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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구 Jul 04. 2019

일간 크로스핏 : 생각 정리법

오늘은 무슨 생각을 했나요.


Easy oar


정형돈의 외침과 함께 경기는 끝이 났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우리가 경기를 끝냈다는 것에 서로를 향한 격려의 환호와 기쁨을 표출하는 눈물을 쏟아냈다. 이 모습을 브라운관으로 지켜보던 내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그날 무한도전 멤버들과 나를 눈물 흘리게 만든 스포츠를 조정경기, 영어로는 Rowing이라 부른다. 이 로잉 경기를 위한 핵심 훈련도구를 로잉머신이라 부르며, 무한도전 멤버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며 2011년 난생처음으로 로잉머신을 알게 됐다. 나와 더불어 많은 무한도전 시청자들이 그날 로잉머신을 처음 봤는지 로잉머신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오르게 됐다.



무한도전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로잉머신은 지금 내게 트레이드밀만큼 익숙한 운동 기구가 됐다. 왜냐하면 이 로잉머신은 크로스핏 운동의 핵심 운동기구이기 때문이다. 로잉 머신은  허벅지와 팔 그리고 등근육 등 전신 근육을 사용하는 것 치고 시합하듯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수행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네 꽤나 정적인 운동이다. 정적인 운동이기 때문에 운동이 아닌 다른 생각이 필요할 때와 더불어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 때 수행하기 좋은 운동이다. 또 반대로 단순 반복운동이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운동하고 싶은 날 수행하기에도 좋은 운동이다. 즉, 내 기분과 컨디션에 상관없이 언제든 수행하기 좋은 운동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에어팟까지 갖춰진다면 트레이드 밀과 비교도 안 되는 완벽한 운동기구가 된다.



나는 주로 본격적인 WOD 전후로 로잉을 매일 탄다. 운동을 하기 위한 워밍업용으로 타거나, 운동이 끝나고 몸의 열을 낮추기 위한 리커버리 용으로 타기도 하지만 주로 앞서 얘기한 것처럼 운동 외에 요인으로 타는 경우가 많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든, 아무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든 일단 에어팟을 귀에 꽂고 외부와 단절한다. 아, TMI로 나는 한 가지 음악에 꽂히면 짧으면 며칠 길면 몇 달 내내 한곡 반복하며 요 근래에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만 듣고 있다. 더불어 이 음악은 로잉을 탈 때도 동일하며 이는 다른 이들처럼 신나는 음악으로 선곡된 운동용 재생목록이 없다는 것을 얘기한다. 그래서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운동하면서 느린 발라드 음악이나 클래식도 즐겨 듣는다는 것이다.  



요 근래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들으며 로잉을 타며 정리했던 생각들은 미한과 데이트 장고, 미한과 놀 생각, 미한이랑 뭐 먹을지에 관한 생각, 취업에 관한 생각, 성장에 관한 생각, 자유 한국당이 정말 해산됐으면 하는 생각, 일간 크로스핏 글감에 대한 생각, 명구 책방에서 다음에 소개할 책에 대한 생각, 메트콘 4를 살까 말까 하는 생각, 메트콘 말고 다른 운동화를 살까 하는 생각, 이번에는 무슨 영상을 편집할까에 관한 생각, 어떤 효과를 넣어볼까에 관한 생각 등등이 있다. 정말 다양하고 일관성 없는 생각들을 한 것이다. 일관성 없는 생각을 했지만 그 시간 로잉을 통해 운동효과를 얻은 것은 물론이고 다방면으로 정말 유의미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에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때 생각했던 대부분의 것들은 결과물로 도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생각을 정리하며 결과물을 도출하는 유의미한 시간을 보낸 건 아니다. 당장 오늘만 봐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로잉을 탔다. 무려 5천 미터씩이다. 우선 아무 생각 없이 에어팟을 꽂고 로잉을 탈 때면 1~3미터씩 쉼 없이 올라가는 작은 모니터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생각 없이 쉼 없이 증가하는 숫자만 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숫자는 3천에 다다르고 아무 생각 없음은 끝이 난다. 바로 허리와 허벅지가 아파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머리에는 '아프다~~~ 아프다'라는 생각만 잔뜩 끼게 된다. 자, 이제 아프기 시작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Easy Oar를 외치고 노를 놓고 머신에서 내려오면 된다. 하지만 나 자신 이상한 오기와 착각에 빠지게 되고 바로 로잉에서 내려오지 못한다. 어제는 이만큼 탔으니까 어제 만큼만이라도 타자, 어제보다 100미터라도 더 타자와 같은 오기와 뭔가 숫자가 빠르게 올라가는 것 같아 운동이 더 잘되기 시작해 살이 쭉쭉 빠질 것 같은 착각이다. 하지만 늘 착각은 정말 착각에 불가하고 살은 정직하게 하는 만큼만 올라가고 빠질 뿐이었다. 가혹하게 정직한 살에도 불구하고 어제와 똑같이 탔거나 어제보다 더 탔다는 것에 대한 작은 성취는 크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로잉을 탈 것이다. 내일은 어떤 생각을 할지, 어떤 생각을 정리할지, 아무 생각 없이 탈지 모르겠지만 일단 탈 것이다. 그럼 어떤 유의미한 결과는 못 만들어내도 최소한 오기를 부려서라도 어제의 나는 이겼다는 작은 성취는 가질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내 삶의 중심을 지탱하는데 작은 성취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까. 아니 그거라도 꽉 움켜쥐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순위에 상관없이 결승선에 도착해 눈물을 흘린 무한도전 멤버들처럼 나도 내가 그어 놓은 어떤 결승선에 도착해 유의미한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그 순간까지 쉼 없이 당겨야 하니까.


오늘의 일간 크로스핏

201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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