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주의가 정확하고 좋은 방향을 택하는 순간, 구성원의 행복도는 확실히 올라갔다. 집단주의는 대표에게 힘이 몰려있기 때문에 좋은 정책을 발현하면 그 효과가 특히 더 잘 전달된다. 서양에서 아빠가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고, 러닝을 하고, 환기를 하는 모습보다 동양의 아빠가 신문을 보고, 러닝을 하고, 환기를 하는 모습이 훨씬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처럼 집단주의나 유교는 대표의 큰 영향을 받는다. 문제는 악영향이 되어도 비슷하다는 점이다. 문제는 우리 가정은 악역향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맹자는 이를 대비해 ‘역성혁명론’. 곧, ‘왕위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며 백성을 돌보지 않는 왕조는 하늘의 명을 어겼으니 이를 거스르는 것이 가능하다’ 했지만 방구석의 역성은 오히려 쉽지는 않은 것이었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가스라이팅 아닌 가스라이팅을 받은, 그러면서도 아빠의 아픔을 본 내가 질서를 뒤엎는다는 것은 내 본래 목적인 ‘아빠가 좋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를 거스르는 것이었으므로 더더욱 이는 어려웠을 것 같다.
하긴 천재작가 카프카조차 자신이 집안에서 벌레가 됐음을 인지하고는 “그렇지만 난 인간이야! 봐봐!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난 감동한다고!”라고 말하는 것으로 그 답답함을 풀었으므로 나 같은 일반인은 질서를 바꾸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빠의 트라우마를 모두 해방시키거나 해결할 수 없었으므로 가장 나쁜 케이스인 집단(대표)의 방향도 잘못됐고, 내가 해결할 수도 없는 상황 (1번과 2번이 혼합된 상황)을 가장 가까운 가정에서 맞닿드리게 된 것이다.
어쩌면 내가 철학 혹은 더 나아가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태도를 배우려고 애쓴 이유는 아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감수성도, 집단주의도 우리 가정에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으니 정말 새로운 대안으로 한 번 실험해 보자고, 정말 새로운 대안으로 접근해 보자고 어떻게든 발버둥을 쳤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리 가정뿐만 아니라 (조금 과잉 해석해서) 사실 대한민국 전체가 이렇다고 느낀 건 뜻 밖에 걸린 통찰이었지만 말이다.
유교와 무속(감수성)의 혼란은 나에게 이렇게 큰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아 나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아빠문제 해결 수 없고, 집단주의 못 깰 건데, 내 안에도 집단주의 성향이 이 정도 있으니까 대충 인정하면서 살자’라고 팔자처럼 받아들였다면 또 다른 선택들을 해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이 두 가지 혼란 속에서 꽤 큰 고통을 겪었다. 지금이야 좀 편하게 말하지만 다른 문제까지 엮여 당시에는 자살시도까지 했을 정도로, 혈압이 200 이상 올라가 응급실에도 갈 정도로 정말 고통스러운 경험들이 많았다.
서양철학으로 넘어가기 전, 군대 이야기로 유교 파트를 갈무리하고 싶다. 여성분들은 또 군대이야기야? 싶을 수도 있지만, 미안하게도 집단주의를 잘 나타내는 건 군대이야기가 빠질 수 없구나-싶다. 양해를 구하며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이건 훈련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20명 정도 되는 분대의 대장이 된 건 다름 아닌 어떤 느낌 때문이었다. 가장 나이도 많기도 했거니와, 내가 대장이 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어림짐작은 처음부터 느껴진 ‘감’의 영역이었다. 나에겐 유달리 적응을 못하는 친구가 한 명 보였고, 또한 집단에서 잘못하면 당연히 소외되거나 따돌림받아야 한다고 생각되는 친구들이 모여 있음을 느꼈다. 이 멤버로 4주를 보내야 할 것 같은 이 불안감은 나라도 대표가 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4주를 문제없이 보내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소외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이 나는 걸릴 수밖에 없었기에 완장이라도 차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아니나 다를까. 5일 정도가 지나자 분대의 책임자가 나를 따로 사무실로 불렀다.
“너 얘 대하는 거 보니까… 너도 얘가 조금 미숙한 거 알지? 네가 여기 대장이니까 잘 챙겨라. 문제없이.”
아스퍼거 증후군. 그러니까 자폐로 잘 알려진 증상이 그 친구에겐 보였다. 물론 평범한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 친구는 어림짐작하기로 중증 정도의 증상이 보였다. 일상생활이 어렵고, 옆에서 챙겨줘야 하고, 대인관계가 어려웠다.
문제는 군대라는 조직은 대부분 공동책임이란 사실이었다. 공동책임 속에서 누군가는 이 사람을 적응시켜야 하고, 누군가는 속도에 맞춰 따라가게 만들어야 했다. 내가 빨리 끝내서 시간을 내든, 조직과 잘 소통해서 그 친구를 챙기든, 문제없이 옷을 입히고, 샤워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침구를 개고, 운동장으로 집결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우리 조직 15명의 책임, 더 나아가 내 책임이 됐다.
내가 대장을 신청했다는 마음을 가지고 책임감과 의무감 그리고 마음에 걸리는 죄책감으로 그 친구를 받아주었지만, 이성은 신체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 친구에 대한 사랑과 시스템에 대한 답답함까지 있다고 해도,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건, 빨리 그리고 당장 해내야만 하는 훈련들, 아니 매일 아침 준비해야 하는 조회였다. 장갑을 챙겨주고, 방한 용품이 문제가 있는 건 없는지 챙겨주고, 준비해줘야 하는 신경들. 이런 신경들과 피로들은 내 마음과 이성을 앞섰다. 그렇게 나에게도 웃는 얼굴로 그 친구를 대하지 못할 때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문제를 집단주의와 감수성 이 두 가지 측면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 군대는 기형적이라는 말은 이제 클리셰가 됐다고 생각한다. 군대, 솔직히 이상한 거 누가 모르는가. 다만 내가 보는 대한민국 군대의 이상함은 희생에 대한 부분이다. 앞서 말한 집단에서 누군가 희생하는 당연함이 서양의 군대라는 조직을 만나 탄생한 결과물이 나는 대한민국 군대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군대에서 희생한 군인들을 고마워하고 자체적으로 상을 주는 것과 달리, 한국 군대는 희생의 당연함이 컸다. 집단주의를 이식한 군대는 당연히 막내가, 당연히 힘없는 사람이 희생해야 했고, 성과와 결과는 당연히 리더들이 얻어가야 했다. 그런데 만약 희생하기 어려운, 따라가기조차 어려운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 몫까지 누군가 희생해야 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예시를 설명하자면 이런 부분이었다. 내가 서양의 군대를 경험한 적은 없지만, 내가 대장으로 아스퍼거증상을 가진 친구(이후 편의상 B친구라고 하겠다)를 챙기고, 문제가 생겼을 때 혼까지 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문제없이 전역시키는 공로나 결과는 내가 아닌 위의 대장들에게 돌아갔다. 챙기고 있음에 고마움이 아닌, 챙기고 있는 모습의 당연함. 그러므로 나는 아스퍼거 친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열심히 챙겨도 이 시스템은 똑같이 유지되고, 똑같이 굴러갈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바꾸려면 조직의 대표나 권한이 있는 자리까지 올라가야만 했다. 반대로 이에 대해 항명하면 군대의 빡빡한 룰에 따라 많은 고초를 겪을게 뻔했다. 물론 내가 용감히 영창을 다녀올 마음이 내 안에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또 소위 “죽지 뭐-“하는 멘털이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그 정도 용기는 없었으므로 (그리고 이게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한다는 걸 알았으므로) 최소한 방향이 잘못된 집단주의는 이 문제를 반복해서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갈리고, 갈리는 것은 당연하고, 약자는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듯 의지해야만 하는 이런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감수성으로 그 친구의 편에서만 서도 문제가 됐다. 마치 콜센터에서 고객의 상황이 안쓰러워, 20 통정도의 통화가 밀려있는 상황임도 혼자 한 통화만 붙들고 있는 상황과 비슷했다. “야 얘 어려운 친구잖아. 좀 우리가 다 같이 돕자”라고 한다면 편을 갈라 나를 비난할 것이 확률적으로 높았다. 또한 혼자 힘으로 B친구를 챙기기란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반대로 은근한 혐오의 시선을 받는 B친구의 감정상 태도 신경 쓰였다. 차라리 내가 조금 혼나고 말면, 사과하고 말면 비굴해지거나 혼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군대의 시스템은 좀 달랐다. B친구도 어찌할 수 없는 민폐와 공동책임으로 혼나는 시선, 그로 인해 다시 분대들에게 받는 시선 그리고 B친구도 자신에게 답답해하는 마음, 이 악순환이 돌아가고 있었다.
여기서 같이 생활했던 친구들을 무작정 비난하고 싶지 않다. B친구가 아닌 ‘1인분을 하는 친구’들 역시 답답했을 거라고 난 생각한다. 공동책임과 페널티는 부담이었을 수 있다. 자기들도 지치는데 남을 챙기라니. 군대는 그리 여유만만한 곳이 아니었으며, 여유가 없을수록 타인에게 더 각박 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적응하기 어렵고, 신체적 페널티가 있는 친구를 도와줬을 때 보상이 있는 집단이었다면 이들도 나와 함께 챙겼겠지만 이는 한국의 군대에선 불가능했다.
집단주의도 무속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이 답답함. 나는 이 답답함을 콜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느꼈다. 내가 시간을 아껴 답답한 고객에게 시간을 쏟아봤자, 시간에 쫓기어 전반적인 상담의 질은 가만히 멈춰있는 구조. 아빠의 말을 열심히 순종하고 따라도 해결될 수 없는, 아빠와 나 둘 다 상처받는 이 구조. 그리고 내가 아무리 힘든 사람을 챙겨봤자 희생하는 사람은 희생하고, 잘못 끌려온 사람은 혐오를 받는 이 구조. 이 구조는 내가 노력해도, 아니 정확히는 집단주의와 무속 어느 쪽에 서도 똑같은 결과를 가져올 뿐이었다.
물론 콜센터야 자본과 성과의 논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성적을 높여 바득바득 높은 자리에 간다면 상황은 뒤바뀌겠지만, 가정이나 군대는 상황이 정말 달랐다. 아빠는 한국사회의 특성상 영원한 아빠고, 군대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나는 높은 직책에 올라갈 수 없다. ‘군대는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냐?’라는 희생 문화를 모두의 마음속에서 바꾸지 않는 이상 특히 더.
즉 나에겐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행동은 감수성이나 집단으로만 문제를 보는 게 아니었다. 한 개인에 대한 분석이, 정확히는 ‘증상’에 대한 접근이 필요했다. 그 친구를 마나 도와줘야 할 사람-이나 마냥 불쌍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접근이 필요했다. 약간 어렵게 말하자면, 그 친구의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존재론), 그리고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인식론), 마지막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윤리학)적인 관점이 필요했다. 물론 증상과 그 사람을 정말 일치시키는 건 위험한 행동이지만. 나에게 전화시간이 주어지자 나는 부모님이나 친한 친구가 아닌, 심리학 대학원생 친구의 전화번호를 아는 친한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000 번호 알지? 번호 좀 알려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