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된다는 기적

제주에서 10일간 SNS를 끊고 난 뒤 느낀 것.

by 시몬 베유

제주에서 10일간 SNS를 끊고 혼자 지내면서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연결되고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였다.


돌아와서 한 일은 다름 아닌 이런 일이었다.


"제주에서 생각해 봤는데, 너의 강점은 순수함인 것 같아. 너의 얼굴만 보면 항상 순수가 배어 있어. 꼭 지켜줬으면 해."


"넌 감정을 세련되게 참 잘 표현하더라! 항상 배우고 싶어. 물론 너의 세련되지 않은 모습도 너무 좋아. 그 모습조차도 기다리고 있어"


돌아와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게 하려고 하고, 더 귀 기울이려고 하고, 조금 더 먼저 연락을 하게 됐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사랑을 나누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었다.


SNS의 곡기를 끊고 8일 정도 지났을 때 문뜩 든 생각은 다름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우린 각자 다른 가정에서 자라났다.

생각해 보니 각자 다른 콘텐츠를 보고 있다.

생각해 보니 다른 유튜버를 좋아하고, 다른 스포츠를 좋아하고,

감각도 취향도 다르고, 생각의 흐름, 직업, 지역 모두 달랐다.

그러니까 2002년의 월드컵을 함께 경험한다던가

아니면 함께 모여 9시 뉴스를 보고, 개그콘서트를 보던 시기와 다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다르게 해석하고, 같은 말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게 어쩌면 당연한 사회에서

나와 내 옆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랑, 사랑은 작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이 그렇다.

낯선 사람에게는 말을 걸 수 없는 신뢰와,

그럼에도 외로워져 작아지는 마음과,

그렇지만 불확실한 사람에게 시간과 마음을 걸기 어려운 상황.

취업난이 불러온 것은 단순히 먹고삶의 문제만은 아니었고

단절은 유튜브, 취향, 알고리즘과 함께 가속화됐다.

이걸 아니까, 나도 말을 못 걸겠는 거다.

환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나도.


그러므로

은둔형 외톨이가 25만 이상이라는 통계가 비난보다는 공감이 앞선다.


각자의 섬이 되어버린 개인들, 연결의 끈이 점점 얇아지는 사회에서 홀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그들이 선택한 고립이 때로는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깊은 공감에 빠져보기도 한다.


그렇게 유수의 아티스트와 시인들이 사랑 멸종 위기를 외치는 때에,

외로움으로 우리 모두 고통받는 시기에,

어쩌면 같이 대화할 수 있는 사람 한 명,

연결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 한 명이 나는 기적 같은 일이라며

서울에 와 멈춰있던 SNS를 켜고 바로 칭찬과 만남과 공감의 말

솔직한 말, 정직한 말을 최대한 잘 전달하려고 용쓴다.


인간관계는 효율로,

신뢰는 자본으로 대체되는 세상에서 서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어찌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모든 관계에 투자 대비 수익을 따지고, 인맥도 스펙의 일부가 되어버린 시대에, 그저 존재 자체로 서로를 반갑게 여기는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가-하며 나는 카톡을 보낸다.


19세기 시인 랭보는 "사랑의 재발명"을 말한다.

그 의도는 이렇다.

사랑이 자본화되고, 거래대상이 되고, 교환대상이 되는 시대에

"사랑을 재발명"하자고. 제발 그러지 말자고 말린다.


21세기 한국. 이미 우리는 수많은 시간을 넘어왔다. 세기만 따져도 두 세기다.

여기서 사랑을 하는 당신들. 이해하려는 당신들. 공감한 당신들은

어쩌면 사랑을 매 순간 재발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당신만의 기적을 품고 있다. 이어짐은 기적이다.

지금은 절실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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