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을 끝내고 사랑을 살아내는 방법 -3

by 시몬 베유

환경과 시선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변한다는 사실은 내가 건축을 공부하며 얻은 중요한 사실 중 하나였다. 축구 모임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무렵, 나에게 떠올랐던 것은 다름 아닌 스위스 바젤에서 봤던 점심시간을 향유하는 장면이었다. 그 사람들의 점심시간은 2시간 정도로 보였는데, 그들은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카약을 타거나, 러닝을 하거나, 강가에 나와 돗자리를 피고 책을 읽고, 낮잠을 자고, 점심을 먹었다.


해당 경험은 나에게 ‘점심시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었다. 나에게 점심시간은 밥을 먹고 쉬기 급급한 시간이었는데, 역시 보는 만큼 상상할 수 있다고 바젤에서의 모습들은 생각보다 다양한 쉼을 다채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줬다. 그리고 내 눈에는 축구에 관심이 있지 않은, 에너지를 뿜어내는데 어색한 사람들이 보였다. 이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더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까.


이들의 표정이나 에너지는 완전 회색빛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나에게 걸린 건 역시 흥과 재미였다. 결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수많은 변수에 치이고, 스트레스에 허덕일수록 시드는 꽃처럼 말라비틀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므로 나는 바젤의 기억을 떠올렸다.


한편, 내가 다니던 회사는 특정 날짜에만 점심시간이 한 시간 반이었으므로 나는 이 시간에 바젤에서의 경험을 되살리기로 마음먹었는데, 한강이 가깝다는 지리적 특성과 건축에서 배운 경험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라는 특성들을 잘 조합해 본 결과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특정 날짜만이라도 좋으니 다 같이 한강에 다녀오자. 그렇게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생각보다 많은 인원인 7명 정도가 함께 하게 됐다.


서로는 자전거, 도보, 택시등의 방법으로 각자 한강에 도달했다. 심지어는 이 날을 위해 쿠팡에서 돗자리를 시키거나 가져오는 등 준비도 철저했는데, 돗자리가 회사에 오고, 또 돗자리를 가져올 때 그들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었다. 미리 시켜둔 샌드위치를 픽업하여 돗자리를 펴고 날 좋은 한강에 앉아 1시간을 보낼 때, 그제야 서로 이야기를 서먹하게 하던 사람들도 대화를 한 것 같다. 삶의 숨구멍을 만드는 동시에, 낯섦에 대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축구와 달랐던 점이라면 낯섦 상대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는 점이다. 축구는 몸으로 부딪혀 몸을 가까이했다면, 한강은 마음을 가까이해 마음의 거리를 줄이는 시간에 가까웠다. 서로의 긴장을 풀 수 있고, 상대가 내 생각보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시간의 효과가 있자, 사람들은 자연스레 한강을 가기 시작했다. 내가 굳이 사람을 모으지 않아도 한강을 갔던 기억에서 더 나아가 사람들을 모았다. 심지어는 업무가 끝나고 나서 피크닉을 가기도 했다.


이 사례는 서양문화의 케이스가 짙다고 생각한다. 무속적인 속성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서양에서의 모습을 캐치한 건 사실이지만, 기획의 단계에서부터 서양철학에서 배운 언어화 능력이 빛을 발했다. 여유로운 곳에 있으면 사람 마음이 풀어질 것이라는 가설, 지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1시간 반이라는 리소스, 지리적 특성, 위치등 많은 조건을 생각하여 좀 더 기획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문화적인 지속 가능성과 넓게 퍼지는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케이스는 점심문화의 변화다.


물류팀에 오고 난 뒤 가장 큰 변화는 층이 달라졌다는 점이었다. IT팀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나는 공연을 운영하는 팀과 같은 층을 쓰게 됐다. 거기에 있던 게 바로 2살쯤 이민을 갔던 미국인 친구와 온두라스 친구 그리고 영화 연출을 전공한 어느 사원이었다. 가끔 가던 목요 피크닉 혹은 나들이를 이들을 꼬셔 좀 더 잘 다니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과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어느 촉이 왔다.


그 촉은 낯섦에 대한 거리감이었던 것 같다. 미국인 친구와 온두라스인 친구는 낯섦에 대해 그렇게 거리감이 크지 않은 듯했다. 나는 말했다. 목요일마다 맛집이나 카페에 가자고. 역시 바젤에서 느꼈던 감각 때문이었다. 이들을 이끌고 좋은 카페로, 공원으로, 맛집으로 나들이를 갔다. 매 번 찾았고, 그들은 고마워했다. 낯섦에 대한 느슨함과 안전 사이에서 좋은 친구가 됐다.


조금 재밌었던 건 내가 퇴사하고 난 이후에도 이와 같은 문화가 이어지기를 넘어, 좀 더 발전했단 사실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목요일 함께 밥을 먹었던 사람들은 같은 층의 다른 사람까지 포함해 매일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물론 목요일의 루틴은 그대로 지키는 것 같았다. 내가 퇴사한 뒤 몇 번의 만남을 가졌는데, 그들은 나에게 “이 문화를 만들어주셔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독특했던 건 이들은 ‘집단’에 대한 압박이나 강박이 적었다는 점이다. 내가 맛집을 찾고, 카페를 소개하고, 무언갈 안내할 때 이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해줬고 기뻐해줬다. 이들은 내가 회사의 화합 도모를 위해 맛집과 카페로 이끌고 나간 걸로 생각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내가 환대를 해주는 것으로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신나고 즐거웠다. 나의 희생을 희생으로 바라봐주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다. 물론 회사라는 집단이 있었기 때문에 되려 이 모임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사실 연 2-3억 바꾸고, 업무 효율 80% 증가시킨 것보다 난 이 일들에 자부심을 가진다. 좀 더 살만한 세상, 유연한 방식, 자족하는 마음을 줬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생각에 이는 내가 동양적인 정체성, 특히 무속적인 정체성이 강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면서도 서양문화의, 특히 서양철학의 구조, 발전, 성장이라는 키워드에 반응해서 그런 것 같다. ‘나’만 잘되기 위해, ‘나’만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 나의 에너지를 쓸 때, 그리고 이것들이 점점 발전될 때 나는 행복하다. 정확히는 이 ‘집단’의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질 때 행복하다.


물론 여기서 질문할 수도 있다. ‘결국 이렇게 노력해 봤자 그 회사에 이득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나의 1차적 목적은 이거였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현재의 사람들과 일단 행복하는 것. 물론 회사의 이득, 나의 지속가능성 등등의 견지는 해봐야겠지만 일단 나에겐 이 목표가 훨씬 편했다. 아무래도 내 몸은 오랜 시간 동양에서 자랐고, 그럼에도 내게 주어진 사람들을 난 사랑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설명하자면 동양학에서는 현재, 주어짐, 팔자등의 주장이 더 강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비해 무언가를 바꾸고, 성취하고, 방향을 잡는 건 좀 더 서양철학 쪽에 강하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은 무속이고, 살아남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방식은 서양문화였으니 나는 어쩌면 ‘일단 현재 주어진 사람들을 사랑해. 행복하게 해. 단, 이게 지속가능성이 있고, 너무 이용당하는지만 생각해 봐’라는 말이 나에겐 정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니 나는 이 양식을 따랐고, 일단 사람들의 행복이 중요했고, 내가 희생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특히 유교적이거나 나 개인이 희생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회사에서 나타났던 결과 중 좋은 케이스만 있던 건 아니었다. 서양철학, 개인, 책임등의 언어를 습득한 것도 역시 회사에서였다.


나의 가장 큰 약점은 역시 감수성과 오지랖이었다. 운영 업무에 있어서 나는 사람들의 간절한 부탁과 요청을 거의 무조건 들어주곤 했는데, 간절함과는 다르게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이 문제가 반복되자 O님은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00님 봐봐요. 자꾸 이렇게 도와주면 나도 도와주고, 권리인 줄 안다니까요. 저 사람들 같이 일한다고 말하는데, 결국 본인이 다 뒤집어쓰잖아요.”


상처는 상처대로 얻고, 마음은 마음대로 상하고, 자칫 잘못하면 모든 책임을 독박으로 써서 잘릴 뻔한 적도 있던 상황이 있었는데, 그제야 나는 알았다. ‘함께’라는 말이 나를 덮치면 어디까지 문제가 생기는지를 말이다. 그때 ‘개인’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아,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서로 돕고사는 농경사회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개인과 책임이 더 명확할 때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선 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도와주지 않는 서운함에 대해 잘 선을 긋고, 때로 싸우고, 이건 아니라며 투쟁했다. 물론 나에게는 억울한 표정, 화나는 표정(차라리 화가 나았다), 상심한 표정, 슬픈 표정들이 꽤 맺혔는데 내 도움의 지속성과 더 효율적인 흐름을 생각해 본 결과 내 거절이 더 효과적임을 직감했다. 그렇게 각자 선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시간이 흘러 팀을 옮기게 되었을 때 나는 그분들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00님. 다들 일 못해서 쫓겨나다시피 팀을 옮긴 건 아닌가 생각했다니까요.”


정말 그 사람들의 입장에선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며 정신이 번쩍 든 문장이었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급한 것, 자신이 처한 상황만 기억에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의 전환이 찾아왔다. 돌이켜보면 선의가 권리가 된 적이 많았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나는 얼마나 많은 위로와 사랑을 더했는가. 경청과 호의를 주었는가. 마치 상대가 기뻐할 것 같아 마음을 먼저 내어주고 이것저것 도와주었으나, 언제부턴가 ‘네가 좋아서 주기로 했잖아-‘라는 말이 돌아오는 사이가 있었다. 회사에서의 일련의 일들 있고 난 후 내 마음을 쓰는 법을 어느 정도 배운 것 같다.


이상하게도 나에겐 “너의 마음이 소중하니 지켜라” 라든가, “당신의 마음은 함부로 할 수 없다”라는 말들이 와닿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을 나눠주려고 하고, 환대해주려고 했다. 나의 마음의 소중함의 전제는 ‘나’였는데, 사실 내 마음의 깊은 곳에선 ‘나’이니, ‘나’를 지키라니, 이런 마음들이 와닿지가 않았다. 그냥 마음이 가는 걸 어떻게 하고, 그냥 신경이 쓰이는 걸 어떻게 하는가. 무엇보다 나만 악독하게 ‘이제부터 나를 통장 잔고 지키듯이 지켜야지.’라니. 나는 여전히 밥을 나눠먹고 싶고, 내 안의 여유를 나눠주고 싶고, 사랑을 전달하고 싶다.


오히려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배운 건, 지속 가능성 효율이었다. 곧 내 마음은 여전히 따스하고 온전하게 유지하되, 이것이 지속가능한지 생각해 보는 것. 만약 상대가 나를 집단의 일원으로 인식하여 내 호의를 당연한 희생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희생을 줄이는 게 맞았다. 특히 책임이나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더더욱 어느 정도 조심하는 게 맞았다.


그렇다고 해서 평소에 점원에게 하는 인사나 회사 사람들에게 하는 인사를 그만둔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베푸는 친절, 나눔, 환대를 멈춘다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단, 과연 상대가 이를 희생으로 보는가- 환대로 보는가 이것이 중요했다. 내가 레비나스라는 철학자에게 배운 것처럼, 환대는 내 마음을 모두 허물어놓고는 상대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다. 나치가 나를 공격해도 ‘언젠가 그 사람들도 깨달을 거야-‘하며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다. 나의 주체성을 가져가되, 그 사람이 들어올 자리를 꽤 많이 비워두는 것 만약 이를 희생이 아니라 환대로 보면 친구가 되는 것. 이게 맞았다.


그러므로 나는 이 문제를 이렇게 정리했다. 당신을 챙기라는 말이 와닿지 않는다면, 당신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라고. 나는 나를 갉아먹던 관계들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이 관계의 흐름이 나를 마냥 희생시키는 건 아닌지, 이 사람이 나를 당연하게 생각하진 않는지, 당신이 계속해서 희생할 수 있는지, 이 희생이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지. 난 판단의 기준을 세운뒤로는 상상으로 이 감정을 충분히 통과하는 습관들이 좀 생겼다. 만약 내가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것들을 주었을 때, 과연 이 사람들은 감사하고, 나와 기쁨으로 공명할 수 있는가. 나 역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가. 희생이 일방적인가.


예를 들어 회사에서 나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내 기쁨보다 크다면, 나는 희생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타 팀을 도와줬는데 문제가 생겼을 때 “이거 당연히 도와주는 거 아냐?”라고 말한다면, 나는 내 지속성을 위해서라도 이 행위를 멈춰야 한다. 그러나 엘리베이터의 열림버튼을 잡고 있다던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 행동은 큰 책임이나 힘이 들진 않는다. 이 행동들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고, 이를 고마워하는 사람과도 연결될 수 있다. 만약 피크닉을 가는 행위나 축구모임을 운영하는 행위가 ‘당신이 생각했을 때’ 당연히 여겨지거나 지속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면 당신의 힘을 조절하는 것이 되려 환대를 더 오래 할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된다.


이 생각의 핵심은 다름 아닌 내 안의 사랑과 호의를 지키는 것이었다. 회사를 다니고 여러 사람에게 마음을 주며 깨달은 건 이를 이용하고 인생을 망치려는 사람들 역시 많다는 점이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디멘터처럼 나의 좋은 에너지와 환대를 빨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던 한편, 심지어는 이 호의와 사랑을 ‘아, 얘는 호구니까 필요할 때 사용해야지-‘싶은 사람들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용당했다거나 희생이 당연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마음이 정말 차갑게 식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 안에 올라왔던 감정은 ‘환대고 사랑이고 뭐고 그냥 내 인생 살아야겠다-‘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난 그게 싫었다. 스스로도, 남에게 나타날 때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는 이 경험을 통과했다고 생각한다. 꺾여버려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싶다. 세상은 냉소적이고, 세상은 내가 굳이 환대를 하지 않아도 된다며 나’만’잘 살면 된다며 마음을 먹은 이들이 정말 많다고 나는 느낀다. 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되긴 싫었다. 그러나 ‘너를 챙겨’라는 메시지도 싫었다. 그러므로 나는 스스로 봉합한 정체성을 가지고 내 마음을 지켰다. 동양적인 감수성에서, 서양적 언어와 방식으로. 그랬더니 어느 정도 변화가 있었다.


내가 어떤 집단이나 무리에서 나올 때를 기억한다. 흔히 말해 손절이라는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이 나의 희생을 당연히 생각하건, 아니면 정말로 내 호의가 그들에겐 필요 없건 간에) 그 두려움을 기억한다. 그러나 비어있는 시간과 에너지로 또 다른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고, 나는 좀 더 내 호의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기뻐졌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신의 무리만 챙기는가. 그게 아니었다. 낯섦에 대해 느슨했으므로 그간 내 고민도 그 가치를 어느 정도 발할 수 있었다. 나의 환대에 귀를 기울이고, 서양의 방법으로 바라보니 나는 좀 더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것을 세간에서 ‘내 마음을 아끼는 방법’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 이 말이 잘 와닿지 않는다. ‘내 마음에 더 귀 기울인다’ 거나 ‘자아를 찾았다’라는 말로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이 말도 완벽히 나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저 나는 내 감수성을 가지고 이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그리고 유지할지 고민할 뿐이었다. 만약 서양문화나 철학, 이념들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나는 솔직히 동네에서 힘든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며, 답답해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며 살았을 것 같다.


아- 그러나 세상은 사실 꽤 변하지 않았나. 그렇게 살수 만은 없었다. 20년 전만 해도 옆 집에 가서 카레를 먹던 시대는 이제 사라졌다. 개인주의의 냉소와 집단주의의 배제감 속에서 나는 내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내 안의 사랑과 환대를 저버리는 건 내 정체성을 저버리는 일이기도 했다. 특히 무속적인 정체성을 말이다. 그래서 혼란과 통합과 적용을 겪었다. 사실 누군가에게 잘 대해주거나 무엇을 얻기 위함은 아니었다. 내가 살려고, 살려고 그랬다. 자유롭고 싶고, 좀 더 잘 꿈틀거리고 싶어서 그랬고.


나는 나의 입장에서 그러니까 정확히는 종교 중에서도 무속신앙적인 입장에서 이야기를 써내려 왔다. 분명 내가 포착하지 못한 유교적 환대를 실행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좋은 아빠가 되어, 상처를 주지 않고, 좋은 추억을 쌓아가며 가족애를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 역시 나는 유교적 환대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CEO가 되어 직원들을 잘 챙기고, 배려하는 방법들 역시 유교적 환대라고 생각한다.


읽는 내내, 너무 서양철학을 찬양하고 한국의 답답함만 이야기해 불쾌감이 드신 분도 많을 것 같다. 빈말로 “그렇게 미국이 좋으면 미국에 가세요”라고 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나도 안다. 하지만 집단주의의 시각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희망이 없으면 싸우지도 않는 것, 사랑이 없으면 싸우지도 않는 게 내가 발견한 집단주의의 순기능 중 하나다. 서로 상처만 되지 않으면 쿨하게 싸우고, 쿨하게 화해하고, 또 쿨하게 잘 지내는 것. 이것이 집단주의의 순기능 같다.


난 여전히 한국에 희망을 건다. 또 난 이 사람들과 살아가고 싶다. 여긴 나의 집단이다. 내가 사랑하는 집단이자,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이다. 여전히 난 엘리베이터의 열림버튼을 누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마음을 쓴다. 집단을 모으고 운영하는데 소질은 없지만, 철학 모임을 열고, 느슨하지만 오래가는 모임, 아무 말 대잔치를 연다. 또한 지금 남아있는 집단주의를 부정하고 싶지도 않고, 얽히고설킨 각자의 욕망과 이야기를 부정하고 싶지는 더더욱 않다. 사실 얼마나 많은 상처가 여기까지 서렸겠는가. 여수 순천에서 10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온 지도 근 80년 밖에 되지 않았다. 6.25 전쟁이 끝난 지도 75년밖에 되지 않았고. 분명 그 학살을 본 사람들의 마음속에 상처와 응어리, 두려움등은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 채 나의 할아버지로, 할머니로, 아빠로, 엄마로 전이되었을 것이다.


부디 나의 혼란과 혼합과 적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삶에 잘 적용되었으면 한다. 예시를 든 것처럼 여러분은 그런 팔자대로 타고났을지도 모른다. 다만 페미니즘부터 롤랑 바르트, 데리다, 들뢰즈, 푸코 등 현대 철학자들이 서구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적어놓았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여러분 속에 숨겨진 환대와 사랑이 아까우니, 세계화 시대에서 세상은 변하고 있으니, 어느 시인의 말대로,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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