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최소한의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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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글을 좋아한다. '개인주의자 선언'과 '쾌락독서' 를 통해서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 책은 출판사 인스타에서 발견하고 읽게 되었다. 그의 해박함과 문장력을 좋아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것 같아 좋아한다. 20여 년의 판사 생활을 마치고 로펌에 들어가는 대신 여행하며 글을 쓰는 삶을 택한다.

이 책은 인간의 존엄성에서 시작하여 자유와 평등에 이르는 헌법 이야기를 저자의 생각과 함께 쉽게 풀어 쓴다. 챕터마다 길지 않아서 쉽게 읽힌다. 그 중에서 요즘 우리가 관심을 갖을 만한 주제가 있어 공유하고 싶다.

인공지능 시대의 평등이라는 제목의 챕터이다.

헌법적 가치 중에도 시대 변화에 따라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들이 있다. 헌법 역시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근대적 헌법이 탄생한 시민혁명기에는 "자유"가 중심이었다. 봉건 시대의 신분제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욕구가 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 산업혁명 이후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 발생한 극심한 빈부격차는 '평등' 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의 비극은 "인간의 존엄성" 을 강조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에 그 중요성이 가장 부각될 헌법적 가치는 무엇일까?


'평등' 이다.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과학 기술 발전이 인간 사이의 불평등을 인류 역사상 본 적 없는 수준으로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는 노동자에 대한 불평등한 분배가 문제였다면, 인공지능 시대에는 인간의 노동력 자체가 필요 없어지는 사태가 가장 심각한 문제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실로 놀라운 속도여서 의사, 변호사는 물론 판사도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다고 본다. 인공지능이 어느 직업까지 대체할 수 있는지는 테크놀로지의 문제라기보다 가치관의 문제, 정치의 문제다. 인공지능 판사에게 사형까지 가능한 형별 권한을 줄 것인가? 자율주행 자동차가 긴급 상황에서 운전자를 희생시킬지 보행자 희생시킬지 매뉴얼에 따라 결정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나 사회가 수용 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 없는 미래로 향해 가고 있다. 로봇공학과 인공지능이 결합하면 '월급 루팡' 도 파없도 회사 뒷담화도
없이 24시긴 365 일 가동 가능한 공장들은 얼마든지 돌릴 수 있다. 인공지능 플랫폼과 로봇을 소유한 극소수와 그렇지 않은 프레카리아트 사이의 불평등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를 수 밖에 없다. 프레카리아트란 이탈리아어로 '불안정하다 precario' 와 노동자를 뜻하는 독일어 '프롤레타리아트 proletariat' 의 합성어로 양극화된 사회에서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형태의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면서 저임금으로 살아가는 계층을 말한다.

프레카리아트가 전통적인 노동자 계층과 다른 점은 분산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노동자 계층은 비록 경제적으로 약자의 지위에 있다 하더라도 작업장별 산업별로 노동조합을 결성, 헌법상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무기로 사용자와 힘의 균형을 맞춰갈 수 있다. 그러나 한 작업장에 모인 다수 노동자가 필요 없는 인공지능 시대의 노동은 정치적 협상력을 갖추기 어려운 모래알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전통적인 노사관계를 기피하고 플랫폼과 이를 이용하는 개인사업자의 관계로 조직을 구성하기를 선호한다. 헌법상의 평등을 지탱하는 강력한 무기가 노동3권을 지렛대로 한 협상력인데 그것이 무너지는 것이다.


정치적 협상력을 상실한 노동자의 임금은 하락할 수 밖에 없고, 직업 안정성이 없는 '알바 인생' 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 연대의식이 사라진 각자도생 경향은 심화된다. 이렇게 되면 사회 구조를 변화시킬 동력조차 사라지고 만다. 역설적인 점은, 이러한 디스토피아를 만드는 것도 자본주의지만 그것을 막아야 하는 이유도 자본주의에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는 곧 소비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생산해도 소비해줄 사람들이 없으면 경제는 붕괴한다. 다수 계층의 구매력이 대폭 감소한 상태에서 테크놀로지로 인항 생산력만 폭증하면 공급 과잉으로 인한 공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미지의 문제에 부딪히면 우선 과거의 경험들에서 실마리를 얻기 시작한다. 요즘 유력한 대안으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제도도 그 기원을 거슬러올라가면 2000년 전인 로마 제국 시대에 이른다. 정복전쟁으로 노예가 대폭 증가하지만 평범한 로마 시민들은 값싼 노예 노동력에 밀려 일자리를 잃게 된다. 사회 불안이 고조되자 로마는 시민들에게 매달 30킬로그램의 밀을 주고 공공 서비스를 무상 제공했다.

과거의 경험에서 헌법적 상상력을 얻는 것이 필요한 시대다. 기본소득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를 다른 법제도에서 착안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민법상의 유류분 제도다. 유언 공증만 해놓으면 유산을 제일 이쁜 자식 한 명에게 물려주고 나머지 자식들에게는 한푼도 물려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는 안 된다. 최소한 법정상속분의 절반까지는 모든 자식이 받을 수 있도록 법이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류분이다. 실제로 법원에서는 유류분을 침해당했다며 반환을 청구하는 형제자매 간 소송이 많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최소 수혜자에게도 이득이 될 경우여야 정당화될 수 있다는 존 롤스의 '정의론' 이야말로 인공지능 시대에 꼭 필요한 원칙이 될 수 있다. 빌 게이츠가 도입을 주장한 '로봇세' 도 롤스의 '정의론' 에 부합하는 제도다.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므로 노동자를 대체한 로봇에게도 노동자들과 비슷한 수준의 과세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로봇을 소유한 기업에 대해 과세해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이다.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혁신은 그로 인하여 일자리를 잃는 최소 수혜자에게도 이득이 되어야 한다는 발상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글로벌 기업들에게도 인간은 계속 필요하다. 상품을 소비해줄 사람들이기 때문일기도 하고, 삶 전체에서 끊임없이 빅 데이터를 제공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빅 데이터를 통한 강화 학습이 필요한 인공지능에게는 인간이 생산하는 데이터가 곧 철광석이고 석유다. 산업의 쌀이다. 여기서 사회적 대타협의 여지가 생긴다. 로봇세나 기본 소득을 제안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등 글로벌 IT 기업가들인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기존의 일자리를 파괴하는 혁신 기업가들에게 그로 인한 실업자들을 위해 새 시대에 필요한 직업훈련을 제공하도록 하는 패키지 딜을 의무화할 수도 있다. 늘어나는 복지 서비스 수요에 대응할 정부 부문의 비대화와 비효율성을 막기 위해 가장 창의적인 집단인 혁신 기업가들에게 복지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을 주 기업과 함께 운영하도록 권장하고, 대신 그만큼 세금 혜택을 주는 방법도 있다. 수동적으로 세금을 내는 게 아니라 복지 서비스 분야에서도 특유의 창의성을 발휘하며 혁신적인 플랫폼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이다. 자유와 창의를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하되 평등이 이를 제어하도록 하는 헌법실저의 근본과도 부합하는 접근법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개념이나 제도보다도 '사고방식' 이다. 헌법의 기본 원리를 만드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들이 따라야 하는 사고방식, 판결문을 작성할 때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 다시 말하면 '법학적 사고방식 이자 '법치주의적 사고방식'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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