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한 전문가들이 쓴 에세이를 좋아한다. 특히 여성이 쓴 경우라면 꼭 찾아 읽는다. 이 책은 거의 20년동안 전문번역가로 일한 두 번역가가 서로에게 쓴 편지를 엮은 에세이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까지 노력한 과정, 번아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일하게 된 동기, 존경하는 사람들, 일에 대한 철학, 공부하면서 읽은 책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이 책은 꼭 번역가가 아니더라도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많이 공감할 것 같다.
번역가가 힘든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힘든 일인줄은 몰랐다. 엄청난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지만 시간당 페이가 최저시급보다도 못할 때도 있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그래도 문학이 좋아서 그리고 글쓰기가 좋고 이 직업이 좋아서 20년동안 일한 이들이 존경스러웠다.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번역가들은 말과 이문화에 매혹된 사람들이다". 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이 직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느낀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을 번역한 이디스 그로스먼의 책 "번역 예찬" 에 우습기도 하고 재밌는 이런 문장도 있다.
"진지한 전업 번역라라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때, 달리 어떤 생각이 들건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대개는 남몰래 그런 생각을 하지요. 순전히 주제넘은 생각일까요? 분수를 모르는 도취적 생각일까요? 번역가는 그저 하찮고 이름 없는 문학의 시녀요, 시종이 아닐까요? 고마워하며 출판업계에 늘 알랑거리는 종이 아닌가요? 제가 동원할 수 있는 말 중에 가장 울림이 있고 점잖은 대답은 '아니오' 입니다. 번역가가 하는 일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글을 쓴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고쳐 쓰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번역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런 이유이다. 번역가도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10년 전에 우연히 많은 작가들이 번역 일도 같이 겸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특히 글쓰기 스킬을 늘리고 싶으면 번역을 해보라는 충고가 마음에 와 닿았다. 그때는 내 글을 쓰고 싶어서 번역을 글쓰기 공부하는 툴로 생각했던 시기였지만, 지금은 문학이 좋고 번역 자체가 좋아서 번역 공부를 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 번역가들이 단어 하나를 번역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고 고민을 하는지 알 수가 있다. 그런데 가끔 파파고보다도 번역이 못하다는 독자들의 악평이 달리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으니 정말 마음이 아파진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A4 한 페이지라도 번역을 한번이라도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마 첫 번째 단락에서 포기하게 될 것이다. 많은 번역가들은 원문보다도 번역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번역은 많은 고민이 필요한 직업이다.
출판 번역이 우리 나라에서 더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더 많은 해외 작품들이 번역이 되고, 반대로 우리 나라 문학도 해외에 더 많이 수출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며칠 전에 요즘 인기인 '파친코' 번역 선인세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원작에서 번역이 다시 된다고 하는데 번역가는 얼마나 인정받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