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몸살 계획

by 라민 육아 일 기

가을비 내리는 날이 이어지더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독감 접종 시기가 돌아왔습니다.


올해 여름, 저는 몸살감기를 심하게 앓으면서 몇 주간 고생을 했습니다. 가벼이 지나갈 줄 알고 약국에서 산 약으로 버텼는데 화근이었어요. 끊임없는 코막힘과 콧물 때문에 밤잠을 설쳤지만 으레 앓는 감기겠더니 했던 것이...


몸이 부서질 듯한 통증 뒤에는 광대와 치아까지 얻어맞은 듯한 통증이 찾아왔어요. 후각과 미각을 잃은 뒤에야 병원을 찾았더니 이미 합병증으로 '급성 부비동염' 진단을 받았습니다. 부비동염이라는 녀석, 염증으로 붓고 점점 커져서 안면부를 꽈아악- 누르고 있었더라고요.


네 살 아이는 엄마가 많이 아팠던 지난 여름의 시간에 함께 우울했어요.

종알종알 집에 오면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평소보다 반응이 적은 엄마 때문에 아빠가 퇴근할 시간까지 혼자서 놀아야 했습니다. 멈추지 않는 발작적인 기침 때문에 대화를 오래 할 수 없었고 가까이 가면 병균이 옮을까 봐 걱정되더라고요. 일단 기력이 없었으니 신나게 놀아줄 수가 없었고요.


그러다 사흘째쯤 되니까 장난감 체온계를 귀에다 대봅니다.

'어, 엄마 열이 나네! 주사 맞아야지!'


아, 그 말 들을걸.

초기에 잡지 못한 염증은 번져서 처방 받은 약을 털어먹어도 잘 낫질 않았습니다. 감기와 부비동염은 한 달을 내리 괴롭혔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병균이 사그라든 건지 나을 때가 되어서 나은 건지 모르겠어요.


아이는 매일밤 자기 전에는 꼭 몇 권의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데, 잠 잘 채비를 끝내기만 하면 엄마는 자는 시늉을 하고 있어서 제 양쪽 눈꺼풀을 들어보더라고요. 책은 못 읽어줘도 병원 놀이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네요.


회사 일, 살림, 육아하다 보면 욕구를 포기하게 되는 날이 많더라고요. 제 때 밥을 먹는다거나 쇼핑을 한다거나 하는. 그런데 병원은 욕구(?)보다는 필요에 관한 일이긴 한데도 짬 내서 갈 수가 없는 상황이 야속했어요. 하필 그 시기 남편도 자리를 비울 수 없이 한창 바쁠 때라...


그 지독하던 여름날의 감기를 떼어내고 얼마 안 되어서 다시 독감철이 되었네요. 몇 년 새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느껴서 건강검진을 예약하고 비타민 포함 영양제를 열심히 챙겨 먹고 있습니다. 집에 누구 하나 아프면 다 같이 힘들죠.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대로 괴롭고 돌볼 일이 더 많아진 사람은 어깨가 무거워질 테니.


엄마는 몸과 원만한 합의를 봐서 아픈 날을 정하면 안 될까요.

'내가 몇 월 며칠에 어느 정도로 아프겠다. 그러니 다들 맡은 일을 잘 해내달라.' 하면 좋겠네요.


올해는 독감이 더 빨리 시작된다고 해요. 또 얼마나 지독한 녀석이 고개를 빼꼼 내밀런지요.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는 병균이 기막히게 먼저 알고 붙기 때문에 올해는 선제적으로 예방하려고 합니다. 몸살 계획을 세울 수 없다면 아프지 않을 계획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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