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날씨가 너무 더워서 하루 종일 선풍기를 틀어놓고 이 책을 읽었다. 정여울 선생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작가다. 선생님의 책은 거의 다 읽어봤을 정도로 팬이다. 선생님의 감수성과 글에서 들어나는 솔직함을 좋아한다.선생님과는 3 번의 글쓰기 수업과 1 번의 심리학 수업을 들었다. 이 책은 나도 참여를 한 최인아 책방에서 진행한 첫번째 글쓰기 수업의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다른 글쓰기 책보다 차별화 되는 것 같다.작문의 기술을 가르치는 곳은 많지만 작가의 태도나 작가의 미래, 글쓰기의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곳은 드물다.
선생님은 책 처음부터 글쓰기의 비결을 알려준다.
"매일 화초에 물을 주듯이, 마음속에서 습작을 하는 거예요. 잘될 거라는 기대도 없이, 잘 안 될 거라는 비관적 생각도 걷어치우고,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무작정 신이 나서 씁니다."
너두 간단한 것 같지만 정말 이게 답인 것 같다.
Q&A 파트에서 어휘력과 문장력을 키우는 부분에 대한 조언이 남다른 것 같아서 공유하고 싶다.
어떻게 어휘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사전을 통째로 외워서 어휘력이 확 좋아진다면 저도 그렇게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휘력은 많은 단어를 암기하는 능력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딱 맞게 어울리는 단어를 배치하는 힘이더라구요. 이미 알고 있는 언어에 관한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속에 어울리는 단어나 어구를 발명해내는 것에 가까워요. 단순히 단어를 찾는 능력이 아니라 문장 전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어휘력이에요. 비유하자면, 1,000개로 나뉜 퍼즐 조각을 정확하게 맞추는 능력보다는 망망대해에 펼쳐진 모래밭 위에서 우연히 아름다운 조개껍질데기를 발견해 그것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목걸이를 만드는 센스가 필요해요.
어휘력은 기계적이고 수학적이라기보다 우연과 순발력, 열정의 소산이지요. 우연과 순발력, 열정을 키우려면 다채로운 상황 속으로 나를 던져야 해요. 예컨대 열두 시간 동안 책을 읽고 글만 쓰기보다는, 책 한 권, 영화 한편, 그림 세 점, 음악 세 곡을 감상하는 편이 낫지요. 우리의 뇌는 매우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 다양한 자극과 연결될수록 아름다운 우연을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져요. 예컨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을 들으면서, 마이클 온다체의 소설 "잉글리시 페이션트" 를 읽고, 앤서니 밍겔라 감독이 만든 동명의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 를 보고, 이 영화 속 사막의 배경에 어울리는 앙투안 드 생테쥐페리의 소설 "인간의 대지" 도 읽어보고, 사막에 관련된 그림이나 사진도 찾아보고는 거예요. 어휘력과 아이디어는 같이 오기 때문에 따로 단어 공부를 하기보다는 이렇게 텍스트 전체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공부가 필요해요. 때로는 없는 단어를 창조해 낼 정도로 도발적인 상상력이 필요해요. 어휘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언어를 뛰어넘어 사유해야 해요.
문장력을 키우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문장 훈련은 외운다고 되지 않는 게 문제예요. 하지만 외우는 게 분명 도움은 되지요. 모방은 하면 안 되지만, 응용은 가능하거든요. 문장 그대로를 못 외우더라도 그 문장이 왜 매력적인지는 기억하는 게 좋아요. 예컨대 문학작품 속 주인공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보여주는 문장이 있습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에서 스타킹을 신는 한나의 몸짓을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하는 대목이 있어요. 독자에게 그녀를 사랑할 기회를 주는 것이지요. 스타킹을 신는 한나의 모습을 왜 이토록 자세하게 묘사하나 싶었는데, 그것은 바로 한나의 핵심적인 매력이었어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이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 완전히 무관심한 여인의 천진무구한 몸짓이었던 것이지요. 아름다운 뭊앙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향한 초대장을 내밉니다. 그 초대에 응하지 않을 수 없도록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마력을 지는 문장을 쓰는 것이 모든 작가의 꿈이지요.
' 그 문장은 왜 아름다울까' 를 생각하는 것이 문장 훈련에 가장 도움이 되었어요. 그렇게 매혹적인 문장을 계속 탐구하고 외우고 되새기다보면 언젠가는 그 문장을 뛰어넘어 나만의 문장을 쓰게 됩니다. 조급해하면 절대로 안 되죠. 문장은 맹리 훈련하면 조금씩 좋아집니다. 예를 들어 아무 단어나 생각나는 대로 열 개만 적어놓고 하루에 열 문장씩 짧은 글쓰기를 하는 거예요. 한 단어당 한 문장씩, 그 단어가 들어가게끔 문장을 만들면 돼요. 이 과정이 재미있다면 딸기, 시인, 우체부라는 단어를 가지고 한 문장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세 문장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열 문장을 만ㄷ르어보기도 하는 거죠. 이런 과정이 재미있게 느껴지면 문장 만들기에 재능이 있는 거예요.
짧은 글쓰기를 즐겨보세요. 친한 사람에게 "네가 좋아하는 단어 세 개만 선물해줘" "아무 단어 세 개만 선물해줘" 라고 말해보세요. 단어를 선물해달라고 이야기하면 대부분 깊은 생각에 잠기고, 단어를 선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선물 받은 그 세 개의 단어로 짧은 글짓기를 해보세요. 단어를 선물한 사람의 삶을 묘사하는 것도 좋아요. 누군가의 아주 소중한 단어를 재료로 삼아, 보석보다 더 애지중지 아끼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세요. 어휘력뿐만 아니라 사유하는 힘이 길러질 거예요.
책에서 마음에 닿았던 문장들을 공유하고 싶다.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 라는 자만심 보다는 "나는 매일 매일 글을 써야 하고, 글을 써야만 진정으로 깨어 있을 수 있다" 라는 간절함이 작가의 힘입니다. 저에게 글쓰기는 "나의 삶 자체가 타인에게 선물이 되는 법" 을 꿈꾸는 길입니다. 한 문장이 누군가를 미소 짓게 할 수 있다면, 한 문장이 누군가의 고단한 등을 쓸어주는 따스한 손길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커다란 기쁨이 아닐까 싶습니다. 딱 한 사람만 먼저 감동시켜보세요. 한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습작을 할 때는 바로 그런 소박한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먼 훗날 위대한 자가가 될 사람들도 처음에는 단 한 사람이 자신의 글을 읽어주기를 바라며 글을 써요. 불특정 다수의 대중 독자를 상상하지 마세요. 단 한 사람을 떠올리세요.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람이 온 마음을 다해 당신의 글에 공감해주기를 바라며 글을 써보세요.
취재할 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대상과 주제를 향한 사랑입니다.
브랜가 없어도 나 자신을 꾸밈없이 사랑합니다.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어떤 글을 통해 진정한 내 삶을 하루하루 조각할 것인가, 이 문제가 저에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브랜드가 될 시간이 없어요.
항상 독자를 생각하면서 글을 써야 하지만 그렇다고 독자만을 생각하면서 글을 써서는 안 돼요. 그러면 글에서 내가 사라져요. 글쓰기는 결국 에고와 셀프의 대화이거든요.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나와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는 가장 깊은 곳의 나의 대화를 독자에게 보여드리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글을 쓰는 대상에 애정을 지닌 이가 오래 글을 쓰고 독자의 마음 속에 기억됩니다. 대상을 사랑하는 감정이야말로 힘든 순간에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힘입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문장을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저의 내면과 거의 혼연일치가 된 그런 문장을 쓰고 싶었어요. 그것이 저의 유일한 문장론이기도 해요. 내 삶과 일치하는 문장, 내 마음의 무늬와 어우러지는 문장, 그리하여 그 문장 자체가 나의 영원한 분신이 되는 그런 문장을 꿈꿉니다. "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이 문장이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제 모습은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조차도, 출판 계약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을지라도, 그냥 나만의 글을 자유롭게 쓰고 있는 제 모습' 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