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은 오래 전에 최인아 책방에서 북토크 주제로 다뤄진 적이 있어서 읽었다.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고전을 읽기로 마음을 먹어서 첫 작품으로 이 작품을 다시 선택했다. 이 책은 병상과 임종이란 소재로 쓰인 소설 중 가장 통찰력이 있는 작품 중 하나로 여겨진다. 서문의 내용 일부를 공유하고 싶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여러분, 이반 일리치가 사망했다는군요."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병자가 죽을지 아니면 살아날지 걱정하지는 않는다. 죽음의 과정과 뒤에 남는 삶을 궁금해한다.
이반 일리치는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물직적이다. 그는 법대를 나오고 막연히 결혼을 해서는 별 생각 없이 두 아이를 낳았고, 출세를 위해 인맥을 동원하고 기회를 잡아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출세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그도 계속해서 자신의 능력보다 더 높이 올라갔지만, 승진할 때마다 그는 더 많은 돈을 벌게 되고 자신이 잘 건사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의 가정생활은 무관심으로 대변되는데, 그 이유는 부부가 서로 맞지 않고 그나마 있던 애정마다 곧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가정생활이 그렇게 되자 이반 일리치는 직장, 그리고 적은 돈을 걸고 카드놀이를 하는 몇몇 친구들과의 어울림에서 만족을 찾았다. 그러던 중년에 접어들어서 병으로 쓰러지게 된 것이다. 병이 진전되고 병이 커지는 걸 이반이 자각하게 되면서 작가는 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정밀하게 파헤친다.
그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의 죽음으로 얻게 될 자신의 이익에 주목했다. 하나같이 머릿속으로,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자신과 동료들의 자리 이동이나 승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분석하고 계산하기에 바빴다. 이들은 그와 동시에, 가까운 사람의 사망 소식을 듣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동료가 죽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해 '내가 아니라 바로 그 친구가 죽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함께 느꼈던 것이다.
이반 일리치가 유일하게 행복을 느꼈던 순간은 하인 게라심과 함께 할 때였다. 게라심은 이반에게 마지막까지 편안함을 주었다. 또 다른 사람은 그의 아들이었다. 아들은 이반이 세상을 뜨기 한 시간 전에 나타나 손을 붙잡아 자기 입술에 갖다 대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이반 일리치가 구멍 속으로 굴러떨어져 빛을 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 성공한 이유는 교훈적 메시지, 즉 우리가 인생을 재평가해야 하고, 사랑이 삶의 유일한 규범이라는 가르침을 설들력 있는 이야기 형식에 완전히 융화시켰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죽어야 할까? 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삶과 죽음의 진실한 의미를 담고 있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사실 그걸 의식하면서 살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죽고 싶고, 죽음의 순간에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남길 바라는지 생각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