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고 떠나간 자동차
오랜 염원이었던 전기차를 샀다. 운전 경력 20년 가까이 되지만, 항상 주머니 사정에 맞춰 차를 구입했다. 오래된 중고차를 사고 정비소 들락거리기를 수도 없이 했다.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몇 년을 운전하며 곡예 줄타기 운전을 해야 했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차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정비소에서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차 상태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살아 있음에 감사해야 하기도 했다.
환경에 친숙하고 새끈 하게 빠진 전기차는 가격에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7년 전에도 전기차를 주문하네 마네를 두고 남편과 설전을 벌였지만, 결국 단념을 해야 했다. 아무리 치과의사라도 학자금 빚에 집 월세에 싸지 않은 미국 생활비를 치르고 나면 월급이 그리 녹녹지 않아 몸과 마음이 가난했다. 여타 다른 친구들은 졸업하자마자 포르셰, BMW, 벤츠를 줄줄이 뽑으며 졸업 내지는 취업을 축하했다. 요즘 졸업하는 후배들은 더 많은 학자금으로 허덕일게 뻔한데 별 걱정 없이 1억이 훌쩍 넘는 럭셔리 차들을 구입해 뽐내는 그들의 용기는 ‘내가 참 바보인가’를 생각하게 했던 적이 많았다.
모든 사람의 삶의 가치는 다르기 때문에 나와 다르다 하여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없었다. 각자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지갑이 더 열리지 않는가. 남편과 나는 워낙 실용주의에 현실주의이기 때문에 ‘카 푸어’는 되지 않아야 한다며 내심 부러운 마음을 숨겨야 했다.
전기차가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럭셔리 카는 아니지만, 우리 기준에서는 드림카였다. 기름을 넣으러 주유소에 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기름 값의 등락에 따라 내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할 필요도 없었다. 소모품이 거의 없어 엔진오일이나 타이밍 벨트, 브레이크 패드를 갈러 가지 않아도 되니 여러모로 시간과 돈이 많이 절약되었다. 환경에도 친절하니 차를 타며 공기에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었다. 전기차는 우리 삶의 철학에 꼭 맞아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을 더 기다리며 ‘언젠가는 꼭 사고 말리라!’라고 조용히 외치고 있었다.
코비드가 창궐하고 공장이 멈추고, 모든 생산 라인이 거의 중단되었다. 주머니 사정이 조금 괜찮은 사람들이 새 차를 사려고 했지만, 몇 개월에서 일 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렇게 오래 기다릴 바엔 중고차를 사려고 했던 것일까. 중고차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내가 타던 중고차 값을 검색해 보니 5년 전 살 때 거의 그 가격 그대로였다. 5년 전에도 우리 주머니 사정에 꼭 맞게 알찬 구매를 했는데, 5년이 지난 시점에도, 구입한 가격에서 몇 천불 정도만 빠진 상태로 시장에 나와 있었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지금의 예산으로 전기차를 구입하는 것이 너끈하지는 않지만, 중간 레벨의 전기차 가격을 감안하고, 타던 차를 트레이드 인으로 산다면, 적당한 대출금으로 해 볼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를 사고 큰 문제가 없다면 매번 10년을 넘게 타던 습관 때문에 쉽사리 결정이 어려웠다.
남편은 나에게 “주문한다!”를 외치며 여러 번 확인사살을 했다. 나는 별다른 동의를 하지 않았다. 핑계를 대자면, 돈 문제를 떠나서 차도 오래 타면 정이 드는 법이라 5년 된 차를 보내고 새 차를 구입한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미안한 생각이 들어 흔쾌히 동의를 못했다. 차값이 많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거의 공짜에 가깝게 차를 탄 것이었다. 왠지 옛 차에 더 정이 갔다. 그래도 나름 행복했는데… 5년 전, 우리 주머니 사정에 맞춰 구석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우리 앞에 “짠!”하고 나타나 준 그 차에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남편은 “일단 주문해 놓고 싫으면 중간에 취소해도 돼!”라고 말하며 나를 위로했다.
어차피 차를 받기까지 4,5개월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했다. ‘오케이! 기다리는 동안 마음을 결정하면 되겠지!’라고 결론 내리고 슬슬 차에 정을 떼려고 했다. 일부러 더 자주 세차하고 엔진 오일도 바꿔주고, 일일이 다른 검사도 진행했다. 중고차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내가 잘 쓰고 넘겨주면 그 사람도 감사하게 잘 사용해 주겠지. 좋은 사람에게 가기를 기도하며 차 안팎을 닦고 또 닦았다.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전기차 배달 전화가 왔다. 중간에 두 번이나 연기되는 불상사가 있어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배달이 온다니! 꿈만 같았다. 배달 전화를 받은 날은 얌전한 비가 오던 어느 가을날이었다. 비를 좋아하는 나는 새 차가 비에 맞든 안 맞든 그냥 좋았다.
새 차를 배달하던 키가 큰 백인 아저씨는 나보다 더 들떠 있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어리둥절하던 나를 보며, 왜 자기만큼 기뻐하지 않는지 의아했을지도 모르겠다. 감정에 서툰 동양인이려니 생각했을지도. 마음 한 구석에 새 차를 받는 기쁨과 정든 차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새 차를 받고 잠깐 동안 사용법을 익히고, 타던 차를 떠나보냈다. 아저씨에게 내가 깨끗하게 다 닦아 놓았고, 차를 살 때 덤으로 얻은 Life-time oil change(평생 엔진 오일 무료) 서비스 증명서도 보여 주며 좋은 곳으로 가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미국 감성에는 맞지 않는 설명이었지만, 어쨌든 그게 나니까…
전기차를 받은 지 45일 만에 등록번호가 도착했다. 번호를 받고 보니 이제 진짜 전기차 주인이라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새 전기차를 받고 들뜬 마음을 자랑하려고 자판을 두드렸지만, 왠지 떠나보낸 옛 차가 생각이 나는 건 왜 일까? 아낌없이 주고 떠난 옛 차가 그립다. 새끈 하게 빠진 전기차 위에 별 볼일 없던 가솔린 싸구려 차가 겹쳐 보이기까지 한다. 오늘도 그날처럼 얌전한 비가 내린다.
*이미지: 픽사 베이에서 퍼옴 ^^; 제 차는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