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애틀 닥터오 Dec 15. 2021

크리스마스트리의 위로

올해도 어김없이 연말이 왔다. 기 센 감기균으로 인해 2020년 연초부터 거의 2년간 모두에게 우울한 시간들이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 조금 나아지려니 생각했지만, ‘델타’에 이어 ‘오미크론’이라는 또 다른 변이가 시작되어 전 세계가 또다시 긴장상태에 돌입했다. 백신이 공급되고 있지만, 여전히 모두에게 안전한 치료제가 나오기까지 숨 돌릴 새가 없어 보인다.


이런 와중에 올해도 지난해 이어 크게 기쁜 일보다는 언짢은 일들이 더 많아 기쁜 일들이 무색한 나날들이 지나고 있었다. 연말이 다가오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이 오니 매년 하듯, 그간 열심히 일해준 직원들을 챙기는 일에 분주해졌다. 선물가게와 큰 상점들을 들락거리며 그들에게 맞는 선물은 무엇일까, 그들이 무엇을 좋아할까 생각하며 선물을 골랐다. 마지막 선물의 종착지였던 창고 대형 마트에서 직원의 명수에 맞게 선물과 선물카드까지 카트에 담았다. 지난 사 년간 속이 좁아, 작은 것을 준비했는데 올해는 마음 크게 먹고 더 큰 것을 선택했다.

2021년 직원들에게 줄 연말 선물들

계산대에 서서 카트에 쌓인 선물들을 보니 나도 직원인데 ‘내 것은 없다’는 억울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입구에 보였던 작은 자작나무 크리스마스트리가 떠올랐다. ‘내 선물은 없다’는 억울함을 그 크리스마트 트리에 기대볼 참이었다. 계산대에서 멀지 않아 일초 만에 냉큼 집어와 버렸다. 충동구매나 다름없었다.


처음 하우스 렌트를 시작했을 때, 집 천장이 너무 높아 그에 맞춰 너무 작지 않은 것을 해야 한다며 6피트(183센티) 짜리 플라스틱 크리스마스트리를 구입했었다. 작년 겨울에도 기어코 6피트 높이의 트리를 장식하느라 혼자 낑낑대며 고생을 했다. 세 개로 나뉘어 있는 제법 무거운 조각 플라스틱 나무대를 이어 연결하고 작은 사다리를 놓고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꼬마전구 타래를 두르고 색색의 자그만 장식들을 빼곡히 채우느라 세 시간을 족히 소비했었다.

2020년에 만든 고통의 크리스마스 트리

아이들 없이 덩그러니 나와 남편만 있는 가정집에 크리스마스트리를 하는 것이 뭐 그리 큰 대수겠냐마는 직장인이 되고부터 챙길 건 다 챙기고 지나가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영 힘이 나질 않았다. 혼자 또 세 시간 동안 그 큰 나무를 조립하고 장식할 생각을 하니 시작부터 암담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른 집 같으면 추수 감사절 기간 동안 함께 모인 가족들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기에 큰 힘이 들지 않겠지만, 가족 구성원이 나와 남편만 덜렁 있으니 사실 엄두가 나질 않아 종종 포기했었다. 그러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1, 2주일 전 또다시 충동적으로 혼자 장식을 하다 몸져누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편은 맨 처음을 제외하고 그 이후부터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은 나 혼자만의 전유물이 되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운동을 한다며 남편은 크리스마스트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도 덩달아 크리스마스 분위기 없이 올해는 그렇게 지나가리라 생각하지만, 결국 뒤늦게 플라스틱 소나무에 지친 팔을 후덜 거리며 장식들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올해는 그 꼴을 면할 수 있을까 싶어 궁리 중이었는데, 잘됐다. 자작나무 크리스마스트리라니… 박스 상자에 붙여진 샘플 사진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자작나무 가지 끝에 꼬마전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간의 고생과 고민을 생각해보면 굳이 충동구매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충동구매인 걸로 마무리를 짓고 계산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조립을 했다. 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021년에 위로처럼 와준 자작나무 크리스마스 트리


스산한 바람이 잘도 왔다 갔다 할 것만 같은 희멀건 쓸쓸한 자작나무… 내 마음 같았다.


나는 스러지기 일보 직전인데, 그래도 저 나무는 스러지 지도 않고 잘도 버티고 있어 기특했다. 잎사귀가 다 떨어지고 가지만 덩그러니 남은 가짜 크리스마스 트리에 마음이 간다. 올해, 포기하고 싶었고, 다 버리고 싶었던 모든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래도 스러지지 말고 똑바로 서 있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비록 가짜지만, 비록 잎사귀 없이 초라하게 남겨졌지만, 저 플라스틱 자작나무는 가지 끝, 찬란한 빛으로 더 영롱하다.


끝까지 버티는 사람들에게 저렇게 찬란한 빛이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내’라는 빛….

갖고 싶다. 그 빛….


쉽지 않다. 인내…

코로나 종식을 기다리는 우리들에게, 작은 소원이 이루어지길 기다리는 우리들에게 인내의 빛이 피어나길 바라본다.


2021년도 쉽지 않은 인내를 발휘하느라 고생했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호소하고 싶지만, 오색의 꼬마전구들을 보노라니 반짝임에 취해 말은 아껴두고 싶다.


귀가한 남편이 그득히 쌓인 직원들의 선물을 보고 내게 말한다.


“내 거는?”

“………….. 저기요 사장님!…………

사장님 선물은 자작나무 크리스마스트리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