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문해력 프로젝트]촘스키, 사상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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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촘스키: 비판적 평가" 라는 완결판 비평적 논문집을 편집한 바 있는 탁월한 편집자 오테로 Carlos. P. Otero 가 "언어와 정치" 라는 촘스키 대담집 이후에 논의의 범위를 더욱 넓혀 민주주의와 교육이라는 주제로 촘스키의 인터뷰 10편, 강연 5편, 에세이 10편 등 총 25 편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촘스키 사상을 언어학, 심리학, 사회학, 교육학, 철학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보여주는 진정한 촘스키 사상의 파노라마다. 그는 인식론의 관점에서 보면 관념론자고, 심성론으로 보면 성선설 지지자고, 사회조직론에서 보면 자유사회주의자고, 정치 이론에서 보면 대중민주주의자고, 언어 이론에서 보자면 보편문법 주창자고, 교육 이론에서 보자면 창의적 교육의 지지자다. 책이 천페이지가 돼서 길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촘스키 책을 처음 읽는 독자들에게 좋은 입문서이다.

죽기 직전 촘스키는 자신이 살아온 주요한 목표를 이렇게 말했다. "인격이 원만하고, 자요롭고 독립적인 사고방식을 지녔고, 세계를 발전시키고 향상시키는 데에 관심을 가졌으며, 모든 사람을 위하여 인생을 좀 더 의미 있게 그리고 값어치 있게 만드는 데에 관심이 높은 개인들을 교육하려고 했다."


이 책에서는 대학의 역할과 지식에 대해서 이야기는 부분을 공유하고 싶다.


"무엇이든지 인간의 자유스러운 선택에서 나오지 않는 것 그리고 단지 지시와 지도의 결과인 것은 인간의 존재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의 진정한 본성에 항상 이질적인 것으로 남고 만다. 지시와 지도를 통해 받아들인 것들은 인간은 결코 진정한 열정을 갖고 수행하지 않으며 단지 정확하게 기계적으로만 이해할 뿐이다. 세뇌과정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학교에서 발견되는 전체주의와 기술관료적인 사고방식이다."

-> 사실 이건 촘스키의 주장이 아니라 훔볼트의 주장이며 촘스키는 이것이 저절로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거짓임을 암시하는 어떤 과학적 증거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자유스러운 선택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학교에서 또는 학교 외부에서 좋은 교사들의 지도를 받아서 교육받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학생들이 기계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 내용을 진정으로 깨닫도록 훌륭한 교수법으로 지도하는 교사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학교를 질타하려고만 이 문장을 인용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인간중심적 교육관의 실현을 바란다.

"노골적이고 저속한 세뇌교육보다 더 중요하게 경계해야할 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학교에서 발견되는 전체주의라는 일반적 양상과 문제 해결에서 전문가에 대한 경외감을 앞세우는 기술관료적인 사고방식 등입니다. 이런 사항들은 선진 산업사회에서 퍽이나 당연시되고 있고 우리 삶의 몇몇 분야에서 병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지식기반 사회로의 이동을 숭배와 희망 어린 기대를 갖고 기술하는 이면에는 의심스러운 측면들이 들어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지식인가"? 그리고 "누구를 위한 지식인가?" 하는 문제들이 항상 전면에 나타납니다. 그 대답들은 때때로 그리 호감이 가지 않는 것들입니다. 좀더 근본적인 점에서 볼 때 그 개념 (지식기반 사회) 은 허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풍요한 지식 knowledge 은 진정한 이해 understanding 와는 다릅니다. 진정한 이해란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세계 속에서 우리가 처한 본래의 자리에 대한 통찰을 포함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 말해보건데, 이해 기반 사회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고상한 성품의 사람이 살고 싶은 그런 세계가 올 것이라는 전망은 무방합니다.


지적 역사 전체에 걸쳐 세계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탐구와 올바른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탐구는 상호 구별되었습니다. 지적이고 문화적인 전통들은 물론 이 문제들을 두고 강조하는 측면들이 서로 달랐습니다. 세계가 지식에 기반을 둔 지적이고 사회적인 질서를 지향하기 때문에, 혹은 우리의 희망이긴 하지만 이해에 기반을 둔 사회로 이동하기 때문에, 대학의 책임은 두 가지 측면에서 증대될 것 같습니다. 대학은 사유, 사상, 과학과 인간 삶에 대한 통찰, 지식, 폭넓은 이해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것들은 좀더 인간적인 미래로 향하는 길을 발견하는 데에 필요할 것입니다. 이 목적에 이바지하기 위해서 대학은 외부의 압력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게다가 외부의 압력을 받지 않을 자유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우선 지식과 진정한 이해는 정말 다르다. 우리는 우리가 정보와 지식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지혜를 원한다. 지식은 뒤죽박죽 섞인 사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고 지혜는 뒤얽힌 사실들을 풀어내어 이해하고, 결정적으로 그 사실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지식은 알고 지혜는 이해하는 거라고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책에도 언급되어 있다.

대학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요즘엔 대학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는 회사에서 활용을 할 수 없어서 사람들은 대학 이외의 많은 플랫폼에서 지식을 습득한다. 유튜브, 김미경 대학, 클래스 101, 탈링, 오마이 스쿨, 윌라 등 교육 관련 온라인 플랫폼은 점점 많아진다. 대학은 지식을 습득하는 곳보다는 토론을 하는 곳으로 변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촘스키는 지식인의 역할이란 사람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그래서 권력에 속절없이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또한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다음 책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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