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를 잠시 내려놓고 취업을 준비한 지도 어느새 1년 여가 지났습니다. 한 인문학도는 IT-엔터테인먼트 스타트업계 회사에 취직하여 어느샌가 7개월 차 직원이 되었는데요. 좋아하는 공부와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돈이 필요했고, 나름대로 잘 맞는 회사에 취직해서 돈을 벌기 위해 이것저것 적성을 옮겨본 것도 어느덧 8개, 9개가 되었네요. 결국 IT파트, 그것도 기획/운영 쪽에 정착하여 현재는 7개월째 한 IT-엔터테크 업계를 다니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아티스트가 계약을 취소하고, 다시 성공했다가 고객의 반응에 따라 상품을 올리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는 등 변화무쌍한 도메인은 저에게 도파민과 불안을 동시에 줍니다. 며칠 만에 대형 프로젝트가 엎어지거나 며칠 만에 대형프로젝트를 완료시켜야 하는 지금 도메인은, 제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건지 업무를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스펙터클한 일상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예측과 보편적인 경제논리가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저는 자신을 오히려 더 잘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입사 후 누군가 물었습니다. 변화무쌍한 트렌드를 따라가면 오히려 자신이 더 희석되지 않느냐고. 자신을 지키기 어렵지 않느냐고. 이 질문은 저도 스스로에게 건네지 않은 질문이었는데요. 생각해 보니 저는 오히려 해당 업계에서 일하며 스스로가 더 익숙해지고 다채로워지고 있어요. 참 이상한 일이었지요. 변화무쌍 속에서 충분히 자신을 잃어버릴만했는데, 내 업무 스타일이나 내 취향이 더 뚜렷해지는 경험들을 계속하고 있었거든요. 이번 챕터에서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왜 더 색깔이 뚜렷해가고 있는지 그 이유들을 공유해 보자 해요.
이야기는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학 3학년. 지금 생각하면 왜 그리 집착했는지 모르지만 그땐 한창 성적에 민감했을 시기였습니다. 어떤 감흥인지 모르겠지만 한창 니체를 배울 시기였습니다. 어느 날 소위 말해 , ‘삘’이 탔는지 나는 "이제 난 내 맘대로 살 거야!"를 외치며 제주도로 향했습니다. 그것도 수업을 한주 모두 비우고요. 니체의 '힘의 의지'가 아니라면, 이건 그냥 객기가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허세 반, 진심 반으로 시도해 보았습니다. 과연 니체가 말하는 반항하는 인간, 자신을 탐구하는 인간이 의미가 있을까 궁금했어요. 그렇게 저는 더 나아가 전시회를 한 번 보고 바로 유럽행 비행기를 끊거나, 덮어두고 일본 티켓을 끊는 등의 용감한 여행을 시도하게 됩니다.
다른 실험들도 있었어요. 어느 날은 편의점으로 걸어가 음료를 모두 먹어봤어요. 매 기분마다 음료수를 다르게 먹는 실험을 해봤어요. 목표는 단 하나, 모든 음료를 맛보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특이했어요. 내 취향을 발견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어떤 음료가 당이 많은지도 직감적으로 알게 됐죠. 나는 힘들 때 음료를 많이 찾고, 단 것을 많이 찾고, 비타민 워터와 레몬 워터에는 당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누가 알았겠어요, 니체가 이런 방식으로 내면의 자아를 탐구하길 원했을지. 물론 "하지만 다음번에는 더 많은 음료를 먹어봤으면 좋겠어!"라고 덧붙였을지도 모르죠.
또 다른 실험은 ‘작가 찾기’였습니다. 이번엔 반대로 “방구석 모험” 이였어요. 내가 좋아하고 내가 평생 읽을만한 작가를 찾았어요. 니체, 헤겔, 칸트부터 시작해 롤랑바르트, 아니 에르노, 보르헤스, 한강, 김영하, 공자, 맹자, 순자 등등 정말 많은 작가들의 책을 읽었어요. 어느샌가 어떤 결의 작가들이 어느 기분에 읽으면 마음이 편한지 알겠더라고요.
그리고 직장을 구해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문제를 푸는 방식이 넓은 탐색을 통한 자신의 취향 발견이다 보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문학 공부를 통해 어느 정도 자신을 알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여러 경험들을 해보니 자신이 원하는 공부와 일을 조금 더 빨리 찾을 수 있더라고요. 대학원 준비부터 시작해, 논술학원 선생님, 콜센터 직원, 마케터, 데이터 공학자, 데이터베이스 개발자, 기획자, MD 그리고 회사에 들어와서도 기획에서 QA라는 파트로 전향하기까지 8-9개 정도의 직업군을 거친 것 같아요.
직접 일해본 영역도 있고, 취업 준비만 한 영역도 있고, 취업 준비에서도 직접 프로젝트를 참여하거나 경시대회에 참여 한 부분도 있기도 했지만 자신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영역에 대한 경험이 합쳐지며 자신이 원하는 일이나 자신의 방식을 어느 정도는 찾아간 것 같습니다. 다양하게 탐색하고 나니, 비교군도 많아지고 장단점도 어느 정도 보였습니다. 당연히 실망할 것도, 기대할 것도 적어졌습니다.
그리고 직장 생활, 아, 여기서 진짜 '힘의 의지'가 필요했습니다. IT-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았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다양한 사건 사고가 일어났거든요. 또 직무도 마찬가지였어요. 기획 20%, 운영 40%, QA(TEST) 40%의 업무를 맡게 됐어요. 더 유연한 적응력이 필요했습니다. 역시 이것저것 시도했습니다. 그렇게 제 일하는 스타일은 오히려 더 명확해졌어요. 다만 다른 사람보다 더 빠르고 유연하게 적응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장단점과 성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9년 전부터 시도했던 이 방식은 이 모든 것은 나에게 현재의 변화무쌍한 직장 환경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오히려 나 자신을 더 깊이 발견하고 탐구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천둥벌거숭이처럼 이것저것 저질러보고 다녔던 실험은 지금 저의 일하는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습니다. 해당 방식은 단순히 취향과 정체성의 장점으로만 이어진 것 같진 않습니다. 우리 삶을 다 이어져있다 보니, 일하는 방식과 일의 만족도로 이어진 것도 같아요. 물론 일자리마다, 상황마다 다르지만 제가 지금까지 변화무쌍한 상황에서 저를 지켜내고 과감히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제가 어느 정도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게 성공적이진 않았어요. 누구나 어떤 시도를 할 때는 에너지와 기대감을 필요로 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길을 가려면 어떤 동기가 필요하듯이요. 여행을 가기 전 이미 실패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가는 여행은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행복한 풍경을 떠올리며 여행 기획을 짜고, 티켓을 끊고, 숙박을 예약합니다. 하지만 주니어 때 시도하는 프로젝트나 기획처럼 어떤 여행은 아주 철저히 망해버립니다. 마치, 프랑스 외곽에서 여권을 잃어버리는 경험만큼이나.
말씀드리는 것과 다르게 실패도 많았습니다. 자신에 대한 이해를 했다고 하더라도 바깥의 변수들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프로세스와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에 대해서도 적응하고 소통하는 방식이 필요했습니다. 모든 상황이 변칙적인 여행과도 닮아있었습니다. 물론 실패도 말입니다. 하지만 그간 배운 애도의 기술이 나를 좀 더 탄탄하게, 나를 잃어버리지 않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 9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저는 여권과 카메라를 잃어버립니다. 그 유명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지였던, 그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한 채로 말입니다. 사람들은 제 스케치를 보며 “너무 아름답다”라고 환대해 줬고, 저는 너무 고맙다고 화답했습니다. 프랑스 전통 양식으로 지은 건축물들이 너무나도 예뻤고, 그 분위기와 차분함은 저에게 평화로운 마음을 가져다주는데 충분했습니다. 물론 도둑맞기 전까지는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그 경험이 애도의 시작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이 경험은 나에게 상실을 통해 더 큰 것을 얻을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데이터 사이언스를 배우면서 겪은 실패도 마찬가지였어요. 큰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프로젝트가 망가지면서, 마지막까지 배움이 어그러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 다른 탐색을 진행했었던 것 같아요. 나름대로 충분한 애도를 진행하고요.
애도의 기술이 쌓인다고 하더라도 슬픈 건 매 한 가지입니다. 다만 좀 더 빨리 자신의 마음을 인식하고 회복하는 방법은 늘어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확신에 대해 잘 흔들리지 않는 순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콜센터를 나올 때는 "어떻게 4년제 나온 사람이 여기서…”라는 이야기를 들었기도 했는데요. 그때 들었던 마음은 ‘아, 나는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았구나’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느샌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진정으로 찾고 있는 사람이 되었던 거죠.
솔직히 지금도 자신에게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아직도 그리고 어쩌면 시간이 지나도 실패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겁니다. 나는 또 망할 거고, 실패할 겁니다. 하지만 뭔가 두려움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무엇을 감당할지 현명함도 조금씩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애도의 기술이 자신과의 화해와 작별을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도구임을 깨달았습니다. 상실의 순간마다 나는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했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과 더욱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롤랑 바르트는 충분히 애도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매몰되는 슬픔이 아니라 살아있는 슬픔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자신의 슬픔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일상으로 복귀하기를 주저합니다. 오히려 자신 안의 감정을 긍정해요. 제 생각엔 바르트는 슬픔을 죽음이나 부정적인 것, 낯선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로 보는 편 같습니다.
충분한 애도는 자신이 무엇을 상실할 때 힘든지 잘 돌이켜볼 수 있는 중요한 소재를 주는 것 같습니다. 또한 중요한 경험 같고요. 매 순간의 애도가 쌓일 때마다 저는 성장해고, 자신에 대해 충분히 알아간 것 같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이 안 맞는지를요. 그리고 해당 방식은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세밀하게 알아가는데 큰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데리다의 차연(différance)은 의미의 연기와 차이를 통해 의미가 형성된다는 개념입니다. 이는 의미가 결코 최종적이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 개념이 우리가 현재 키워드로 삼는 ‘나다움’이라는 개념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열심히 집착해 얻어낸 ‘나다움’이지만 어느샌가 그 의미가 흐릿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물론 ‘나’라고 규정한 것에서 벗어나는 데는 많은 힘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저는 점점 유연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뭐랄까. 공허하거나 허무하지는 않은데, 굳이 ‘나’ 여야만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맥락에 따라, 조금 어려운 말로 하면 내가 마주하는 상황의 ‘차이’에 따라 나의 방식은 더 세밀하게 변했거든요.
오히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변화의 속도가 유독 빠르고, 예측할 수 없는 변동성이 일상다반사입니다. 약속했던 프로세스에 만약이 늘어나고, 프로세스에 없는 일들이 변화무쌍하게 터집니다. 계약서가 순식간에 파기되거나 아티스트가 아프거나 여론이 좋지 않으면 저희는 시시각각 움직입니다. 아무래도 변수가 많은 ‘사람’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산업이다 보니 더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이러한 관점에서 어느샌가 저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나다움은 없다'라는 어렴풋한 공간에 가게 된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제가 ‘나’에 대해 포기했다고 말하기엔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저는 어떤 ‘나’로 보이고 싶은 고집이 있고,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변수들을 만나다 보니 깨달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고정된 정체성을 뛰어넘는 유연성을 발휘하여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을요.
우리는 매 순간 새롭게 형성되는 정체성의 흐름 속에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직무는 확실하지만 어느 상황에선 웹사이트를, 어떤 상황에선 애플리케이션을, 어떤 상황에선 어플 속에서 특정 기능을 확인하고 상대방의 시나리오를 탐색해야 합니다. 어느 상황에선 마케팅팀과 대화해야 하고, 어느 상황에선 긴급히 기획팀과 대화해야 합니다. 각각의 언어는 상황마다, 그 차이마다 차이만큼 다릅니다. 또한 달라야 합니다. '나'는 계속해서 재구성되는 게 오히려 좋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나'를 고집스럽게 지키는게 중요하지 않다. 고정된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화를 수용하고 이를 통해 성장한다- 는 사실을 깨닫습니다.차연은 우리에게 '나다움'이라는 고정된 개념을 해체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재발견하는 여정을 제시하는 것만 같습니다.
솔직히 회사를 다니면 나를 잃어버린다는 후기들이 참 많아서 긴장했었어요. 저는 반대의 케이스였습니다. 오히려 나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서도, 더 유연해진 것 같아 신기하기도 합니다. 저는 제 스타일을 알아갔고, 좀 더 명확해졌고, 쾌활해졌습니다. ‘나다움’을 넘어, 어느 순간들에 어떤 내가 출현하는지 더 잘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도메인과 팀원들의 운도 따랐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는 다른 분들의 환경이나 상황이 다를지도 모른다고 느껴집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고 계시나요.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잘 방어하고 계시나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