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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 닥터오 Jan 11. 2023

결혼기념일엔 점수를 매겨요

장점만 있는 결혼생활을 꿈꾸며


올해 우리는 열여섯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는다. 처음 결혼하고 거의 십 년간은 서로의 결혼 생활이 어떤지 각자 점수를 매겼다. 마치 일 년에 한 번 치르는 시험처럼 결혼기념일에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남편의 의무를, 아내의 의무를 잘 이행하고 있었는지 평가를 했다. 남편과 아내의 의무라기보다는 서로가 함께 지내기가 얼마나 편안한지, 불편한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처음 어떻게 시작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막상 결혼을 하고 기념일이 되니 별 달리 할 것이 마땅치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치대에 합격하고 결혼했으니 치대 4년, 그리고 나보다 2년 늦게 시작한 남편이 그 뒤를 이어 2년을 더 있었으니 결혼하고 학생신분으로 6년 동안을 지낸 셈이다. 벌이가 없는 결혼 첫 6년간의 결혼기념일은 우리에게 부담이었다. 여행을 한다거나 서로에게 반짝이는 선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기념일 저녁 적당히 특별한 음식을 해서 먹고 일종의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시작을 했을지도 모른다.


점수를 매기는 의식의 첫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나랑 다시 결혼한다면, 그 이유가 뭐야? 열 가지만 말해봐.’


다시 말해, 각자의 장점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세 가지가 적당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왠지 세 가지는 적어 보여 기왕 하는 김에 열 가지로 늘린 것이다. 다섯 가지 정도하고 나면 그다음 다섯 가지를 말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것이 서로에게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쥐어 짜내어 각자의 장점을 말했다.


상대에게 마음에 드는 점, 열 가지를 듣고 나면, 칭찬을 듣는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지고 입꼬리가 쓰윽 올라간다. 반대로 상대의 장점을 말하고 나면, ‘내 배우자에게 이런 장점들이 있었구나’를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그러면 내가 들은 칭찬이상으로 기분이 다시 또 묘하게 좋아진다. 다시 해석하면, ‘내가 이런 사람을 선택해 결혼했’ 다는 생각으로 나의 선택을 다시 칭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그런 질문이었다.


그렇게 기분을 업시키고 나면 그다음 질문으로는 서로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혹은 고쳤으면 하는 것을 세 가지 말하기였다. 단점을 열 가지로 하면 부부싸움이 날 게 뻔하니 세 가지로만 축소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남편이 나에게 어떤 고칠 점을 이야기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나의 단점 세 가지를 듣고 기분이 그리 썩 좋지는 않았다는 점과 내가 남편의 단점을 이야기한들 빠른 시간 안에 그 점이 고쳐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점 이외에 단점을 굳이 말한 이유는 서로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이야기함으로써 상대의 불만을 들어준다는 취지였다. 각자의 단점들은 사실 빨리 고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단지 각자의 단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 자기가 왜 그러는지에 대해 침 튀기게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그 이유를 듣게 되면 고개를 끄덕여지는 정도는 되었다. 장점을 듣고 기분이 좋으니 감정을 조절하기 수월해지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 자신을 변호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내가 남편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중 하나는 냄새나는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놓는 것이었다. 이 습관은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았다. 아직도 발냄새 폴폴 나는 남편의 양말은 식탁 밑, 소파 밑, 부엌 캐비닛 상판 위, 피아노 건반 위, 심지어 책상 서랍까지, 그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곳저곳에서 발견된다.


작년, 책상 서랍에서까지 남편의 양말을 마주하고 충격을 받아 남편의 만행을 증거로 남겨두었었다. 결혼 후, 첫 몇 년은 양말을 따라다니며 치우느라 남편에 대한 불만이 커져갔다. 하지만, 매년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놓는 그의 의도를 듣고 그냥 포기하게 됐다.


남편의 만행; 그날의 충격을 잊을 수 없어 사진으로 박제. 남편은 이 사진은 주작이라며 자기는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생떼를 부린다.

자기는 발에 땀이 많아 집에 오면 양말을 급하게 벗어야 직성이 풀린다고 했다. 가끔 소중한 곳, 예를 들어 책상서랍이나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들이 놓이는 부엌 캐비닛 상판에서 발견되는 양말 - 그래도 한번 신은 양말 - 은 신은 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냄새도 나지 않고 보송보송하여 소중히 아꼈다가 다시 신으려고 한다는 기가 막힌 자기만의 양말 철학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어느샌가부터는 신다 벗어놓은 말없는 양말을 볼 때마다 짜증은 올라오지만, 고쳐지지 않는 남편의 양말철학을 고이 접어 존중해 주기로 했다. 양말을 그 자리에 그냥 그대로 두게 되었다. 그러려니…


오늘도 여전히 발견된 남편의 양말; 어딘가에 또 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고칠 수 없는 단점이 아직도 있을 것이 분명하다. 불안하면 입술을 뜯는 것이라든지 - 남편이 항상 입술 뜯는 내 손을 얄밉게 탁 치고 못하게 함 -, 운전 조수석에 앉으면 기분에 따라 목소리가 바뀌는 AI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든지, 등등이다. 이 외에도 많겠지. 고칠 수 없는 이런 단점들은 거의 무의식 중에 행해지는 것들이다.


서로의 단점을 들추어내는 장점 중 하나는, 각자의 단점을 서로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만은 인지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못된 습관을 하고 있다가 제정신이 들 때면, ‘아차!’하고 하려던 습관을 잠시나마 멈추게 되는 단계까지는 왔다. 무의식이 의식으로 바뀐다는 것은 큰 성과라 본다.


지금은 그런 평가가 무색하리 만큼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어 구체적인 평가, 즉 단점에 대해서는 특히 거론하지 않게 됐다. 그 단점은 항상 똑같으니까. 그리고 매년 잘 고쳐지지 않고, 서로 잘 알고 있는 단점은 이제 더 이상 단점이 되지 않게 됐다. 매년 각자의 단점에 대한 이유와 의미 내지는 철학을 듣다 보면 그냥 알게 된다. 그 단점도 내 배우자의 일부라는 걸.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단점에 대한 변호를 반박할만한 힘이 달린다.


올 결혼기념일에도 우리는 지난 일 년간 서로가 서로에게 어떠한 배우자였는지 물을 것이다. 단점 없이 장점만 가득한 서로의 평가는 죽는 날까지 계속 주욱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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