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좋은 시가 너무 많아서 한 편 더 소개하고 싶다.
꽃 -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러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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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대해서 작가님의 인사이트를 공유합니다.
경계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경계, 사용자와 노동자의 경계, 유럽인과 유대인의 경계, 도시인과 시골사람의 경계,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과 사막에서 힘들게 삶을 이어 가는 사람의 경계, 이념 사이의 경계, 종교 사이의 경계, 사상과 체제 사이의 경계, 정당 사이의 경계, 부모와 자식 사이의 경계, 부부 사이의 경계...우리가 혹시 자신이 누리는 세상의 한복판에 산다고 하여도 늘 경계를 의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계 너머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