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을 끝내고 사랑을 살아내는 방법 -1

by 시몬 베유

지금까지 미국이니 서양이니 이야기를 했는데, 갑자기 한국에서의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한국에서 써먹을 이야기를 가져온 것이기도 하고, 또 미국에서만 적용했다면 “미국이니까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서 더더욱 한국에서의 적용점이나 실행 예시들이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만약 미국의 예시를 기대했다면 미안하다. 미국의 예시들은 다른 분들이 더 친절하고도 좋게 알려주시리라 생각한다.


나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서서히 끝나갔던 건 약 3년 전이였다. “나 자신이 잘못돼서 내가 이상해서 적응을 못하는 게 아니라, 집단주의라는 맥락이 한국엔 정말 강하구나”라는 객관화가 될 무렵, 나는 조금씩 모임들에 신청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책모임이나 작고 큰 모임들, 사람들이 모이는 곳들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정말 미안하게도 내가 가본 책모임이나 취향 모임에서 조차 난 환대나 유연함을 경험하기 어려웠다. 아직 집단주의가 익숙했던 건지, 내 기준이 높았던 건지 ‘다른 생각을 한다’라는 모임조차도 은근히 서로의 능력이나 말 주변, 능력치나 사회성들을 판단하기 바빴고, 같은 편인지, 이득을 챙길 수 있는지 세심히 작동하기 바빴던 것 같다. 심지어는 “나의 이야기는 옳으나 너의 이야기는 틀렸어” 라며 나를 이겨먹으려고 하는 태도부터, 분위기를 장악하려는 사람까지… 정말 쉽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고.


오히려 내가 말하는 유연함과 환대는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파티 게스트하우스 말고, 정말 잔잔하게 하는)나 간혹 만나는 독립서점 사장님 그리고 50-60대 여행객분들에게 있었는데, 이를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고도 신기했다. 다른 생각을 공유한다는 곳에서, 낯섦에 대한 감각은 배제 됐고 오히려 스몰톡을 하고, 영어로 말하자면 “how are you”라고 말할 수 있는 유연함이나 느슨함은 다른 곳에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하지만 의외인 곳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내가 다녔던 직장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4개월 전, 나는 얼마 전 퇴사한 회사의 면접을 봤다. 그리고 면접 때 알았어야 했다. 다리를 꼬고 면접을 보는 신입의 패기를 보고, “얘는 예의가 없네” 가 아니라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면 이렇게 건방진지 궁금하다”라며 뽑았던 내 첫 번째 사수의 독특함을 말이다. 나중에 알았던 것이지만 나는 면접 때 나도 모르게 다리를 꼬았으나 O님은 남에게 자신의 지식과 생각을 잘 전달하려는 노력과 꼬아있는 다리의 반항심을 보고 나를 뽑았다고 했다.


들어오자마자 2시간 만에 인수인계를 끝내고 업무로 바로 투입하던 첫날을 기억한다. 1인분을 하면 살아남을 수 없던 스타트업은 정말 매 순간 치열했고, 쉴 수 있는 시간은 없었고,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특성상, 이슈가 어디에서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도메인에 앱과 웹사이트가 만들어진지 근 2-3개월 밖에 되지 않은 불안정성은 나에게도 도전 의식과 불안함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그만큼 사수의 분노와 팀의 빠름은 정말 중요했고, 빗발쳤다. 그럼에도 예민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O 씨의 존중감이었다.


나의 사수였던 O 씨는 나와 정치성향이 많이 달랐던 사람이다. 성적 감수성이 달라 내가 가끔 “아 진짜… 나한텐 괜찮은데 고소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지…” 같은 걱정할만한 멘트가 가끔 튀어나오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와 대화하고 존중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사수임에도 나를 존중하는 태도였다. 팀의 리더였고, 나와 근 10년 차이가 났고, 책임감도 꽤 강한 상황에서 ‘자신만 설득한다면 어떤 의견을 내도 좋다’라는 의견을 실제로 가지고 있었던 그런 사람. 추측건대 영화광이었던 그 역시 다양한 이야기와 욕망을 통과하고, 이전 회사도 급작스레 큰 스타트업이라 다양성의 힘을 탑재한 듯싶었다.


물론 애초에 쪼리를 신고 오고 염색을 투톤으로 하고, 겨울에 반바지를 입고와도 ‘회사에 반바지가 뭐냐’ 보단 ‘안 추우세요?’가 먼저 나오던 회사기도 했지만 O 씨는 정치 이야기가 나와도 말만 되면 궁금증으로 직접 찾아보는 한 편, 팀 내 회의를 할 때도 말만 되면 시도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내가 “요즘 유럽에서는 공공투자를 AI로 해서, 그 남은 돈을 어떻게 잘 쓸지 고민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데요”라고 하면 자신이 그런 생각은 못해봤다며 GPT에 물어보거나 궁금증을 해결하는 등의 사람이었다. 여기서 가장 큰 충돌이 있었으니, 그건 다름 아닌 책임에 대한 문제였다.


나는 이슈를 빨리 처리하자는 입장을 가졌고, O님은 이슈를 빨리 처리하기보다 네가 모두 책임질 수 있냐는 입장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이슈가 나와 골든 타임을 놓치면 문제가 생긴다는 내 입장은, 부하를 지키고 자신이 책임지는 대신 자기가 일정을 관리하겠다는 O님의 가치관과 맞붙었다. 집단주의 문화에 ‘상사와 싸우려들면 페널티가 생긴다’는 마음에 ‘페널티고 뭐고, 부딪히자’는 큰 맘을 먹고 그와 맞붙게 된다. 언성이 높아지고,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둘을 쳐다볼 때쯤, 점심시간이 당도해 나는 밥을 먹으러 갔고 식사를 다 맞히고 돌아온 얼 마뒤, O님은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부터 나한테 반박하고 싶은 거, 서운한 거, 답답한 거 다 말하세요. 시간 드릴 테니까,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천천히 말하세요”


O님은 그럴 생각은 없겠지만, 나는 잘릴 마음으로 모든 것을 말했다. “이런 거 이런 거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거 이슈 터지면 어떻게 하냐. 이건 내가 잘못한 거 맞다. 이런 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재고, 생각하고, 정리하여 뱉는다기 보다 확실하게 전달했다. 모두 다 말하고 난 뒤, 이전 한국에 살았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상대가 인식할 나의 모습은 ‘개긴다’였다. 하지만 O님의 표정은 달랐다. 흥미와 생각과 오묘한 감정 어딘가였다.


“첫 번째 말한 건 이렇게 처리합시다. 두 번째 말한 건 이렇게 해봅시다. 세 번째 말한 건 이런 방식이 있겠네요. 괜찮죠?” 하고는 자리를 떠나는 O님의 표정에는 불쾌함이나 무례보다는 후련함이 앞서보였다. 그러고 평소처럼 이야기하고 장난을 거는 나에게는 ‘아, 이런 케이스도 있구나’와 함께 ‘정작 내가 힘들었던 건, 타인의 정치성향이나 다른 부분이 아니라 타인의 태도였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태도에서 나오는 지식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반대로 팀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문제는 해결만 된다-라는 생각 속에, 나는 O님이 장기 휴가에 가있는 동안 반복되는 업무를 자동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개발해 냈다. 직접 소프트웨어를 찾아 코드를 짜는 한편, 직접 이를 적용해 업무의 효율을 80%를 줄였다. 여기서 나는 굳이 말하자면 서양문화의 구조를 파악하는 방법과 무속적인 감각인 ‘어떤 일이 모두를 편하게 하고, 즐겁게 할까-‘를 섞었는데, 그게 바로 반복되고 지루한 업무를 파악해 자동화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혼자 이를 개발해 그가 다시 한국에 왔을 때 ‘짜잔’하고 가져다 놓았다.


만약 그가 집단문화에만 꽂혀있고,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이었다면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냐”라며 이를 반항으로 여기는 한 편, 나의 개발과 희생을 당연히 취급해도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팀원들에게 이 개발이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며 진심으로 칭찬하는 한편, 오히려 내가 개발한 것을 토대 삼아 그는 자신의 업무까지 처리하는 응용력을 보였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서로에게 배우는 방식이 빛을 낸 결과였다.


“언제나 궁금한 거, 반박하고 싶은 거 다 말해라”라고 하던 그, 물론 가끔 “물어본 거 왜 또 물어보냐”던가, “왜 말하지 않은 거 하냐”라며 나에게 꾸중을 주긴 했지만 그건 인간으로선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열린 태도, 그럼에도 질문하고 자기가 부족한 걸 인지하는 태도는 혼자 팀을 운영한다기보다는, 함께 무언갈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고, 거기서 ‘다름에서 배운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배운 것 같다. 특히 내가 만나본 몇 안 되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관점을 가져가거나 문제를 푸는 창의력들은 그 다름에서 배우기도 했다. 정말 신기한 건 이런 사람과도 감정 교류가 됐다는 사실이다. 추측건대, 그의 열린 포용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업무를 하면서 5개월쯤 되었을까. 어떤 이슈로 인해 조용히 나를 회의실로 부른 그는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얼굴과 태도로 나를 앉혔다. 190cm의 장신이자 80-90kg 그리고 목소리라면 회사에서 제일 큰 그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나에게도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는데, 사실 여기에는 비하인드가 있다.


회사에 들어왔을 때부터 나는 그를 사수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보기도 했는데, 강한 척하는 모습에 ‘실수하면 안 된다’라는 자아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는 그 스트레스를 밖으로 표출하는 성향이 더 강해보이 기도 했지만 자기를 닦달하고, 잘못되면 어떻게 할지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모습은 나에게도, 그에게도 감정적으로 꽤 큰 손해였다. 나는 분노에 취약하고, 그도 분노를 내는 게 좋진 않았을 테니까.


하여 나는 감정적인 부분을 항상 조심스레 챙기는 부분이 있었다. 분노를 하면 괜찮냐고 묻고 DM을 보낸다던가, 안 좋은 일이 있냐고 묻는 등의 나름대로의 섬세함을 보였다. 물론 일을 잘하는 것도 그에게는 위로라면 위로였다. 그가 뽑고, 또 그가 결과를 내야 하는 팀의, 책임을 져야 하는 팀의 업무의 성과를 내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다만 이건 ‘나의 성과’라던가 ‘나의 잘됨’이라기보단 어떤 미세한 해방을 목적으로 한 행동에 가까웠다. 마음의 편안함과 유순함 그리고 그 결과가 나타났다. 수줍음이었다. 어떤 큰 사건이 터지고, 나의 고마움을 인지한 그는 나를 앉혀놓고서 이렇게 말했다.


“저… 원래 이런 이야기 안 하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항상 신입 뽑는 거 안 좋게만 생각하고, 최대한 안 뽑자는 주의였는데, 이제 뽑아보려고요”


난 여기서 그의 책임감과 무게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자신의 세계를 그려왔는지 그리고 나로 인해 그 세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았다. 약간의 뿌듯함과 안도감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마음속에 일어난 유연함을 봤다. 사실 누군가를 챙겨주고 바꿔준 적은 정말 많았는데, 이렇게 사람이 변화하는 모습과 고마움을 표현한 건 거의 처음이라 나도 뚝딱거리고 만 것이 사실이었다.


“아… 예…. 저도 너무 고맙네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뽀송한 마음에 “아~~ 아닙니다. 이렇게 여유로워지신 게 오히려 기뻐요. 저는 언제나 O님이 좀 더 여유롭고 편한 삶을 살기를 원했거든요. 그 마음이 전달되어 기쁩니다.” 정도의 이야기를 정확히 꽂아 넣었어야 했는데-싶기도 하지만, 부끄러운 마음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 팀은 기회가 되자 신입을 채용했고, 일을 잘하는 신입이 들어왔고, 가끔 O님은 “00님 때문에 신입 뽑았지-“하면서 희미한 칭찬을 날렸다. 내가 거기서 본건 나에 대한 인정의 말보다 그의 옅은 여유와 미소였다.


이 사례는 서양문화와 집단주의와 무속의 실제 사례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집단주의에만 갇혀있었다면 O님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행동했을 것이고, O님과의 대화나 신뢰등은 쌓이지 않았을 것 같다. 반대로 O님이 집단주의에만 갇혀있었다면 나의 개발이나 나의 의견등을 ‘반발’로 여긴 채 배우지 못하고, 나 역시 시키는 업무만 하며 팀의 효율은 지극히 내려갔을 것 같다. 서양문화 속에서 형성된 감정적 신뢰는 내가 그의 답답함을 해결하는 기반을 마련해 줬고, 한 팀이라는 소속감은 서로에게 도움을 줬다. 이 마음과 방식이 잘 전달 됐던 이유일까. 당시 QA 그러니까 TEST팀을 맡아달라고 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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