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책은 늘 기다리는 최인아 책방 북클럽의 책이다. 이 책은 나희덕 시인이 쓴 예술 산문이다. 시적 상상력으로 예술 작품을 쓰다듬는다. 시인의 눈으로 읽어낸 영화, 사진, 조각 등 다른 장르의 예술의 옆모습을 보여준다.
"예술이란 얼마나 많은 주름을 거느리고 있는가.
우리 몸과 영혼에도 얼마나 많은 주름과 상처가 있는가.
주름과 주름, 상처와 상처가 서로를 알아보았고
파도처럼 일렁이며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였다.
"세계와 영혼의 주름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비틀림이다."
질 들뢰즈의 이 말처럼
세계와 영혼의 주름들을 해독하여 애를 쓰며
몇 개의 겹눈이 생겨난 것 같기도 하다"
다양한 예술가들을 소개해주는데 인상적인 예술가들 3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1. 류이치 사카모토
류이치 사카모토는 영원성을 지닌 소리를 찾는 예술가다. 청각은 모든 감각 중에서 가장 빨리 휘발되는 감각인데 말이다.
"지속되는, 사라지지 않는, 약해지지 않는 그런 소리를 내내 동경해왔다" 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인간이 현대 문명을 통해 만들어낸 소리들은 조금씩 병들어 있거나 미쳐 있다고 여겼다.
그 소리들을 어떻게 하면 자연 상태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는 자연의 가장 원초적인 리듬과 순도 높은 소리를 만나기 위해 아프리카 케냐에도 가고, 북극에도 갔다. 기후 위기로 빙하가 녹아가는 북극에서 얼음물 속에 녹음기를 놓고 '소리를 낚고 있다' 고 말하는 모습은 소년처럼 천진해 보인다. 그는 또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을 찾아 출입 제한 구역에서 사진을 찍거나 소리를 채집했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소리 채집을 하듯이 나는 단어 채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열정이 인상적이다. 2.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유로슬라비아 출신의 퍼포먼스 예술가다. 그녀의 다큐멘터리 "연인들, 만리장성 걷기" 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브라모치와 그녀의 연인이자 동료인 울리아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만리장성 양끝에서 각자 걷기 시작해 90 일 만에 중간에서 만나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다.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는 3월에서 여름이 가까워지는 6월까지, 두 사람의 걸음에 따라 계절이나 주변 풍경도 달라져간다. 긴 도보 여행이란 몸의 한계와 싸우면서 스스로 마음을 비워가는 정신적 여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만리장성이었을까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끈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외적을 막기 위해 쌓은 거대한 성벽이자 배타적 경계선이다. 따라서 만리장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걷는다는 것은 장벽을 길로 여는 일이고, 냉전의 질서를 평화의 질서로 바꾸어내는 상징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의 걷기는 단순한 신체적 활동을 넘어 중요한 정치적, 문화적 의미가 있다. 이벤트를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내 이벤트에도 항상 의미가 담겼으면 한다.
3.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미르크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영화 '타인의 삶 (2007)' 은 한 남자가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고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오래 전에 스페인에서 봤는데 동독의 비밀경찰인 비즐러는 상부의 지시를 받아 유명 극작가인 드라이만의 집에 감청 장치를 설치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이렇게 5년 간 타인의 삶을 감찰하는 동안 그는 점차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를 지켜보면서 자신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공허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부턴가 그는 드라이만엥게 불리한 감청 내용을 보고하지 않고 두 사람을 보이지 않게 돕는다. 인간적 감정이 차츰 되살아나자, 무표정했던 그의 얼굴에도 표정이 조금씩 생겨난다. 그는 더 이상 상부의 지시를 수동적으로 따르는 기계가 아니다.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타인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인간이 된 것이다. 결국 상부의 지시를 어긴 것이 드러나 비즐러는 어두운 지하실에서 편지를 겸열하는 일로 내쫓긴다. 그리고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후에는 가난한 우편배달부가 되어 살아간다. 드라이만은 뒤늦게 자신을 보호해준 감시자의 존재를 알게 되고 비즐러를 찾아가지만, 말도 건네지 못하고 돌아온다. 2년 뒤 비즐러는 우연하게 서점 진열대에서 드라이만의 신작 '선한 사람을 위한 소나타' 를 발견한다. 서점에서 책을 펼쳐든 그의 눈에 들어온 한 문장. " 이 책을 HGW/XX7" 에게 바칩니다" 이 기호들은 바로 자신이 오래전 맡았던 작전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