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부디, 착한 사람들이 전략적이었으면 좋겠다.

by 시몬 베유

어렸을 때부터 얼마 전까지 내 똑똑함과 희생은 당연했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윤리적 가치’가 높다는 점이었다.


내가 생각할 때 한국에서 ‘착함’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와 같다.


‘착한 것은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는 것’

‘착한 것은 집단에 의해 희생하는 것’


내 ‘착하고자’ 하는 마음은 똑똑함과 맞물리며 계속 착취당했다. 심지어 대학교 때까지.

철학을 배우며 참 다행이라고 생각이 든 건 내 착취당하는 구조가 점점 가시화되었을 때였는데

그때부터 난


나는 누구에게 내 에너지를 빨리고 있는가

나는 누구에게 에너지를 받고 있는가

이 두 가지 고민을 지속했다.


그렇게 나에게서 에너지를 앗아갔던 가정에서부터 동아리, 친구, 교회까지 점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데

그 결과,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이 정말 많이 쌓였다.


성과위주의 회사를 다니면서 또 건강한 사람들과 교류를 지속하면서 판을 깔고,

흐름을 세팅하는 철학에서 배운 재능이 빛을 발하는 시간이 쌓였다.


그중 가장 좋았던 건 내 주변 사람들이

나로 인해 행복하고 즐거워지고

성과도 얻고 또 자신의 재능이나 능력을 찾아 가능성을 키웠다는 점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착함은 착함이 아닐 수 있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착취당하고 있을 수 있다.

본인이 착취당하고 있거나 힘든 구조라면 한 번쯤은 그 흐름을 구조화해 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당신의 착함과 영민함, 재능들이 드러나고 만개할 수 있다.


푸코는 ‘권력은 어디에나 숨 쉬듯 있다’는 방식의 주장을 펼친다.

그렇다. 권력은 어디에나 있고,

이를 고민하지 않게 하는 방식은 당신의 권력과 주체성을 앗아가는 방식일 수 있다.

이해타산을 고민해도 좋다.

흐름을 생각해 봐도 좋다.

집단에 희생하지 않아도 좋다.

당신은 그럼에도 착하다.


당신을 믿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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