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루팡이 싫어서 회사를 나왔다.
“바꿀꺼 다 바꿔서 나가려고요.”
내가 기대한 반응과 달리 이사님의 반응은 사뭇달랐다.
“요구사항이 있으면 한 번 제안 해주세요. 회사에서 바꿀 수 있는거라면 생각해보고, 설득해보려고요”
내가 생각한 기대 반응은
“그래도 이거 이거 바꿀 수 있지 않아요? 이렇게 바꾸면 또 해볼만한데… 그러면 다른 거 해보시죠” 였으나 그의 반응은 ‘요구사항’.
그럴만도 한게 내 퇴사 사유는 월급 루팡이 싫어서-였으니까.
그간 업무에서 쌓인 신뢰. 몇 억정도의 개선 성과. 활기차게 변한 팀원과 달라진 분위기. 그리고 업무효율.
나름대로 그 팀의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업무 신뢰까지 있으니 이사님은 나에게 ‘바꿀거 없냐?’라는 질문 혹은 ‘이거이거 해보자’라는 말보다는 회사에서 해줄 것을 물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있었다. 나는 이상한 책을 읽었단 것.
이상한 책들은 다름 아닌 철학책. 10년간 쉬지 않고 철학 책을 읽었으니 남들이 봤을 때 소위 ‘또라이’같다고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말을 뱉고보니 떠오르는 건 사르트르의 책(혹은 관련서적)이였는데, 왠지 사르트르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너가 선택한게 너의 본질이고 정체성이야’
그래. 이왕 세상을 사는 거, 좀 더 재밌게 살고 싶었다.
월급루팡하면서 청춘을 다 까먹느니, 퇴사라는 리스크를 지고서라도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남들이
“왜 퇴사하세요. 꿀 좀 빠시면서 다른 이직처 알아보세요”할 때
이미 나는 가서 뭘 바꿀지를 생각해보고 있었다. “그래도 다 바꿨으니 다음 연봉 협상에서 더 챙기고 나와보셔요”라고 할 때, 다음에 어디가서 뭘 바꿀지, 지금 직장에선 더 바꿀 건 없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돈. 맞다. 중요하다. 사람들의 걱정은 나에게 꼰대짓을 한다던가, 아니면 고나리짓을 하는 그런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진심 어린 애정과 눈빛이 섞여있는 그런 것. 나는 그들의 진심을 충분히 받았고, 또 이해도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오지 않을 청춘이자 나이였다. 나는 어떻게 생으로 가득찬 날들을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매일 지루하게 내가 만든 반복작업만 하며, 또 작은 단위의 무언가만 고치며 어떻게 있얼 수 있을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삶이 지루하게 하루하루 흘러가는 것. 의미 없이 흘러가는 것. 그것이 문제였다.
생은 짧고 예술은 길듯, 생은 짧고 일도 기니, 나는 일의 가치를 택했다. 그리고 일의 가치를 고민하니 자연스레 돈보다 가치가 눈에 들어왔다. 가치. 누군가 들었을 때 구닥다리의 말일지도 모르지만,
난 이게 중요하다.
일에 잡아먹히지 않으니 이런 저런 선택도 한다 싶다. 하지만 이것이 맞지 않나-싶기도 하다. 우리는 일 때문에 사는게 아니라 살기 위해 일하는거니까.
외환 위기 이후 최대 실업률이라고 한다. 사실 거창할 것도 없다. 이런 저런 화려한 말을 넣어놨지만, 간단하게 보면 난 지루함과 취업이 되지 않을 리스크를 바꿨다.
그럼에도 “후회하세요?” 라는 말에 입이 귀에 걸릴정도로 웃으며 “완전 없어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게 좋아서다. 용기. 그것은 나를 잘 아는 마음과 가치에서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