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여름에 읽었었는데 한 번 더 읽어봤습니다. 이번엔 경기 흐름으로 보는 현대 한국 경제사 부분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경기 흐름으로 보는 현대 한국 경제사
1) 1970년대 오일쇼크로 맞은 불황
1973년 1차 오일쇼크
제 1차 중동전쟁으로 발생한 오일쇼크로 물가가 급등하면서 경기가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우리 경제도 충격을 받았다. 다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타격이 적었다. 다시 우리 나라는 6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경제개발을 시작한 개발도상국이었던 만큼, 공업 발전과 대외 교역의 수준도 낮고 석유보다 석탄을 주된 에너지원으로 썼기 때문이다.
1979년 2차 오일쇼크
이때도 세계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다. 우리나라도 큰 타격을 받았다. 1차 오일쇼크 때에 비하면 중화학공업 위주로 대외 교역 물량도 많아졌고, 국민경제가 해외 경기와 석유 에너지에 의존하는 정도도 크게 높아져 이썽ㅆ기 때문이다. 2차 오일쇼크 발생 전 우리 경제는 빠르게 성장해, 1978년 성장률이 전년 대비 11.0%, 1979년 8.7% 였다. 하지만 오일쇼크 발생 직후인 1980년에는 -1.6%, 1960년대 이후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2) 1980~1990년대 전반, 3저 호황
1980년 우리 경제에 닥친 불황은 충격이 컸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경기는 곧 회복됐고, 1980년대 후반 우리 경제는 이른바 3저 호황을 맞았다. 3저란 국제금리, 유가, 원화 시세가 낮았던 다이 경제 여견을 말한다.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는 3저 여건에 힘입어 생산과 투자를 확대하고 수출을 대폭 늘려 1960년대 이래 최대 호황을 누렸다. 3저 호황은 특히 원 저 덕을 많이 봤다. 원 저 여건이 조성된 배경에는 플라자 합의 뒤 엔화 시세의 갑작스런 폭등이 있었다. 일본은 수출 여견이 크게 불리해졌지만 우리나라는 반대로 유리해졌다. 달러 대비 엔 시세가 비싸진 데 비해 원화는 시세가 싸졌기 때문이다. 동남아 각국 통화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시세가 싸졌다. 일본은 수출에 타격을 입었지만 동남아 각국은 일본과 경쟁하는 상품 중심으로 수출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3) 1990년대 후반, 엔 저 불황과 재벌 몰락
3저 호황 때 우리 기업은 미래 대비에 소홀했다. 호황 때 번 돈을 생산적 투자로 돌리기보다 주식과 부동산에 대거 투자해서 재태크로 불리기에 바빴다. 3저 호황 때 우리 기업은 수익보다 외형 외주로, 덩치 불리기에 치중하는 경영을 했다. 덩치 불리기 경영은 불황에 약하다. 1990년대 중반을 넘기자 한국 경제에 돛을 달아주었던 3 저 여견에 변화가 생겼다. 1995년 1월 클린턴 정부 재무장관으로 취임한 루빈은 약 달러로 제조업 수출을 떠받치는 정책을 아예 버리고, 오히려 강한 달러로 국내 소비와 금융 부문을 부양해 경기를 활성화한다는 성장 전략을 세웠다. 역플라자 합의가 이뤄졌다. 역플라자 합의로 달러 시세는 뛰고 엔 시세는 약세로 돌아섰다. 엔화 약세는 일제 수출품 판매가를 낮추는 효과를 내며 일본 수출을 도약시켰다. 반대로 일제와 경쟁하던 한국산 제품은 수출 성장세가 둔해졌다. 수출에 의지해 성장하던 한국 경제는 이내 불황으로 빠져들었다. 거의 모든 재벌이 여러 은행에서 거금을 빌려놓고 이자도 못 갚는 자금난에 허덕였다. 결국 1997년 재벌 연쇄 부도 사태가 발생했다. 대기업이 쓰러지면서 거액 융자금을 떼인 은행도 줄지어 망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과 금융기관의 대외 신용은 바닥을 쳤고, 심각한 불황이 한국 경제를 덮쳤다.
4) 1997~1998년, 외환위기로 닥친 불황
1997년 후반 우리나라는 대기업 연쇄 도산으로 시작된 불황과 함께 전에 없던 외환위기를 맞았다. 우리 나라는 어쩌다 외환위기를 맞았을가? 근본 원인은 펀더멘털, 곧 국민경제의 기본 체력이 취약했던 데 있다. 외환위기 직접 몇 년간 우리나라는 수출을 통한 달러벌이가 시원찮았다. 1990년대부터 1997년까지 거의 내리 적자를 냈다.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진 당시 우리나라도 부족한 살림을 외채로 꾸리면서 점점 더 많은 외채가 쌓여갔다. 대외 채원에서 대외 채무를 뺀 순대외채무도 1994~1997년 해마다 커졌다. 나중에는 외환보유고마저 부족해졌다. 1997년 우리 나라는 연말에 만기가 돌아오는 대외 단기부채를 갚는데 필요한 외환이 턱없이 부족했다. 한국에 외환이 부족하다는 점을 눈치챈 해외 투기 자본은 원화 폭락에 거액을 베팅하는 환투기에 나섰다. 외환시장에서 대량 매도가 쏟아졌고 원화 시세는 단시간에 폭락했다. 원화 폭락은 가뜩이나 달러가 부족한 사태를 급격히 악화시켰다. 다급해진 정부는 미국과 일본에 긴급 달러 융자를 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연말에는 IMF 에 구제금융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IMF 는 한국 경제에 급격한 구조조정을 권고했다.
5) 1999~2003년, 짧은 경기 회복과 해외발 불황에 이은 내수 불황
2001년 한국은 IMF 에 빌린 돈을 다 갚았다. 외환위기와 함께 찾아온 불황이 금방 물러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2000년데 들어 미국 경기가 급강하했다. 1990년대에 IT 산업이 활황을 이루면서 고평가됐던 주가가 무너진 탓이다. 대미 수출 비중이 큰 우리 경제는 바로 타겻을 입었다. 정부는 단기 내수 부양으로 대응했다. 효과는 이내 나타났다. 시중 자금 공급이 풍부해져 가계 대출과 소비가 늘고 부동산 투자 붐이 일어났다. 그러나 카드 대란이 일어나면서 단기 내수 부양의 부작용이 드러났다. 2002년 중반부터 가계 빚이 한두 해 사이 곱절로 늘면서 카드 빚에 몰린 신용불량자와 개인 파산이 양상됐다.
2000년대 초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친 미국발 불황은 다분히 경기순환에 따른 현상이었다. 정부 예측대로 길게 가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해외 경기가 순환 주기를 따라 자연스럽게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경제의 내실을 다졌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단기 부양에 나선 탓에 반짝 호황을 만든 빚 부담이 내수 부분에 불황을 드리웠다.
6) 2004~2007년, 부동산 투기 대응 실패로 깊어진 내수 불황.
이 시기 정부의 당면 경제 과제는 단기에 불어난 가계 부채와 내수 불황에 대응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시중 자금이 제 발로 부동산시장을 떠나 생산적 부문으로 흘러갈 만한 투자 대안과 여건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저금리 정책을 고집했다. 생산적 투자가 쏠릴 수 있는 대안이나 여건을 제공하지도 못했다. 오로지 수요 규제로 일관된 부동산 투기 대응에 골몰했는데, 그나마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부동산 투기는 계속해서 일어나서 부동산 투기와 내수 불황이 이어지며 가계 빚은 더 늘었다. 빚에 눌린 소비 부진과 내수 침체, 기업 투자 부진도 지속됐다. 내수 불황이 길어지자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은 포함한 서민 살림은 어려워졌다. 대기업은 2003년 중반부터 살아난 수출 경기에 힘입어 호황을 구가했다.
7) 2008~2012년, 대기업 편향 정책과 해외발 경제위기로 가중된 내수 불황
새 정부는 수출 대기업을 집중 지원해 성장률을 높인다는 전략을 해법으로 내놓았다. 낙수효과를 기대했다. 그러나 대기업 성장 과실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거쳐 내수 경기로 파급되는 효과는 미미했다. 과실 파급은커녕 대기업이 유난히 적극적으로 내수 시장 확장에 나서면서 골목 상권에서 소상공인들이 쫓겨나는 일이 부쪽 잦아졌다. 게다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세계 범위로 긴밀하게 연결된 투자 네트워크를 타고 유렵과 아시아를 건너 글로벌 금융경제에 타격을 입히고 실물 경기까지 가라앉혀 글로벌 경제위기로 번졌다. 이해 해외 수요가 급감하는 바람에 한국 경제는 수출과 설비투자, 건설투자, 소비가 모두 위축되어 전년 대비 성장률이 3.0%에 그쳤다.
8) 2013~2016, 경제 과제 외면해 불황 만성화
이 시기 내수에 더해 수출까지 침체에 빠지자 정부는 손쉬운 경기 부양책으로 눈을 돌렸다. 건설 경기, 특히 주택 투자 경기를 띄우고자 재정지출을 늘리며 금리를 낮추고 부동산 규제를 풀었다. 그러나 부작용이 생겼다. 내수 불황과 빈부 격차에 따른 양극화가 심한 데다 가계 빚이 급증해 내수 기반을 허물고 수출까지 부진해진 탓에 한국경제는 급격히 취약해졌다.
9) 2017~2021, 성장 정책과 부동상 정책 실패로 양극화 심화
이 당시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소득 주도 성장론은 정부가 중소 사업자와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저소득층의 소득 향상을 지원해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정책 구상이다. 2018년 최저임금도 저년 대비 16.38% 올렸다. 그런데 저소득층 일자리와 소득이 거꾸로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한계기업 수준에 있던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지자 아예 고용을 줄이거나 문을 닫은 탓이다. 이후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은 동력을 잃고 흐지부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