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며

by 시몬 베유

나가며


글을 모두 작성하고 든 생각은 이것이다. “아 연애 망했네…” 오늘 아침엔 친구의 스토리에 뜬 “철학 좋아하는 남자는 만나지 마…”라는 글로 시작했다. 또 맨날 나는 “00은 항상 복잡하고 예민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모든 것을 쏟아냈으니 연애를 넘어 인간관계는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도 든다. 결국 인간관계니 연애니 고민하는 걸 보면 나도 집단주의가 중요하구나- 싶다.


사실, 그럼에도 “사랑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우진 않는다. 앞서서는 ‘같은 편’을 확인하는 연애나 인간관계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했지만 사실 한국 사회는 집단이 집단과 싸우거나, 개인이 집단의 언어를 빌려 공격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개인의 이야기를 하는 당사자는 꽤 두려울 때가 많다. 개인의 이야기를 꺼내기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괜히 큰 단어들, 그러니까 빨갱이라던가, 북한, 사회성, 이상함등의 단어를 쓰는 이유 같다. 집단이 공격할 때의 트라우마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나는 친구들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그 사람의 편에 서는 것을 사실 최대한 하려고 하는 편이다. 일단 공감해야, 두려웁지 않아야, 좀 더 다정해야 그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말은 정확도 보단 맥락성에 좌우되는 것도 같다. 이동진 평론가가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어머니가 영화를 보러 가셨는데, 교회 집사님 세 분에게 서브스턴스(고어물)를 추천해 줄 수는 없잖아요”라고. 만약 그러나 그가 고어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가 눈을 반짝거리며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서브스턴스를 추천해 줄지도 모른다.


내가 종교의 정체성을 통과하면서 느낀 진실은 정체성이 많은 사람일수록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정체성이 하나면 답은 쉽다. 집단주의가 옳다고 믿는 사람은 답변이 쉽다. 어쩌면 종교성이 짙은 사람도, 정치성향이 똑바른 사람도 답은 더 쉬워진다. “야근이요? 하면 되죠.” “그냥 돈 열심히 벌어서 좋은 가정 꾸리면 되죠” 할 수 있다. 극단적인 케이스긴 하지만 특유의 cool함도 있다. 제고 따지는 것도 없고. 하… 하지만 정체성이 많으면 말도, 생각도, 예민함도 늘어난다. 마치 처음 만난 상대에게 내가 서양문화적으로 대답해야 하는지, 집단주의로 맞장구를 쳐줘야 하는지, 아니면 그 사람의 답답함을 꺼내줘야 하는지…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는 말해야 하지 않나-라는 마음으로 글을 이끌어봤다. 사실, 차분하게 쓴 글 같지만 울기도 많이 울었다. 과거와 화해하는 시간도 있었고, 충분히 껴앉아줘야만 하는 시간도 있었다. 마음의 문을 열기 전 한 숨자고 해야 한다며 낮잠을 자기도 잤다. 또 걱정도 많이 했다. 딱 한 문장만 가져와서 DM이나 메일을 보낼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 같아서. “제 생각에 유교는 이런 거 아닌데요.” 라든가 “대한민국 뜨시죠” 같은 말을 할 것도 같아서.


하지만 어떠한가. 걱정이 많은 만큼, 나는 남들보다 좀 더 감각하고, 좀 더 느끼는 사람이다. 나의 이야기를 긍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최종적으로 나 밖에 없으며, 또 내가 나를 긍정할 때 나는 새로워졌다. 무엇보다 철학자들에게 배운 건 어느 정도 외로울 수 있는 힘이었고, 최소한 내가 이 글을 쓰며 해방되는 경험을 했으니 누군가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이 모두를 구원할 수 없음을 안다. 1-2명 정도라도 내 글을 읽고 해방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교만일까 싶기도 하다. 이젠 정말로 돈이 좀 떨어져 빨리 취준을 해야 하나-라는 마음과 그럼에도 누군가는 읽고 힘을 내겠다는 온건한 질문 앞에서, 나는 좀 더 써야 한다는 약간의 의무를 지지했다. 생각해 보면 언제나 용기 낸 곳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나를 좀 더 믿어준 곳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글로 이어질 당신과 나의 새로운 사건 그리고 글이 나로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지 않더라도, 마음이 해방되어 새로운 풍경과 사랑을 할 당신을 기다리며 나는 글자들을 끝까지 붙들고 또 밀고 나갔다. 이건 어떤 기세였다.


마지막으로 이 기세 좀 더 넓어지길 바라보길 희망하며 글을 마친다. 환대와 사랑과 다정히 꺾이지 않은 다정을 지켜내고, 누군가 성냥하나를 던졌을 때, 우리가 확 연결되는 그런 기세 말이다. 저 사람은 정말 나와 완전 다른, 각 개인이구나 하는 태도로부터 각 개인이 0.2+0.8이 모여 1이 되는 것이 아니라, 1과 1이 만나 2가 된다는 그런 인식으로부터 그런데 서로 환대를 할 수 있다는, 그런을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언젠가 불이 붙지 않을까. 오늘도 환대와 다정 그리고 20년 전 옆집 아주머니의 카레를 내준 감각을 아는 당신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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