의통역사가 꿈이었어서 대학을 마치면 프랑스에 있는 통번역대학원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더는 유학생활을 할 수 없었고 통역하기에는 영어에 너무 자신이 없어서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국제회의통역사가 꿈이 맞긴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때 한참 유명한 국제회의통역사가 있어서 책도 사 읽고 했는데 그 분이 간 길을 따라가려고 했던 것 같다.


대학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게 고작이라 성적도 고만고만했고 쌓아놓은 스펙도 하나 없었으니 뭘 해야 할지, 뭘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게 외무고시였다.

그때 나는 한심하게 보낸 유학생활을 만회할 한 방이 필요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고작 이것밖에 안 된다는 걸 못 받아들여서 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이고 말았다. 언제나 나를 수렁으로 떠미는 건 나 자신이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도 열심히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 뭐든 진짜 열심히 해본 적이 없었다. 항상 그러는 나를 상상하고 꿈만 꿨다. 하지만 현실에는 그런 내가 없었다.

고3 때도 그게 고민이었다. 나는 왜 열심히가 안 될까. 성적에 다들 예민한 시기에 나는 성적보다는 열심히 공부 못 하는 게 더 걱정이었다. 친구한테 진짜 열심히 공부해 봤으면 소원이 없다고 말했다가 '재수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공부를 설렁설렁하는 것치고 성적이 나쁘지는 않았으니 정말 재수없을 만했다.


고시를 결심하면서 이번에야말로 죽어라 공부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내가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었다. 나는 계속 내 의지력을 탓하고, 다른 사람들 합격기를 읽으면서 영화, 드라마, 만화 속에 엄청 노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고, 그런데 아무리 자극을 받아도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아서 자신에게 실망하고를 반복했다.


매일 다른 내가 되려고 애썼다. 나를 변화시키려고 애썼다. 변신하려고 애썼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고 하기보다 내가 만들어놓은 이상을 향해 나를 어거지로 잡아끌었다. 그런데 나는 잘 끌려오지 않았다. 나는 다른 내가 되지 못했다. 그냥 나는 그게 안 된다는 걸 받아들였으면 됐는데 실패하고 또 실패하면서도 포기를 몰랐다. 내가 그렇게 발휘하고 싶었던 의지력이 이상한 데서만 발휘됐다.

'열심히'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그 '열심히'가 안 되니 미칠 지경이었다.


고시준비를 하는 도중에 허리디스크로 고생하게 됐다. 처음에는 엉덩이 한쪽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다리 전체로 옮겨갔다. 한동안은 앉는 건커녕 서 있지도 못했다. 디스크가 터진 건 아니라서 수술까지 하지는 않았고 디스크가 흘러나와 신경을 건드린다고 했다. 다시는 이전 상태로 회복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무서웠다. 아직 20대였는데 벌써부터 다시는 회복될 수 없게 고장이 났다는 게. 중간에 조금 호전돼서 피자집에서 파트타임 알바를 했는데 다시 도져서 한 달도 못하고 그만뒀다. 그래도 무슨 시술을 하고는 많이 좋아져서 지금은 꽤나 멀쩡하게 지내고 있지만 몇 달은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근데 그게 아니어도 제대로 공부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매번 이번에야말로 미친 듯이 공부해 보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 년 일 년 갈수록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불안감이 커졌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불안에 짓눌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오늘도 하루를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고 이렇게 하루하루 보내는 게 너무 무섭고 불안했다. 가슴 위에 커다란 돌덩이가 얹혀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만둘까도 여러 번 고민했다. 처음에는 2년만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둔다고 해놓고 그러지 못했다.

우선 그때까지 버린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다. 이대로 그만두면 그 시간과 노력은 다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합격만 하면 그 모든 게 다 의미있어진다.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고시를 그만둔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지. 그만두면 모두가 나를 패배자로 볼 것 같았다. 아마 누구보다도 내가 나를 패배자로 낙인찍었을 거다. 이것만 성공하면 다들 나를 대단하다고 할 텐데, 아무것도 없이 나이만 먹은 고시생에서 외교관으로 인생역전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줄곧 한방을 꿈꿨다. 내 인생을 180도 변하게 해 줄 한방을. 그래서 더 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이라도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다. 나 스스로도 더 이상 열심히 할 수는 없었다고 할 정도로 진짜 다 쏟아부으면 결과가 어떻든 깨끗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합격보다도 최선을 다해보는 게 더 소원이었다. 그게 더 중요했다. 이제껏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정말 한 번이라도 최선을 다해보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나름 정말 간절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자기계발서까지 찾아읽고 도움 될 만한 건 다 찾아보고 해보면서 애썼다. 그런데 다 소용없었다.

왜 나는 안 되는 걸까 생각하면서도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불안할 때마다 그래도 내겐 꿈이 있다고, 꿈이 있어서 이러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정말 외교관은 내 꿈이었을까? 사실 자신 없었다. sky 갈 성적이 안 됐던 내가 대부분 sky 출신인 다른 고시생들이랑 경쟁해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외교관이 되는 것도 무서웠다. 외교관은 사교적이어야 할 것 같고 수도 잘 읽어야 할 것 같고 정말 똑똑하고 능력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잠도 많고 취미도 많고 개인시간이 중요한 사람인데 자기 시간이 거의 없을 것 같은 이 일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합격해도 내가 외교관으로서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완벽한 사람이 돼야만 할 것 같은데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서 가끔 압박감에 숨막히게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도 그냥 어떻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불안을 덮었다. 내 꿈은 외교관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정말 꿈이었다기보다는 이게 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이게 내 꿈도, 내 길도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는데 애써 모른 척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항상 불안했던 거겠지. 그런데도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없어서 계속 흐린 눈을 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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