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최인아 대표님 추천 책- 언어의 높이뛰기


언어에 대한 책은 항상 관심을 갖고 읽고 있다. '언어의 높이뛰기' 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신지영 교수님의 언어 감수성 향상 프로젝트이다. 최인아 책방의 최인아 대표님 추천하신 책이라 더 관심을 갖게 됐다. 책방에서 북토크도 진행이 됐는데 아쉽게도 날짜가 맞지 않아 북토크는 듣지 못했다.


교수님은 언어학자로서 대한민국 시민들의 소통 능력 향상에 힘을 보태는 일을 소명으로 여기고 있다. 일상에서 무심코 쓰는 언어에 차별과 편견의 시선이 담겨 있지 않은지 점검하기 위해,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문제를 공유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 책에는 지난 20년 동안 언어 감수성을 높이고자 지음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를 통해 발견하고 성찰하게 된 내용을 정리하고 풀이했다.


이 책은 10 개의 챕터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가장 의외라고 생각했던 호칭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 가족 호칭에 숨은 불편한 진실이 있다.

여성은 결혼을 해서 배우자의 부모님을 보통 '아버님, 어머님' 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남성은 결혼을 해서 배우자의 부모님을 '장인어른, 장모님' 이라고 부른다. 여성과 남성이 배우자의 부모님을 다른 방식으로 부르고 있다. 당연한 일이라서 특별히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여성이 배우자의 부모님을 부르는 '아버님, 어머님' 은 '아버지, 어머니' 에 높임을 의미하는 접미사 '-님' 을 붙인 말이다. 반면에 남성이 배우자의 부모님을 부르는 '장인어른, 장모님' 이란 남자 어른과 여자 어른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말에는 부모라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다.


이처럼 결혼한 여성은 배우자의 부모님에게 호칭어를 통해 '저는 당신의 자녀입니다' 를 지속적으로 고백하는 반면에 결혼한 남성은 배우자의 부모님에게 호칭어를 통해 '저는 당신의 자녀가 아닙니다' 며 지속적으로 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백과 선 긋기는 놀랍게도 우리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 여성은 결혼을 하면 배우자의 가족에 편입되는 반면에 남성은 결혼을 하면 배우자의 가족과는 가족 관계를 이루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최근에는 사위도 '아버님, 어머님' 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이 늘기는 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전히 '아버님, 어머님' 보다는 '장인어른, 장모님' 이라고 호칭하는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성들은 배우자의 부모님으로부터 '새아가, 아가, 며늘아가, 얘야' 와 같이 불린다. 만약 결혼을 해서 서로의 문화를 배우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르는 거라면 여성의 부모님도 사위를 같은 의미에서 '새아가, 아가, 사위아가, 얘야" 라고 해야 할텐데 그렇지 않다. 사위에게는 사위의 성에 '서방' 을 붙인 'O 서방' 이라고 한다.


여성과 남성은 부모님이 부르는 호칭어가 다르니 부모님으로부터 듣는 말 대접도 다른다. 여성은 배우자의 부모로부터 '너' 라 불리며 해체나 해라체의 말을 듣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에 남성은 배우자의 부모로부터 '자네' 라 불리며 하게체의 말을 듣는다. 여성과 남성이 결혼 후 배우자의 부모님으로부터 다른 대접을 받고 있음이 호칭을 통해 드러난다.

배우자의 동생을 부르는 말을 비교해 보면 더욱 더 큰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여성은 배우자의 동생들을 성별에 따라서 '아가씨, 도련님' 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남성은 배우자의 동생들을 성별에 따라서 '처제, 처남' 이라고 부른다.


'아가씨, 도련님' 과 '처제, 처남' 의 호칭어는 서로 다른 높임 말을 이끄는 호칭어다. 호칭어로 말 대접이 달라진다. '아가씨, 도련님은' 존댓말을 이끄는 호칭어다. 반면에 '처제, 처남' 은 반말을 이끈다.


습관화 되어 있는 것을 굳이 따진다고 피곤하다고 뭐 그렇게 예민하게 구느냐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까짓 호칭이 뭐라고! 하지만 습관화되어 있다고 옳은 것은 아니다. 불편한 것은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호칭어가 불편하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호칭어가 불편하다면? 그리고 그 호칭어가 이끄는 높임의 정도가 공평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연히 서로 말하는 것이 불편해질 것이다. 말하는 것이 불편해지면 말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서로 말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면 서로 만나려 하지 않을 겻이다. 만나면 말을 해야 하고 말을 하려면 호칭어를 쓰지 않을 수 없다.

가부장적이고 불평등한 세계관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세계관이 아니라면 그런 세계관이 담긴 표현들을 새로고침해서 우리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 물려 줄 의무가 있다.


우리의 후세들이 인권과 평등의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둔 대한민국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가족 안에서 사용되는 매일매일의 언어 표현이 인권을 존중하고 평등의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생각한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인 단어들과 코로나 19시대의 언어 풍경에 대한 챕터도 읽기 권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말에 담긴 뜻을 되짚어 보고, 예민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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