Ávila 근교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고대 유적지가 있습니다.
이름은 Castro del Freillo.
처음 들으면 낯설게 느껴지지만, 한 번 그 땅을 밟고 나면
스페인의 역사가 왜 ‘천 년 단위’가 아니라 ‘이천 년 단위’로 흐른다고 하는지
단숨에 이해하게 됩니다.
스페인에서는 100년, 200년은 ‘최근의 일’입니다.
그만큼 오래된 시간 위에 지금의 일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바위와 바람,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남긴 흔적이
그냥 풍경이 아니라 ‘역사’로 숨 쉬는 곳이죠.
이곳은 기원전 4세기, 켈트계 부족인 **베톤족(Vetones)**이 살던 언덕 요새였습니다.
그들은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고, 구리를 녹여 무기와 장신구를 만들었습니다.
로마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이미 이 땅에는 기술과 질서, 그리고 삶의 흔적이 존재했습니다.
유적지 곳곳의 표지판을 따라 걸으면,
한때 500채의 집과 2,500명가량의 주민,
그리고 수많은 가축이 이 언덕 위에서 살아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고요했고,
그 정적 속에서 오히려 생명의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스페인은 기본이 천 년, 그 이상입니다.”
이 문장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이곳에서 실감하게 됩니다.
바위 하나, 돌담 하나에도 세월의 결이 남아 있고
불에 달궈진 쇠를 두드리던 손길의 기억이 바람 속에 스며 있습니다.
인간이 떠난 자리에서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조용히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트레일로 향하는 길은 의외로 평탄했습니다.
오후 햇살이 낮게 기울며 도로 위를 물들이고,
공기는 묘하게 따뜻하면서도 고요했습니다.
멀리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와 바람의 결만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했습니다.
도착하니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는 언덕이 펼쳐졌습니다.
돌무더기와 들풀, 그리고 몇 마리의 새가 전부였지만
그 단순함 속에 묘한 위엄이 있었습니다.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시간이 만들어낸 장엄함’이었습니다.
그 순간, 스페인은 화려한 도시의 나라가 아니라
묵직한 역사 위에 조용히 서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Ávila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바로 이 Castro del Freillo였습니다.
성벽도, 대성당도, 유명한 마을도 물론 아름답지만
진짜 스페인의 뿌리는 이런 ‘시간의 고요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곳과 가까운 Candeleda 마을를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Ávila의 여행은 빠르게가 아니라, 천천히. 시간이 아니라 ‘깊이’로 기억되는 여정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