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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정여울 작가님 문학 수업 - 체르노빌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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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여울 작가님의 문학 수업 5번째 책이어서 읽게 되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 는 1986년 체르노빌을 경험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닌 실화로,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이 책을 위해 20여년에 걸쳐 100여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취재 중에서는 고통받는 이들의 취재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데 이 작가는 소설도 시도 희곡도 아닌 이토록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빚어냈다. 취재는 상대방을 극도로 배려하고 존중해줘야 한다.

이 책은 스토리텔링이나 장르에 대한 우리의 모든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글쓰기는 단지 내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글이 아니면 세상 어디에서도 울리지 않을 숨은 목소리들을 온몸으로 발굴하는 일임을 알 수 있다고 작가님은 이야기해주신다.

이 책엔 여러 목소리가 합쳐져 있다. 당시의 권력자도 인터뷰를 했다. 이 작가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는데 목소리 소설이라고 한다.


처음 글을 쓰고 싶을 때는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싶은데 작가 생활을 오래하면 나를 조금은 죽일 필요가 있다고 한다. 내가 전해줘야할 이야기가 나보다 중요하다. 알렉시예비치는 이 쓰라리고 아픈 이야기말로 승리자의 역사, 남성들의 전쟁, 국가주도의 기억만들기 속에서 잊히고 짓밟히는 소수자들의 목소리임을 밝혀낸다.

이 책에서는 사람들의 집단적 심리나 개개인의 미세한 감정의 떨림까지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작가의 절절한 감수성과 따스한 마음씨가 모든 시공간의 장벽을 허물어버리는 듯하다.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게 이 취재의 목적이다. 말하기를 듣고 글쓰기로 바꾸는 것이 제일 어려운데 이 작가는 단순한 취재를 작품으로 만들었다. 글을 잘 쓰려면 장르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슬픔을 통해서 우리는 연결된다. 고통을 느끼는 인간의 메커니즘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반드시 들어주어야만 세상 밖으로 흘러넘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 잘 하는 입술’ 이 아니라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는 귀’ 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애써 자신을 드러내려하지 않고 자신의 글 속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울음과 절규를 참고 또 참아온 여성들의 목소리가 최대한 날 것 그대로 울려 퍼지게 내버려둔다.

시간이 없다면 가장 첫번째 이야기 신혼부부 이야기만이라도 읽기를 추천한다. 너무 가슴이 아픈 이야기다. 이 책은 원전 폭발의 가장 가까이 있었던 소방서와 그의 아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책을 읽으면 원자력만의 문제가 아닌 기후 재난도 생각하고 지구에서 우리가 살면 앞으로 겪을 재난이 많을텐데 우리가 어떻게 이 지구를 지킬 것인가? 를 생각하게 된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게 된 것 같다. 조금은 어렵고 긴 책이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이 책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아이들을 취재한 챕터도 있는데 읽고 눈물이 났던 구절이 있다.


"나는 열두 살이에요. 나는 집에만 있어요. 나는 장애인이에요. 우체부 아저씨가 우리 집에 오면 할아버지와 내 연금을 가져 와요. 우리 반 애들이 내가 백혈병 걸렸다는 걸 알았냈을 때, 내 옆에 안 앉으려 했어요. 나한테 닿을까 봐 무서워했어요. 내 손을 한 번 봤어요. 내 책가방과 공책도 봤어요. 아무것도 안 바뀌었어요. 그런데 왜 나를 무서워했는지 모르겠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그러는데요, 우리 아빠가 체르노빌에서 일해서 내가 아픈거래요. 나는 아빠가 갔다온 다음에 태어났는데도요. 그래도 난 아빠가 아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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