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지고 말 풍선 따위 갖지 않겠어
나는 착하지 않다. 사회가 아이들을 착한 아이로 키우려는 욕심으로 만들어진 잘못된 불량품이다. 유교 사상에 머리를 조아리고 못 된 마음을 숨기고 착한 척했다. 가족의 생존을 위해, 다른 이들의 복지를 위해, 책임감과 연대감이란 가면을 쓰고 오지랖을 부리며 착한 아이 코스프레를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마음에 드는 척하며 앞에서는 ‘네’라고 대답했다. 앞 뒤가 다른 모습을 보며 구역질이 났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고 압박을 주니 이를 악물고 했다.
내 마음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요구, 기대,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철 깡통 로봇 내지는 허수아비였다. 뇌도 없고 심장도 없는. 악마의 마수에 걸려들어 언제쯤 제 기능을 할지 모르는 상태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제야 철이 좀 드려나 원래 어떤 모습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마음속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을 한다. 나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하는 중이다.
나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싶다. 위대한 태몽을 꾸었다고 입 마르게 설전을 했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말을 서랍 속 깊이 넣어두려 한다. 별 것 아닌 것에도 감탄을 거듭하며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어이없는 부모님의 콩깍지를 걷어 내려고 한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복음 성가의 감동에 찬물을 끼얹고 싶다. 너는 특별하다고 말하는 순수한 전도자들에게 요란한 꽹과리는 그만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다 맞는 말이겠지.
그게 독이었다. 사랑을 받으려고 살았고,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 시간을 보냈고, 내 안의 천재를 깨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내 능력 이상으로 특별한 것을 해내기 위해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간의 기대와 다른 모습이 보이는데도 믿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었겠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겠지.
내가 가진 기대만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기대도 상당했다. 결과가 기대 이상이 되지 않으면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주변 상황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마음이 나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이런 마음쯤이야 특별함과 위대함을 완성하기 위해 정상적인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착하지 않은 모습이 보일 때마다 부인했다. 너는 착한 아이야.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싫어도 해야 해.
평범한 모습이 보일 때마다 부인했다. 아니야. 너는 특별해. 너는 위대해. 너는 행복해야 돼. 지금 이대로는 부족해.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기대가 지금 이대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소리에 귀를 막고 아니라고 말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제는 이렇게 외친다.
아니야. 너는 평범해. 너는 위대하지 않아. 너는 잘하지 못해도 돼. 너는 이대로가 행복해. 지금 있는 그대로가 좋아. 그대로도 괜찮아.
나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니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도 조금씩 흐려진다.
하지만, 슬퍼지려 한다.
그동안 나 자신을 너무 의존했나 보다.
그들을 너무 의지했나 보다.
나에게서, 또 그들에게서 아무런 좋은 것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마음도 곧 사라지겠지. 그럴 거야.
곧 편해질 거야.
어차피 기대감이라는 건 언젠가는 터지고 말 풍선이니까.
허세로 가득 찬 풍선 따위 갖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