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81.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진브로디.JPG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는 제목 때문에 선택했다. 전성기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이 단어는 실로 오랜만에 들어봤다. 주인공 진 브로디 선생은 책 전체에 걸쳐 인생의 전성기를 살고 있다고 여러 번 강조를 한다. 보통 누군가 전성기를 살고 있다고 하면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서 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은데, 스스로 '나는 전성기를 살고 있다' 고 말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문학 작품이라서 가능한 것 같다.


“자신의 전성기가 언제인지 아는 건 중요한 일이야. 그 사실을 잊지 말도록. 전차가 왔군. 자리에 앉지는 못하겠지. 지금은 1936년이니까. 기사도의 시대는 끝났지.”

“여러 번 말했지만, 이번 여름휴가 후 난 내 전성기가 진짜로 시작되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어요. 전성기는 알아채기 쉽지 않아요, 여러분. 나이가 들면 언제 시작될지 모를 전성기를 놓치지 않고 알아챌 수 있도록 늘 신경써야 해요. 그리고 그 시기를 완전하게 누려야 하고.”


이 책을 좋아하는 건 여기서 말하는 전성기가 보통 생각하는 커리어에서 승승장구하는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성기는 학생들을 위해서 인생을 바치고, 여장부 다운 그녀의 모습을 의미한다. 1930년대가 배경인데 브로디 선생은 독창적이고 강력하며 투지로 가득한 캐릭터이다. 학교에서는 이 선생을 해직하려고 하지만 굴복하지 않는다.


브로디 선생은 학생들을 극장, 미술관, 산책에 데려라고 집에도 초대해서 차를 마신고 한다. 수업 시간에 "신중함이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 선생이다. 교육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한다.


“‘교육education’이라는 단어는 밖을 의미하는 어근 e와 이끈다는 뜻의 duco에서 나온 단어야. 밖으로 이끈다는 의미지. 나에게 교육이란 학생들의 영혼에 이미 있는 것들을 밖으로 이끌어내는 거야. 매카이 교장에게 교육이란 학생들의 영혼에 현재 없는 것들을 집어넣는 것인데, 난 그건 교육이 아니라 침입이라고 생각해.”


작가는 브로디 선생의 연대기 위로 소녀들의 성장과 파시즘, 도덕과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덧입힌다.자신이 믿던 학생에게 배신당하고 학교에서 해직당한 브로디 선생은 스스로 "내 전성기는 끝났어' 라고 선언하지만, 샌디는 그 순간의 선생이야말로 '내적 성장' 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샌디라는 캐릭터를 통해 브로디 선생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브로디 선생을 배신할 때 샌디가 매카이 교장에게 말하듯이 브로드 선생은 '타고난 파시스트' 이다. 우선 브로디 선생은 프랑코 정권에 봉사하라며 학생 중 한 명인 조이스 에밀리를 설득해 스페인에 보내기까지 하는 실제적 파시스트 정권의 지지자다.


동일시와 거리두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샌디는 궁극적으로 성장과 완성, 혹은 전성기에 대한 브로디 선생의 서사를 성장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로 겹쳐쓴다. 샌디가 동경과 비판이라는 양가감정 없이 브로디 선생에게 동일시하는 순간, 선생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거나 연민을 느끼는 순간은 사실 브로디 선생의 자기확신이 깨진 순간들이다.


이 책은 캐릭터 때문에 그리고 밀도 있는 순간들이 많아서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80. 언택트 시대의 광고 크리에이티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