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외할머니가 무당 될 뻔했던… 철학 관련 전공자의 케데헌 후기. ssul
106세 때 돌아가신 증조외할머니 이야기부터.
지금이야 어느 정도 촉만 살아 있고, 기운 좋은 곳 안 좋은 곳 정도를 구별하는 삶이지만, 또 공포 영화를 보면 ‘아… 이 사람 진짜 무당한테 물어봤네-안 물어봤네’ 정도를 구별하는 정도이지만, 어렸을 땐 그랬다. 실제로 귀신도 아주 가끔 보기도 하고, 친구 식구 중에 신부님이 있는지 맞추는 등의 어떤 인간… 나도 내가 좀 이상해서 많이 숨기고 살던 인간.
그 이유는 아마, 증조할머니 때문인 듯하다. 우리 증조외할머니는 106세쯤 돌아가셨다. 꽤 장수하신 편. 지금 생각해 보면 항상 웃고 계셨던 것 같은데, 이건 내 추억보정이 된 거고, 사실 내가 나중에 증조할머니 사진을 찾아보기 전까진, 나에게만 있는 증조할머니의 표정이 있었다. 마치… 마귀할멈의 으스스하고 섬뜩한 미소. 아직도 내 안에 있는 그 미소는 생각만 해도 좀 무섭긴 한 그 미소가 있었다.
문제는 그 미소를 나만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증조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5년쯤 지났을 때, 나는 나지막이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증조외할머니. 웃는 게 무서웠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다른 애들은 다 증조외할머니 좋아했는데, 너만 유달리 싫어하더라? 몰랐어?”
그래. 어렸을 때부터 사실 나도 그 ‘끼’가 있었다. 거기에 사주로만 따졌을 때 가장 예민한 사주 중 하나, 무당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주(일주)를 끼고 태어났으니 영적 체험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렸을 적 증조외할머니가 살던 별채의 기억과 돌아가신 뒤 별채의 기억이 다르기도 했는데, 나는 항상 증조외할머니의 별채에 가면 항상 ‘붉은 악마’가 그려진 벽지를 보았다. 물론 돌아가시고 나서 장을 치르고 그 별채를 방문했을 때 그 벽지는 모두 치워지고 없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뒤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의 말.
“벽지? 항상 그대로였는데? 원래 벽지 같은 건 없었어~”
그래. 아무튼 기독교 때문이든 철학 때문이 든 간 나는 지금 꽤 안정적인 상태에 접어들었으나 감은 여전히 산채 직장생활을 했고, 고등학교 이후로 영적 ‘체험’이라고 할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나 스스로에 대한 질문은 살아 있었으니, 그 이후로 자연스레 종교학을 공부하고 무속신앙을 공부했으니 지식이 접목하며 나에 대한 이해가 늘어났다. 그렇게 나는 엔터 계열 직장에 취직했다.
종교학을 배우며 신기했던 건 철학에서 다루던 영역과 다른 부분이 있단 점이었다. 특히 답답한 마음을 말하게 한다는 것. 그건 굿 영상을 보거나 굿판 비슷한 곳에 가서도 느꼈던 느낌이었는데, 참으로 신기한 것이 무당들은 ‘억눌려서 말하지 못한’ 사실을 말하게 했다.
나 나름대로 종교학을 붙여 설명하자면, 이런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4.3 학살과 같은 학살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누군가 실제로 귀신이 ‘들리거나’ 아니면 4.3 학살을 봤지만 말을 못 해서 답답해 미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4.3의 폭력이 언어가 아닌 ‘몸과 몸’으로 전이되어 누군가의 트리거 포인트를 눌러 미쳐버렸을 때, 무당이 따다단 하고 등장하고 굿을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언어로 말하지 못한 고통을 귀신을 ‘입어’ 언어화한다-고 생각하는데, 귀신이 진짜건 아니건 간에 억울함 혹은 억눌린 고통을 풀어준다는 점에서 무당은 좋은 직업이었다.
지금이야 무당이 무속이라며 안 좋은 이미지이기도 하고, 특히 과학과 대척에 있는 느낌으로다가 비아냥도 많이 받지만, 내가 배운 종교학 수업에선 무당의 참된 방식은 “억눌린 자를 해방하고, 답답한 것을 풀어헤치는 일”이라고 배웠으니, 나는 사실 무속을 무시하고 싶진 않았다. 실제로 굿 영상뿐만 아니라 나도 어느 정도는 그게 무슨 느낌인지 알았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나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바로 콘서트를 가게 될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
몇몇 콘서트를 업무적으로 가다가, 내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순간은 ATEEZ라는 팀의 콘서트였다. 사실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은 ATEEZ를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나도 몰랐다) 해외에선 BTS다음으로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그룹이었고, 내가 갔던 콘서트장엔 총 20000명의 엄청난 팬이 밀집되어 있었으므로 그 에너지가 상당했다.
그리고 느낀 것. 그 20000명이 가지는 어떤 답답함이나 분노, 슬픔등이 한 번에 승화되는 느낌이 있었다는 것. 그들이 소리 지르고, 탄성을 지르고, 소위 말해서 ‘떼창’을 하며, 그들은 무언가 승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리를 지르고 난 뒤, 점점 행복해지는 표정, 가뿐해지는 몸. 귀신을 꺼내서 그들에게 말을 하게 하고 성불시키는 게 굿이라면, 콘서트는 귀신을 꺼내진 않지만 콘서트는 억눌림과 분노를 직접 말하게 하고 승화시키는 과정을 거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승화시켜 마음을 열고, 또 이들끼리 하나가 되어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한차례 덜어내는 그 느낌. 말 그대로 혼문이 열리는 상황이었는데, 그러니까 에이티즈의 홍중을 포함한 8명은 말 그대로 헌트릭스의 역할을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케데헌이 개봉하지 않았을 때고, 또 내 추상적인 이미지는 그저 ‘무당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들의 여한을 풀어주고 기쁘게 해 준다-‘라고 느꼈을 터, 그렇게 약 1년 6개월 동안 이 느낌을 풀 곳은 없고, 사람들에게 ‘야~ 아이돌들이 살풀이굿을 해’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 그대로 마음 속에 품고만 있었다.
케이팝데몬헌터스를 보면서
그런데 어느 날, 케이팝 데몬헌터스를 봤다. 나는 사실 이런 ‘깔’의 애니메이션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미 무당이 아이돌이 됐다는 그 접근부터 ‘오…’ 싶은 느낌에 홀린 듯이 봤다. 내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앞서 말한 ‘혼문’을 다루는 부분. 단순히 마음의 해방을 넘어, 팬들이 하나 되어 방어막을 만든다는 느낌까지 내가 느낀 바를 너무 잘 구현해 줬다.
하나만 더 첨언하자면 가사에 대한 관점도 재밌었다. 아무래도 노래 영화인지라, 각 아이돌들의 가사가 중점이 되기 마련인데, 악마(사자)와 이를 방어하는 무당(헌트릭스)의 성격을 잘 녹여냈다. 왜, 매력을 사용해 사랑을 독점하고 사랑을 받기만 하면 주는 인간의 마음은 황폐해지지 않나. 그렇지만 반대로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나를 받아주고, 나의 부족한 점을 드러나게 해 주고 포용해 주면 더 해방감이 들지 않나.
이를 잘 나타내주는 듯이 사자보이즈의 노래는 ‘자신만을 쳐다보고 자신만을 응원’하라는 독재와 욕망이 가득한 가사인 한 편, 헌트릭스의 가사는 좀 더 자신의 내면을 잘 드러내 보이고, 숨지 않고, 사랑하라는 방향성이 좀 더 강했다.
이래저래 내 개인적 경험과 종교학의 수준이 전문가의 수준은 아니지만, 소위 말하는 ‘신기’가 있으면서도, 엔터 쪽에 있어서 실황을 느끼면서도, 종교학을 찍먹 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하며 글을 써본다. 사실 케데헌을 담아내기에 깊이가 부족하지만, 어느 정도 나’만’ 쓸 수 있는 영역이 있어서 글을 밀고 나아가본다.
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이들이 콘서트나 예술을 통해 해방감을 느꼈다면 좋겠다는 사실이다. 혼문이라는 것은 사실 우리 사회에서도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케데헌 이전부터 내가 본 것이, 혹은 내가 느낀 것이 나의 상상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팬들의 하나 된 마음에서, 또 팬들이 소리 지르며 해방된 마음에서 어떤 에너지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은 하나 되고, 또 뭉쳐서 일상이 답답함이나 아픔을 이겨낸다. 쉽게 말하면 스트레스를 푸는 거고, 어렵게 말하면 해방감을 느낀다. 혼자면 할 수 없는 떼창을 다 같이 하고, 혼자면 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이게 그 힘일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 좀 더 자유로워지고 좀 더 느껴보자. 혼문은 비유지만 자유는 우리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악마로부터 보호하는 마음은 우리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억압과 억눌림을 넘어 자유와 사랑을 계속 지켜나갈 당신들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