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생산성이 이만큼 발전했는데 도대체 왜 우리는 만족하지 못할까? 우리는 얼마나 더 소유해야 행복할까? 엔데믹의 사전적 의미는 '주기적 유행' 단계라는 뜻이다 예상치 못할 만큼의 급격한 감염병의 증가는 종식되었다는 말이다. 팬데믹의 끝이 바리어스가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속적으로 바이러스에 대응하면서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엔데믹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풍요로운 삶을 살 것인가? 이 책을 통해 엔데믹 시대를 풍요롭게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 답을 찾는 여정을 떠나고 싶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욕망과 실제 사이의 괴리를 찾는 과정은 우리 모두에게 가치가 있을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시각을 통해 그들의 주장이 오늘날 우리 경제와 삶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다각도로 살펴본다. 26명의 경제학자를 소개하는데 첫번째, 폴 새뮤얼슨의 행복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 나라는 여려 지표에서 소득 수준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이 뒤쳐지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의 행복지수는 2022 년 조사 대상 146 개국 중 59위였다. 새뮬얼슨은 '행복은 욕망 분의 소유' 라고 단순하게 정의했다. 행복을 결정하는 두 가지 요소가 소유와 욕망인데,소유한 것이 많더라도 욕망이 더 크면 행복하지 못하고, 소유한 것이 적더라도 욕망이 더 적다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너무 단순하기도 하고, 새뮬얼은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 않다고 여긴 것 같다. 그런데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일까? 탐욕에 대한 경고다. 그는 아무리 개인의 소유가 늘어도 욕망이 도를 지나쳐 탐욕이 되면 불행해질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소유가 행복의 전제 조건이라는 새뮤얼슨의 주장을 물신주의로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소유하지 않는 삶을 살기란 사실 여럽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소유하고, 소유를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소득을 얻고자 일을 한다. 그런데 행복에 대한 논의는 여러 기준들을 포함해서 삶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 생각한다. 저자는 사뮬엘슨의 방정식을 조금 바꿔본다. 행복은 기대 분의 실현이라고 제안한다. 기대가 일정하다면 실현이 커질수록, 실현이 일정하다면 기대가 적을수록 행복해지는 것이다. 눈높이와 기대의 차이로 많은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자본주의에 돈은 필요하다. 그러나 청소년 행복지수가 최하위인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돈을 첫손가락으로 꼽는 현실은 새뮬언슨의 방정식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인 충족과 균형 되게 좋은 감정으로 충만해야 이루어진다. 풍요로운 삶은 물질 못지않게 행복이 아주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곳에서도 올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데서 온다. 각자 자신만의 행복에 대한 정의를 갖고 살아가는 게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