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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기획자 Eli Nov 12. 2023

257. 벤 버냉키의 21세기 통화정책


오랜만에 북리뷰를 올립니다. 그 동안 학업과 병행하여 애드아시아라는 프로젝트의 연출 총감독으로 일하느라 너무 바빴네요. 2학기에서는 통대에서도 경제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오늘은 21세기 통화정책에서 멕시코 페소화 위기에 대한 내용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1982년 폴 볼커가 주도한 금리 인상은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 국가에 금융위기를 초래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린스펀이 1994년에 추진한 긴축 조치도 멕시코를 압박했고, 결국 이 나라는 디폴트 위기에까지 몰렸습니다. 그러나 1994년의 멕시코 위기가 이전과 달랐던 것은 지난 10년간 누적되어온 국제 금융 시스템의 변화를 고스란이 반영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1982년 당시 멕시코와 남미 국가의 채권자는 미국의 대형 은행들이었으므로, 그곳의 채무 위기는 곧 미국 은행 시스템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4년 멕시코의 채무는 은행 대출이 아니라 주로 전 세계 투자자에게 판매된 채권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더구나 멕시코 채권은 페소 대 달러의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으로부터 채권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달러화로 표시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했습니다. 


그렇다고 환율 위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페소화 가치가 떨어지면 멕시코 정부가 더 비싼 달러로 채권을 되사야 하는 위험마저 안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달러와 연계된 멕시코 채무는 거의 단기 채무였습니다. 따라서 만약 사정이 악화된 은행의 예금자와 같은 채권보유자들이 신뢰를 잃어버리면 곧바로 상환 요청이 쇄도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멕시코는 1994년에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맺기 몇 년 전부터 친시장 개혁에 착수하며 멕시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증진하고 이 기관에 인플레이션 관리 책임을 부여해온 터였습니다. 따라서 개혁 이후 멕시코 경제에 대한 밝은 전망이 해외 자금의 유인으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확신은 언제라도 쉽게 깨질 수 있습니다. 연준의 긴축 기조와 더불어 가치가 상승하자 멕시코의 실질적인 채무 상환 비용이 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1994년에 멕시코는 치아파스주 반란, 대선 후보 암살 사건으로 심각한 정치적 충격에 시달렸습니다. 이런 정치적 압박과 선거를 눈앞에 둔 정부는 통화와 재정을 완화하는 정책으로 대응했습니다. 이런 정책은 물론 단기적으로 경기를 활성화하려는 의도였지만, 장기적 개혁의 의지가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의심이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정부 예산 적자와 인플레이션의 통제 면에서 더욱 그랬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이 겹치면서 투자 유출이 촉진되었고, 멕시코 중앙은행은 한정된 달러를 페소화를 방어하는 데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12월에 이르자 중앙은행에 남아 있던 외환보유고로는 더 이상 페소화의 고정 환율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신임 대통령은 큰 폭의 통화 가치 절하를 발표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멕시코가 달러 연계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한 해외 투자자들은 더 빠른 속도로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외부의 도움이 없다면 멕시코는 곧 국제적 의무에 대해 채무 불이행을 선언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린스펀이 자유주의 사상에 머물러 있던 시절에 이런 사태를 접했다면 단순한 시장 경제 논리에 따라 긴급구제라는 도덕적 해이를 피하려 멕시코가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지도록 방치했을지도 모릅니다. 멕시코와 그 채권자들은 그들이 어떤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미국 정부가 그 결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리라고 생각한다면 언제고 더 큰 위험을 감수하려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린스펀은 연준 의장으로서 멕시코의 디폴트 사태가 신흥 시장 경제에 대한 투자자의 불신을 불러와 추가 투매를 촉발한다면 국제 금융 시스템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멕시코는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이므로 멕시코 경제가 붕괴하면 미국의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 뻔했습니다. 따라서 그린스펀 같은 중앙 은행장의 처지에서 멕시코 문제는 예금자들의 뱅크런 사태를 맞이한 여느 평범한 은행과 다를 바 없으며, 근본적인 지급 능력에 문제가 있다기보나 단기적인 유동성 부족을 겪고 있을 뿐이라는 논리가 훨씬 더 받아들이기 쉬운 결론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사태는 미국이 멕시코를 상대로 국제적인 최종대부자 역할을 다함으로써 채무 불이행 사태와 그로 인한 손실을 피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었습니다. 아울러 도덕적 해이 문제는 그 과정에서 초래될 대가를 멕시코와 그 투자자들이 감수함으로써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개선하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었습니다. 


그린스펀과 루빈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 재무 차관은 멕시코가 디폴트에 빠지는 사태를 막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데 동의하고 이 결론대로 클린턴 대통령도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외국에 구제 금융을 지원한다는, 당시만 해도 흔치 않았던 조치를 의회가 승인하도록 설득하는 데 결국 실패했습니다. 이에 따라 루빈, 서머스, 그린스펀 삼총사는 대안을 찾아냈습니다. 그린스펀이 지지를 등에 업은 재무부가 외국환평형기금을 사용하여 멕시코에 일괄 금융 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금은 외환 시장에서 달러 가치를 안정시킬 목적으로 재무부가 달러를 매수 또는 매도할 수 있도록 대공황 시기에 의회가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위기도 달러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이 있는 법이므로 실제로 이 기김을 운용하는 데는 꽤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중앙은행들의 활동 사이에서 조정 역할을 하는 IMF 와 스위스 국제결제은행 같은 다국적 기관도 가세하여 멕시코에 제공할 총 500억 달러의 구제 금융이 조성되었습니다. 그중에서 미국이 출자한 규모는 총 200억 달러였습니다. 


멕시코는 결국 그 원조금 전액을 상환했고, 그러기 위해 IMF 의 감시하에 경제 개혁을 단행하고 통화 및 재정 면에서 강도 높은 긴축 정책을 추진해야 했습니다. 멕시코는 비록 디폴트를 피했으나, 1995년에 극심한 불황을 겪었습니다. 불행이도 도덕적 해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멕시코 채권투자자들의 사정은 오히려 나았습니다. 달러 연계 채권 보유자들은 대부분 원금을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멕시코 주식시장이나 페소화 표시 채권 등에 투자한 다른 외국 투자자들이 입은 손해는 심각했습니다. 


그린스펀은 멕시코 긴급구제 과정에서의 활약 덕분에 금융 해결사와 정책결정자로서의 명성을 높였고, 단지 금리를 결정하는 차원을 넘어 영향력을 확대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태의 더 큰 의미는 이것이 1990년대 후반의 금융위기에도 일종의 표본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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