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구 Jul 12. 2019

일간 크로스핏 : 마라탕과 크로스핏.

MOD(Malatang Of the Day) 함께 할 파티원 구합니다.

문장을 읽자마자 뇌리에 강하게 박힌 연애에 관한 문장이 있다. 아, 뇌리에 강하게 박힌 이유는 굉장히 오글이-토글이 하기 때문이다. '너라는 소우주와 나라는 소우주가 만나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가 됐다.'와! 씨!, 출처는 생각이 안 나는데 정말이지 내 손으로 적으면서도 소름 끼치게 오글거렸다. 너무 오글거려서 우주 드립까지는 못하겠지만, 미한을 만나고 내 미각의 세계 그러니까 맛의 세계는 확실히 넓게 개척해 나가고 있다.


미한을 만나기 전 내가 먹어 본 중국음식은 짜장면, 짬뽕 그리고 탕수육 정도가 전부였지만, 미한과 함께 중국음식을 먹기 시작한 뒤로는 훠궈, 마라탕, 마라샹궈, 꿔바로우, 양꼬치, 수좌 빙 등 새로운 맛의 세계를 개척해나가고 있다. 이 모습은 흡사 고구려 기마대가 중국 대륙으로 영토를 개척해 나갔던 모습이다.  


새로이 개척한 중국음식 중 마라탕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먹을 만큼 푹-빠져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마라탕에 푹 빠지게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라탕과의 첫 만남의 기억은 쓰라린 패배의 기억이다. 2018년 나는 미한 그리고 미한의 친구와 함께 마라탕을 처음 먹었다. 마라탕 초심자였던 나는 마라탕 경험자들의 채소, 완자, 고기, 면 등등에서부터 맵기의 정도까지 이 모든 일련의 선택을 군말 없이 따랐다. 곧, 이어질 비극을 예상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몇 분 뒤 조리가 완료된 마라탕을 실물로 처음으로 만나게 됐다. 처음 본 마라탕은 뭔가 짬뽕 같은 느낌을 풍겼고, 그릇을 풍부하게 가득 채운 모습이 참 먹음직스러웠다. 그리고 맵더라도 국물 음식이기 때문에 신라면 정도의 맵기라고 판단하고 호기롭게 한 젓가락 크게 그릇에 옮겨 담았다. 그릇에 담긴 건더기를 호호 불며 식힌 뒤 어느 정도 식었다 싶어 먹음직스럽게 입안 가득 밀어 넣었다.  


...... 나란 녀석 팔도 비빔면만 먹어도 매워서 땀 흘리는 녀석... 마라탕을 무시하면 안 됐다. 마라탕이 혀에 닿는 순간 나의 땀구멍을 매움을 감지하고 곧장 땀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내 입은 자동적으로 '쓰읍-쓰읍-'하는 소리를 내며 찬 공기를 마시며 매움에 저항해보았지만 속수무책이었고, 이미 시작된 고통은 물과 음료수로도 진정시킬 수 없었다. 평소 이 정도 고통이었으면 곧장 젓가락을 내려놓을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겨 마라탕을 계속 먹었다. 비록 처음처럼 호기롭게 먹지는 못했지만 건더기를 하나씩 건져 하얀 쌀밥을 가득 쌓아 올린 수저에 얹어 함께 먹으며 말이다.


하얀 쌀밥과  마라탕 건더기가 9:1 비율 정도였지만 마라탕이 주는 매움을 결코 없앨 수 없었다. 때문에 이마에서 쉼 없이 흘린 땀은 눈가에 맺혀 눈물짓게 만들었고,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들은 안경에 고여 작은 호수를 이루었다. 뒷덜미에서 나오는 땀은 순식간에 옷깃을 흔건하게 적셨다. 휴지 한 통과 공깃밥 한 그릇을 완전히 비울 동안 마라탕은 1/3도 먹지 못했고, 9:1 비율로 먹었기에 배는 금세 찼다. 가득 찬 배는 더 이상 먹을 수 없음을 알렸고 내가 부릴 수 있는 오기도 거기서 끝이 났다. 나는 마라탕을 향해 더 이상 먹을 수 없음을 선언하며 백기를 들었고, 다시는 마라탕을 마주할 일이 없을 거라 다짐했다.


마라탕을 먹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미한은 내게 다시 한번 마라탕을 먹자고 제안했다. 미한의 제안을 듣는 순간 1년 전 쓰라린 패배의 기억이 떠올랐고 혀 끝은 1년 전 그날처럼 아려왔다. 그 때문에 다른 날과 다르게 쉽게 미한의 제안을 수락하지 못했다. 곧, 미한은 내가 무엇 때문에 고민을 하는지 눈치챘고, 내게 매운맛의 정도는 먹는 사람이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하며 한 번 더 제안을 했다.


나는 미한의 마지막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고 곧장 마라탕 집으로 향했다. 미한과 중국음식을 자주 먹으러 다녀서 일까, 1년 전 처음 마라탕 집을 방문했을 때와는 다르게 이 날은 여유를 가지고 마라탕 집을 살펴볼 수 있었다. 고기는 말이 필요 없고 하얀 형광등 밑에 채소들은 원 상태보다 더 신신한 초록빛을 뿜었고, 물에 담겨있는 면들은 내가 쉽게 먹던 기름에 튀긴 라면 면들과는 다르게 탱탱한 손길로 나를 유혹했으며, 각종 완자와 특수부위들은 내 호기심을 잔뜩 자극하고 있었다.  


나는 큰 대접 들어 첫 경험 그날과 다르게 직접 나를 유혹하는 모든 것들을 양껏 담아 맵지 않은 단계로 조리를 요청했다. (보통 마라탕 집은 0단계에서 4단계까지 있다. 그날 나는 1단계로 먹었다.) 몇 분뒤 조리가 완료된 인생 두 번째 마라탕이 눈앞에 놓였다. 눈 앞에 놓인 마라탕은 맛을 보기 전까지 매운지 안 매운지 알 수 없기에 내 몸안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돌았고, 첫날과 다르게 소심하게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었다.   


"오!!! 진짜 맛있어!"


마라탕을 향한 감탄과 감동이 가득 담긴 이 외마디 외침과 함께 마라탕을 순식간에 흡수했고, 그런 내 모습을 본 미한 역시 만족스러운 눈빛과 웃음으로 나를 봐주었다. 그 날로 나는 미한과 함께 마라탕 집 기행을 시작했다.


마라탕 집을 기행 하며 요즘 내 최애 운동인 크로스핏과 마라탕이 굉장히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모든 의식과 사고의 흐름이 운동으로 흐르기 때문일 수도...) 우선 마라탕은 내가 원하는 어떤 재료로 조합해도 한 가지 음식인 '마라탕'이 된다는 것에서 어떤 운동을 조합해도 하나의 WOD '(Workout Of the  Day)가 되는 것이 굉장히 닮았다. 오!--오-그렇담, 그날의 마라탕은 MOD(Malatang Of the Day)가 되는 건가?


각종 운동이 조합된 19.05.03. WOD


더불어 크로스피터들이 훈련을 통해 개인 기록(시간 혹은 무게)을 갱신(PR ; Personal Record)하듯 마라탕 역시 반복적으로 먹는 연습을 통해 개인의 맵기 단계를 갱신할 수 있다. [띵구's TMI : 나는 1단계에서 시작해 3단계까지 PR(갱신)했으나, 3단계를 아주 맛있게는 와구와구 먹지 못하기에 내 마라탕 1RM(One-Repettion Maximum) 역시 3단계라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그릇이 비워질 때까지 혀끝에 전해지는 약간의 통증을 즐기고, 쉼 없이 흘리는 땀을 휴지로 닦아가며 젓가락을 멈추지 못하고 먹는 태도가 크로스핏을 임하는 나의 태도와 똑같다. 그렇다 반쯤 미친 소리고, 과장 좀(많이) 덧 대고, 거짓말 좀(많이) 보태서 크로스핏을 할 때 나는 WOD가 끝나는 순간까지 전신에 몰려오는 통증을 즐기고, 쉼 없이 흘리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멈추지 않고 크로스핏을 즐기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정말로 크로스핏을 운동계의 마라탕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오호! 그럼 WOD 끝나고 MOD 하러 갈 파티원 구합니다!  


오늘의 일간 크로스핏

2019.05.03.


매거진의 이전글 일간 크로스핏 : 안녕 나의 날두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