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애틀 닥터오 Mar 29. 2021

그래서, 그게 내 잘못이라는 거야

다시 세우는 가족계획


얼마 전 남편과 오래간만에 대판 싸웠다. 싸우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을 하다 보니 감정이 격해졌다. 주제는 가족계획이었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의 순수함과 아이들의 행복한 지절거림을 좋아한다. 집 밖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나면 기분이 좋아져 창 밖으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20대 때부터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봉사를 오래 했다. 물론 지금도... 나는 한때 아이가 생기지 않아 삼신할머니가 노했을 수도 있으니 아이들을 위한 봉사를 접어야 된다고 생각까지 했었다. 오래된 기독교 신자가 할 생각은 아니었다. 고민이 길어지니 별의별 생각까지 다 들었다. 사이가 좋은 우리는 너무 친하니까 애가 안 생기는 것 같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옆에서 떨어져 줄래!”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구 인구의 폭발, 환경오염 등으로 생태계까지 영향을 받았다. 우리도 그 영향을 받은 것인가. 생물학적으로 제한된 공간에 수많은 생물체가 살게 될 경우,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재생산의 욕구가 줄어들고 자살률이 높아진 댔다. 시대에 발맞추어 우리의 재생산 공장은 파업 선언을 한 것이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더 큰 대의를 위해 딩크족이 된 사람들이 부럽기만 하다. 우리는 아직 그들만큼 대의도, 용기도 없다. 그냥 무늬만 딩크족으로 살았다. 시간이 더해 갈수록 친구들의 아이를 보며 마음이 점점 혼란스러워져 갔다.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머리를 밀고 산으로 들어가는 일 외에는 없는 듯 보였다.


아이가 없는 이유로, 공부가 힘들어서, 삶이 힘들어서, 돈이 없어서...라고 환경에 탓하며 막연히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생각의 전환을 해보려 했다. 이제 환경 탓은 멈추고 내 탓은 없었는지, 네 탓은 없었는지... 과연 우리가 제대로 열심을 내고는 있었는지 달리 생각해 보았다.


이 문제에 대해 남편과 제대로 대화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해보려고 했다. 대화, 아니 싸움의 요는 이랬다. 지금까지 나는 이런 이런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했는데, 너는 무엇을 했니?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었고, 내 입으로도 일목요연하게 다 정리해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입으로 시인하는 말을 들으며 그와 나의 생각을 정리할 참이었다.


그는 대화 도중, 아이가 없는 이유가 자기 자신 때문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여 억울해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시나리오였다.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참아가며 열심히 돈을 벌었다며 언성을 높였다. 그래서 돈 버는 일 말고, 가족계획을 위해 네가 한 것은 무엇이냐고? 나도 억울한 것을 참고 있는 중이었다.


영주권 취득을 위해 뼈를 갈아 마시며 일했던 시간들, 남편은 미국에서 나는 한국에서 홀로 다섯 시간 동안의 힘겨운 수술을 견뎌내야 했던 시간들, 한 번은 미국에서, 두 번은 한국에서 이뤄졌던 시험관 시술 기간 동안, 내가 치러야 할 일에  비해 남편은 그리 큰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물론 심리적으로 바라만 봐야 하는 자신이 더 힘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 우리는 신혼 때 없는 살림에 치열하게 치대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해야 할 일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타입이라 치열한 공부 중에도 가족계획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던 그는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피곤하면 자신의 의무를 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하자.” 말이 좋아 자연스럽지, 그냥 싫은 거였다.


그 일로 여러 번 싸웠지만, 결국 나도 중도에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깊이 상처 받았다. 따지고 보면 열심을 내었어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을 내지 않은 과거는 이제 와서 후회가 된다. 이제는 집고 넘어가고 싶었다. 같은 실수는 반복하고 싶지 않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남편은 내 눈치를 많이 봤다. 아이 문제에 대해서 감정적이고 예민한 나를 조심했다. 그게 싫었다. 내 눈치를 본다는 이유로 문제를 나에게 다 떠넘기는 것으로 여겨졌다. 자만추*를 원했던 그가 지금은 달라졌을 리도 만무했다. 그래서 나는 그 개떡 같은 쿨한 자연스러움이 아직도 있는지 남아 있는지 캐내고 싶었다.


지금까지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이 몸이 약한 나의 탓이라고만 자책하고 있었다. 이제는 반대로 과거든 현재든 열심을 내지 않은 그의 탓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낫지 않는 상처를 더 들쑤셔 다시 재생을 꿈꾸고 있었다. 억지스럽지만, 혹시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방법이 약이 될지도 모르니...


남편은 아이 문제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나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내 기분을 고려하여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의사에게 사형선고를 받은 말기 암 환자가 인생을 좌절하여 치료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가족들이 눈치를 보며 병에 관하여, 치료에 관하여 아무 말도 꺼내지 않는 모양과 같다. 마음의 병이든 몸의 병이든 치료를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눈치를 보다 치료 기회를 놓쳐 버리면 죽음의 문턱은 바로 코 앞이다.


나에게 있어 난임과 불임의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싸움을 통해 나를 위한다는 의도로 내 눈치를 보며 말을 아끼는 그였지만, 뒤늦은 깨달음이 왔다. 나는 눈치 보던 그가 힘을 내어 나를 구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도 내가 그런 생각이었는지 처음으로 알았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14년간 그토록 수많은 깊은 대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서로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이 문제에 있어서도 충분히 이야기했다고 믿었다. 맹신이었나 보다. 왠지 소파 밑 보이지 않는 저 밑바닥 어딘가에 오랫동안 세월의 흔적이 덕지덕지 붙은 껌딱지를 힘겹게 떼어낸 느낌이었다.


그가 남의 집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가족계획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자신의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만 생각했다. 그가 원하지 않는 아이를 나 혼자만 원하는 건 흥이 나는 일이 아니었다. 사실 아이가 정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투성이이긴 하다. 하지만 아이가 없음으로 생기는 문제들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이 과제를 위해 열심을 내지 않으면 후회의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꺼져가는 열심에 힘겹게 다시 불을 지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또 불가능에 가능의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다. 이번에도 쉽지 않겠지만, 그와 나의 똑같은 반반의 열심과 노력이 결실이 있기를 바라본다.


*자만추: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