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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 닥터오 Nov 19. 2020

무매력 연상녀는 연하남이랑 만나면 안 되나요?

대체 내가 왜 좋아?

내 남편은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모두가 열광하고 궁합도 안 본다는 네 살 차이. 내 기준에서는 많은 나이 차였다.


처음 내가 남자 친구의 나이를 알았을 때, 참 비현실적이었다. (요즘은 프랑스 대통령도 부인이 위로 24살이나  많더구먼. 프랑스 만세!) 나를 스쳐 지나갔던 대부분의 모든 남자들이 나와 나잇대가 비슷하거나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남학생들아, 니들 옆에 앉아있는 여학생들을 한번 봐라! 전부다 니들 형수님들이다.”

모든 여자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들과 결혼하게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예정론을 남발하셨다. 부인할 수 없었다. 그때는 다들 그랬으니까. 더군다나 연상연하 커플들은 그 당시, 불륜 다음으로 비뚤어진 사랑으로 맺어졌다는 주변의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나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문화에 세뇌가 되었는지 나보다 나이가 어린 남자와 친한 친구가 되는 일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불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매의 맏인 데다가, 나이가 어린 누군가가 나와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 된다고 생각하면 조금 아찔했었다. 대부분 맏이가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라고들 말한다. 내가 생각했던 그런 이유들 때문에.

주변에 나를 아끼던 선배 언니들은 연하 남자 친구를  나에게 ‘그를 조심하라 까지 말해줬다. 그가 나에게 와서 이득이  만한 것도 없는데 내가 특별히 조심할  있었나 의아했지만. 언니들은 나에게 연하랑 결혼하면  되는 이유들을 말해주었다.

첫째, 연하들이 꼬이는 여자들에게는 돈이나 능력이 있기 때문이란다. 글쎄, 나는  당시 돈도 능력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동의할  없었다.

둘째, 연하 남편을 두면 여자가 먼저 늙어, 보기 싫어지기 때문에 젊은 여자들과 쉽게 바람피울  있단다. 바람피울 남자라면, 굳이  예쁘지도 않은 나를 선택했을까  예쁘고 괜찮은 여자들이 많을 텐데. 이것에도 동의할  없었다.

셋째, 남편보다 늙어 보이면, 연상 부인이  젊어지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피곤하다고 했다.  당시에는 새파랗게 젊어서였는지 여자가 늙는다는 게 진짜 피곤하게 될는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이외에도 연상 여자와 연하 남자가  되는 이유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런 고민들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  귀로 듣고  귀로 흘려버렸다.

사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가졌던 고정관념 때문에 나는 그에게 철벽을 쳤다. 동생 취급을 했다. 처음부터 결혼식을  때까지도 나는  프로  사랑을 올인할  없었다. 그가  미더워서가 아니라, 모자란 나를 믿지 못했었고, 연하 남자 친구를 보는 주변의 시선을 견디어  용기가 나질 않았었다.


하지만,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그의 직진 본능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백기를 들어야 했다. 그에게서 사랑을 배웠다.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게 맞는가 보다 하고 끌려갔다. 줄다리기라고는 전혀 하지 못하는 그는 우직한 소 같았다. 내가 연상이었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소 뒤에 묶인 수레 같았다. 방향키 없이 그가 가면 어디로든 끌려가는.


나에게서는 연상녀의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없었다.  떨어지는 그의 눈을 외면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것이 내가   있는 최선의 사랑법이었다. 보잘것없는 나를 한결같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의 사랑을 보는 재미로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면 혼쭐이 날까. 그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 허우대 멀쩡한 사람이  같은 사람이  좋을까?’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서는 사랑을 느낄만한 장점이 하나도 없었다.


얼굴이 첫눈에 반할 만큼 외모가 놀라운 것도 아니고, 능력이 출중해서 남을 먹여 살릴만한 골드 미스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성품이 훌륭해서  동네까지 소문날 정도도 아니었다. 기 비하가 아니라 실제로 팩트였다.


엄마는 언젠가 한번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너는 예쁘게 생기지는 않았어. 조금 똑똑해 보이기는 .” 이런 게 팩폭인가! 풀이해보면, 예쁘지도 않고, 그나마 멍청해 보이지는 않으니 이에 감사하고 살라는  아닌가. 나도 아는 사실을 굳이 엄마라는 사람이 확인 사살까지 해주시는  센스는 무엇?


주변이  알고 내가 인정하는 이런 팩트 때문에 연하 남자 친구가 나에게는 감지덕지였다. 엄마도 어처구니없어하셨다. 엄마가 생각해도, 연상녀가 지닌 매력,  어느 것도 해당사항이 없는  아셨나 보다. 


결혼을 한다고, 남자 친구를 외할머니에게 선을 뵈러 간 적이 있었다. 외할머니는 남자 친구를 보자마자, 엄마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당장, 결혼시켜! 쟤 볼 거 뭐 있냐!” 귓속말이었는데, 나는 그 소리를 잘도 알아챘다. 가족들 사이에서 나는 그런 취급을 받았다.  


나는 지금도 남편을 보면, 내가 왜 좋은지 궁금해 자꾸 물어본다.

“자기야, 나 왜 좋아?”

“예뻐서.”

나는 말도 안 된다며 다른 이유를 대라고 칭얼댄다. 콩깍지가 아직도 벗겨지지 않은 그를 보면 참 기묘하다. 좀 두꺼운 깍지가 끼었는지.


그를 만난 지 17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나는 그가 내 옆에 있는 게 신기하다. 그의 한결같은 마음은 나에게 매일 새롭다. 감사하다. 외모는 고사하고,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와준 그가 고맙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남편은 가끔 나에게 말한다.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라고. 내 마음이 거울에 반사된 것처럼 그의 말로 바뀌어 나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나와 반대로 그의 매력을 따지자면, 브런치에서 강퇴를 당하겠지만, 무릅쓰고 몇 자 적어 보겠다. 얼굴은 그냥 순진한 얼굴을 한 성시경을 닮은 평범한 얼굴이다. 나는 동의할 수 없지만,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키는 187센티미터로 모두가 원하는 남자의 키를 가졌다. 체형은 강호동을 닮아 지방과 근육이 잘 섞여 있는 마블링이 잘 됐을 것 같은 튼튼한 몸을 지녔다. 그의 덩치 때문에 별명은 대학 때부터 ‘티라노’다. 그리고 나와 다르게 수학을 잘한다. 논리적이다. 부지런하다. 성실하다. 사막에 떨어뜨려 놓아도 죽지 않고 살아 나올 만큼 강인한 정신력을 지녔다. 덩치는 공룡 같지만 내 앞에서만큼은 순한 양이다. 처음에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시간을 많이 두고 지켜보았다. 양파껍질처럼 계속해서 나오는 그의 매력에 조금씩 마음을 열었던 것 같다. ​


​​ ('티라노'를 더 잘 알 수 있는 글 링크입니다.)


연하를 만났지만, 단 한 번도 그가 동생이라는 생각이 든 적이 없다. 내가 한참 연상이지만, 애처럼 징징대며 눈물, 콧물, 못생김 범벅이 되어 울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그는 나에게  남편이자, 남자 친구이며, 때론 엄마, 때론 아빠가 된다. 선생님도 되었다가, 또 아이가 되기도 한다. 나는 또 그에게 아내이자, 여자 친구, 때론 엄마, 때론 아빠가 되고 그의 딸이 되기도 했다가 잔소리가 많으면 사감선생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서로 세상에 둘도 없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의 대화 주제 거리가 되었다. 매일 저녁, 혹은 주말,  대화의 끝에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한다. 영혼의 단짝이라는  있으면 우리가 아닐까. 이런 이야기들을 주변에 하게 되면 다들 오글거려하며 ‘아직도 신혼이네.’라고 하지만, 우리가 신혼 같은 느낌을 즐기려면 일부러 쥐어짜 만들어 내야 하는 결혼 14 차다. 우리 사이는 신혼들처럼 로맨틱하다거나 꽁냥꽁냥한 맛은 없다. 그저 오래 같이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 편한 단짝 친구다.


어느 연상 연하 커플이 자신들의 결혼이나 미래에 관해 물어오면, 우리는 쌍수로 환영하며 적극 응원한다. 서로 소울 메이트가 된 우리의 삶이 그들의 삶이 되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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