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애쓰지 않아도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그리고 "밝은 밤" 으로 좋아하게 된 최은영 작가의 신작 짧은 소설집이 나와서 바로 읽어봤다.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곳에서 발표했던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라고 한다.


낯선 해변에서 답 없는 미래를 고민하던 기억 (데비 챙), 목적지 없이 정신없이 걸어 다니던 기억 (한남동 옥상 수영장), 떠난 고양이를 애도하던 기억 (꿈결, 무급휴가), 친구와의 관계에서 솔직할 수 없던 기억 (애쓰지 않아도), 폭렬적인 공익광고를 보던 기억 (손 편지), 병아리를 키우던 기억 (안녕, 꾸꾸), 고기를 먹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호시절)...


작가의 말 중에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글쓰기 호흡이 긴 나에게 짧은 글쓰기는 매번 큰 도전으로 다가왔다. 의식하지 않으면 몸에 힘이 들어가서, 순간순간 멈춰 최대한 힘을 빼고 경직되지 않으려 했다. 억지로 애를 쓰고 힘을 들이면 삶도, 글도 더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는 일, 그것이 내가 글과 나에게 보여야 할 유일한 태도라는 것을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배웠다. 무리해서 애쓰지 않고 자연스러운 호흡을 따라가려 했다."


아마 이런 생각으로 책의 제목과 같은 제목인 "애쓰지 않아도" 이야기도 쓰지 않았나 싶다. 모든 이야기가 어렵지 않고 공감이 가긴 했지만 특히 친구와의 관계를 다룬 '애쓰지 않아도' 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 이야기는 엄마가 사이비종교에 빠진 '나' 에 대한 이야기다. 서울로 이사를 한 나는 친구가 없어 고민하는데 "유나"라는 아이가 말을 걸게 되어 친구가 된다. 유나는 반에서 반장이 되고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체육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 인기가 많은 아이다. 이런 유나의 무리에 끼게 되어 '나' 는 기뻐한다. 유나와는 밖에서 특별히 만나지는 않았는데 어느 날 유나는 '나' 가 다니는 도서관에 회원이 되고 싶다고 한다. 수업을 마치고 '단둘이' 도서관에 갔다.


"넌 좀 어른스러워. 항상 웃는데, 그게 가끔은 슬퍼 보이더라." 유나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더욱 더 이렇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수학여행을 간 어느 날 '나' 는 유나에게 서울로 올라오게 된 이야기와 엄마 이야기를 한다. 둘의 비밀로 간직해달라고 했지만 나중에 유나가 그 당시 반 친구들에게 이야기한 것을 알게 되고 상처를 받는다.


"영원히 용서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유나에 대한 나의 마음은 그게 어떤 모습이든 늘 과하고 넘친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이제 애쓰지 않아도 유나를 별 다른 감정 없이 기억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학창시절 친구들이 생각이 났다. 그 당시에는 친구들과의 관계에 특히 집중했던 것 같다. 아마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지 않나 싶다. 성인이 되면 조금은 사람 관계가 편해져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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