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의 기본은 의외로 ‘나다움’이 아닐까?

by 시몬 베유

내가 나다움을 설파하는 건 사실 낭만이나 이상을 챙기려는 것은 아니다. 어느정도 나에 대한 이해가 오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생기와 순발력, 이해로부터 출발하는 방향성등이 그 의미다.


‘나’를 찾은 모든 사람이 억만장자가 되고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순 없지만 적어도 이들은 크게 흔들리는 법은 없다. 욕망과 한계의 끊임없는 저울질 속에 자신의 확신과 방향을 만드니, 그들은 왠만한 의사소통에 기본 이상은 한다. 직장, 가족, 친구, 가릴 것 없이 괜찮고 순탄하다.


물론 여기 예외 상황이 있다. 바로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상대’와 만나는 상태인 경우다. ‘나’에서 시작되는 메시지가 아닌 ‘너’로 시작되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두른 상대는, 자신과 상대의 욕망속에서 길을 잃은 채, 자신의 말을 ‘똑띠’ 전달하지 못한다. 그리고 선을 넘는다. 너가 못해서, 너가 못나서, 너가 그렇게 생각해서, 너가 그렇게 느껴서.


하지만 자신을 아는 이는 질 수 없다. ‘나’에 대해 고민한 이들은 바로 반격한다. 촘촘히 쌓여온 근거와 깊이는 내가 더 잘안다. 여행이건 독서건 메모건 일기건 그들은 아무튼 쌓아왔다. ‘난 아닌데 왜저래’하며 부글부글 끓건, 우아하게 대처하건 그들은 안다. 저들의 방식이 나쁘다는 사실을.


자신에 대해 탐구치가 높은 이들은 의사소통 레벨이 높은 것 같다. 단, 상대가 탐구치가 높다는 전제 아래. 그들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피드백을 진행하고, 서로에게 건강히 대화를 교환한다. 심지어는 정치성향이 달라도, 건강한 대화를 진행한다.


모든 문제가 나다움으로 풀리는 건 아니고, 일확천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며, 이를 수없이 고민한 사람도 계속 해서 흔들리지만, 인생이 뭐 그런게 아니겠는가. 원래 변수는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만큼 존재하지 않고, 마음먹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꿈을 꾸면 세상이 원하는대로 흘러간다면 그 사람은 신일 수 밖에 없다. 오직 신만이 자신이 마음먹은대로 세상을 컨트롤 할 수 있으니까.


그러므로 이 변수 많은 세상에, 변수가 늘어난 세상에 잡을만한 건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이건 어쩌면 생존의 문제이자, 공감의 문제이자, 소통의 문제다. 여러분도 알지 않나.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빛나는지를. AI로 쓴 글이 얼마나 피로도를 주는 지를. ‘너’의 메시지에서 ‘나’의 메시지로 이동하는, 이게 나일지 저게 나일지 고민하는 수많은 이들의 애매함과 불확실함에 건투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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