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을 끝내고 사랑을 살아내는 방법 -2

by 시몬 베유

사실 개발을 배워 기획을 하고 싶어 오게 된 회사였고, 기획과 운영을 동시해 할 수 있다는 요청에 업무를 승인한 나였기에 QA라는 업무는 커리어가 꼬일 수 있었음을 인지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내 개인보다는 팀이나 회사 더 정확히는 타인들의 마음이 더 우선순위였으므로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 빠른 일정과 엔터테인먼트의 무한한 변수로 인해 TEST를 전담할 수 있는 사람의 부재는 기획팀을 넘어 IT팀과 회사 전체의 분노를 만들어내기 충분했는데, 그 마음이 나에게도 전달됐다.


다만 나에게 걸렸던 건 이전 ‘콜센터’의 경험이었다. 과연 내가 책임지고 열심히 몰입했을 때, 사람들의 답답함과 분노에 대해 파고들었을 때 과연 희생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나는 욕만 먹고 끝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IT팀뿐만 아니라 O님 역시 ‘내가 잘 설득해서 너를 꼬아먹겠어-‘가 아닌, 내가 내 일을 잘 해냈을 때 그 고마움을 아는 사람들이었으므로 나는 이 일을 승낙했다.


나는 업무를 진행하며 나로 인해 좀 더 편하게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표정들을 기억한다. 그들의 표정은 그럼에도 좀 더 편하고 좋은 표정으로 바뀐 것 같다. 물론 해당 업무를 처음 하는 나를 위해 신경 써주고 잘 알려준 사람들의 호의도 있었겠지만 업무에서 큰 부정적 피드백이 없었던 것을 보면 나로 인해 좀 더 편해진 것 같다. 여기선 나의 무속적인 속성이 더 크게 드러났던 것 같다. 커리어나 나 ‘개인’을 챙기는 서양문화(철학)적인 부분이 아니라 타인들의 답답함이나 짐을 덜어줬을 때의 후련함 등이 더 컸다. 물론 이를 잘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순환은 이뤄졌다.


내가 이 과정을 통과하며 배운 게 있다면 공리성이었다. 나 개인의 희생이 집단에도 도움이 되고, 또 어느 정도는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은 꽤 중요했다. 예를 들어 10명이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열림버튼을 내가 5초간 누르고 있으면, 총 50초 정도가 아껴지기 때문에 난 열림버튼을 누르고 있는 편인데, 이 상황이 공리성을 재는 내 상황과 비슷했다. 물론 업무의 맥락을 더해보자면 나의 커리어나 고마움, 지속성을 따져봐야 하는 게 맞았다.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르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커리어와 연봉등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욕망이나 지속성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 더 나아가 ‘열림버튼을 누르는 건 당연하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만약 내가 조직을 운영하고 리딩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전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


이사님이 나를 카페로 데려간 건 회사에 취직한 지 딱 1년이 되던 때였다.


“00님. 00님은 팀을 옮기게 됐고, 지금 카페를 나가기 전까지 2시간 안에 결정해야 해요.”


이사님의 요지는 이런 거였다. ‘현재 물류팀의 베테랑이 나가 문제가 조금씩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히어로처럼 여길 해결할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쭉 관찰해 본 결과, 희생하면서 인정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자 회사의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당신이다.’라는 것. 나도 당시 테스트를 하는 입장이자, 나름대로 오지랖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 문제를 알았다. 나에게 꽂힌 건 다름 아닌 ‘희생’이라는 키워드였다.


사실 인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속가능한 상황과 문제가 일어났을 때 내 목소리가 전달될 정도의 권한만 있으면 될 뿐, 인정을 받는 건 조금 논외였다. 물론 내가 한 일로 인정을 받고, 타인과 함께 결과물을 냈을 때 그 의미가 전달되는 건 기쁜 일이었지만 성과로 내가 설명되는 건 그리 달갑진 않았다. 또한 커리어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수 있었다. 개발 스택이 존재하고, 기획하는 능력이 있는데 갑자기 물류팀으로 간다는 건 이후 연봉측면에서나 커리어적 측면에서나 애매모호해질 수 있었다. 주변에서의 애정 어린 만류도 이해가 됐다.


다만 정말 필요하고, 서비스의 근간이 되는 물류를 처음부터 만들어간다는 그 창조정신에 나는 흥미가 돋았다. 나에겐 회사의 사람들을 위한 희생과 발전이 동시에 이뤄난다는 마음에 눈길이 갔다. 회사의 사람들이라는 집단주의, 정말 필요한 희생이라는 무당적인 속성, 내가 내 것을 효율적으로 만들어가고 개발할 수 있다는 서양문화(정확히는 나에게 미학의 영역이었다)가 세 가지가 맞았다.


물류팀으로 들어간 나에겐 부하직원 같은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 역시 집단문화의 약간의 반발심이 있으면서도 따르는 편에 속했는데, 들어가자마자 나는 그 친구의 장점, 경험, 욕망등을 읽어내려 애썼다. 한 살 어렸지만 몇 살이 어리건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스몰톡을 하면서도, 같이 밥을 먹고, 내가 했던 개발들을 알려주고, 개발하는 방식과 기획하는 방식, 문제를 발굴하는 방식등을 알려줬다. 어느샌가 그 친구도 마음이 열려, 나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반박하고, 자기 생각을 말하는데 이르렀다.


가장 좋은 건 퇴사를 하고 2-3개월이 지난 지금도 친구처럼 지낸다는 점이다. 일은 일이되 나는 친구를 얻은 느낌이었다. 물론 업무도 그 친구로 인해 재밌었고, 즐거웠고, 퍼포먼스도 났다. 실무를 잘 아는 그 친구는 나에게 실무에서 일어나는 한계와 반복업무, 주의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면, 나는 그걸 받아 자동화하고, 표로 만들고, 재무와 업무효율을 개선했다. 연 2-3억 정도의 절감과 업무효율을 80% 이상 증가 시킨 건 그 친구가 없었다면 꽤 오래 걸렸을 일 같다.


이 사건은 이런 식으로 나에게 정리된다. 집단주의와 서양의 묘한 문화가 만나, 그 친구는 나를 성과나 능력으로써 존중하고 신뢰했다. 나는 이 신뢰를 상명하복체계로 이용하지 않고, 그 친구의 의견을 듣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팀을 만들었다. 여기서 무속적인 속성은 그 친구가 업무를 하며 답답하거나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꺼내는 방식으로 이용됐다. 그 친구가 고맙건 고맙지 않건 나는 권한이 있었으므로 다른 사람이 와도 나름대로 문화나 팀을 만들어갈 수 있었고, 서로 돕고, 스스로 문제 발굴을 하는 지속가능성이 있는 팀이 됐다.


여기까지가 내 업무에서 적용점들이다. O님을 필두로, 팀에서 결과를 이루기까지 나는 업무의 사례를 들었다. 물론 이 사례는 나의 사례만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는 부임하자마자 경쟁적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문화를 바꾸고, 서로 나누고 챙기는 곳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혹자는 그의 아들이 중증 뇌성마비를 가지고 태어나, 약자에 대한 감수성으로 문화를 바꾼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을 시도하는데, 이렇게 보면 감수성적인, 무당적인 접근은 나의 사례만은 아닌 듯 보인다. (이소영저자의 “홀로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를 보면 더 자세히 나와 있으니 추천드린다.)


혹자는 ‘너무 업무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 것은 아닌가-‘하는 반박을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번엔 회사의 문화를 바꾼 케이스는 어떨까? 아침 8시 반, 강남역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색채 없는 표정은 강남역에만 있던 건 아니었다. 2023년부터 출근했던 나의 직장에도 역시 그 표정은 여전히 존재했다. 꽤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무속에는 사실 답답함과 해방감을 푸는 방법 중 하나인 ‘흥’이 있었다. 즐거움이 있었고.


처음 IT팀에 들어왔을 때 내게 보인 것은 색깔 없는 IT팀의 표정이었다. 특히 서로 미묘하게 소통이 되지 않아 이슈들이 쌓이기도 했는데, 이는 품질과 테스트를 관리하는 내 눈에는 더 잘 들어오는 모습 중 하나였다. 어떻게 하면 더 직장을 재밌게 다니게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동기부여를 만들 수 있는가-이게 내 질문이었다. 하지만 개발자란 어떤 사람들인가. 딱딱한 사람들이었다.


서로 무엇을 먹을지 점심시간마다 치열하게 논의하는 기획팀과는 다르게, 개발자들은 가던 곳을 가고, 식사 때도 대화를 하지 않고,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게 그들의 모습이었다. 내가 우연찮게 개발자들과 밥을 먹었을 때 했던 대화는 딱 세 마디였는데 “어디 갈까요?” “거기, 가시죠” “다 드셨으면 일어날까요?” 였으므로 그들의 시크함과 딱딱함을 깨는 건 거의 불가능한 영역에 가까웠다. 하지만 인스타를 넘기다 나에게 뜬 사진이 있었으니 바로 “남고에서 32년간 바뀌지 않는 것”이라는 제목의 사진이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자신의 어머니가 30년째 남고에 근무를 하는데, 많은 게 변했지만 슬리퍼 축구만은 변하지 않는다며- 이들의 즐거움은 여전히 똑같다며 나눈 사진이었다. 나는 거기서 아이디어를 발견했고, 바로 개발팀의 팀장님에게 말을 걸었다. “축구… 좋아하세요?” 하고. 정말 다행히도 그 역시 이전에 있던 기업에서 축구를 열심히 했던 사원이었다.


사람이 모일까 두려워했던 나와 다르게, 일단 구장을 잡아보라는 그의 말에 꼬드겨 나는 사내 근처 작은 구장을 예약했다. 과연 밥 먹을 때 3마디만 하던 사람들이 축구에 반응할까. 좋아할까. 걱정하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냈는데, 신기하게도 3마디만 하던 그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 시간에 된다고. 일단 해보자고. 그렇게 처음 8명 정도가 모여 4 vs4로 축구를 하게 됐다.


신기했던 점은 축구를 하고 나자 소통 이슈가 줄었다는 점이다. 몸이 가까워지면 대화도 하게 된다-가 내 지론 중 하나였는데, 역시 이는 확실했다. 어렸을 적, 교회 수련회에 가서 물놀이를 한 목사님의 이야기가 안 한 목사님의 이야기보다 더 잘 전달됐던 것처럼, 이사님 팀장님 할 것 없이 즐겨 몸의 긴장이 풀어진 이들은 소통이 더 한 껏 편해졌다. 물론 표정도 더 즐거워졌고.


우스갯소리로 나에게 “축구하려고 회사 다닌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실제로 축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내가 나가기 전까지 대부분은 회사를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회사에 충성심이 있는 사람들이 축구에 참여했던 탓도 있었겠지만 IT팀의 전반적 분위기는 축구로 인해 변한 것이 사실이었다. 서로 좀 더 말을 걸고 편해진 모습이 주변에도 ‘기세’로써, 문화로써 전해졌다. 이 역시 집단과 무속적인 속성과 서양문화의 조화가 이뤄진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좀 더 무속적인 속성과 서양문화적인 측면이 강했다. 사람들이 가진 답답함을 즐거움, 해방, 홍등으로 접근했고, 해당 기획을 꾸렸을 때 결과나 이득등은 서양철학적인 방식(소위 계산적인 방식이라고 하는)으로 접근했다. 또한 나는 사람들의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면밀히 보기도 했는데, 경기를 잡고 예약하고 사람을 매 번 모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이들이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고마움이 없었다면 이는 지속적인 측면, 그리고 그들의 즐거움을 챙긴다는 측면에서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집단주의적인 측면에선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었다. 같은 축구팀에 묶였다는 느낌은 오히려 흥을 더 돋구어 집단주의의 장점을 살려냈고, 신입이나 적응하기 어려운 친구들도 게스트로 와서 즐긴 부분 역시 집단주의의 장점을 활용한 케이스 같았다.


이에 더해 문화를 바꾼 두 가지 케이스를 좀 더 나눠보고자 한다. 두 가지 케이스는 한강 피크닉과 런치 문화의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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