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을 지키며 사랑을 건져내는 법 - 3

by 시몬 베유

대화는 ‘너의 생각은 어때?’라며 혹은 ‘너의 감정은 어때?’라며 계속 이어졌다. 자신은 MBTI가 F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T라고 말한다며 가볍게 어려움을 토로했고, “‘내 감정은-‘이라고 자기 이야기를 말하거나 , 자기 의견을 말하면 그것이 감정적이던 논리적이던 T라고 하는 것 같다” 라며 맞받아 쳤다. 내가 볼 때 그 친구는 자신의 감정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말했고, 느끼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무튼간 대화가 이어지는 내내 내가 받았던 환대는 한국과는 다른 방식의 환대의 방식이었다. 내가 느낀 한국에서의 환대의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상대의 이야기를 “맞다. 맞아”로 호응해 주며, 최대한 진심으로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같은 편을 들어주는 일. 비록 자신의 의견이 있지만 꺾고, 그 사람의 편에 서주어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일. 그러나 유럽인 친구의 환대의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내 이야기를 중간에 끊지 않고 최대한 들어주는 일. 맥락을 놓치지 않으려 끝까지 이야기를 따라와 주는 일. 이에 더해 (내가 감동을 받은 부분은) 내 이야기가 끝나고 2-3초간 나를 응시하며 더 나올 이야기가 없는지 응시해 주는 일. 이것이 유럽 친구가 보여준 환대의 방식이었다.


물론 객관적으로 무엇이 더 좋다-라고 이야기하기란 어려운 부분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후자의 환대가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자신의 진심 어린 의견을 공격성 없이 잘 말해주는 일 그리고 자기가 열심히 고민한 이야기를 나에게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일들이 나에겐 환대의 영역이었다. 물론 그 친구의 성격 자체가 좋아 그런 것도 있겠고, 모든 유럽인을 이렇게 판단하긴 어려운 일이지만 그 친구는 자신이 썼던 논문을 보여주는 한 편, 자신이 한국에 대해 생각하는 관점이나 생각들을 잘 말해줬다. 이 친구도 열심히 고민하고 배웠을 텐데,

이를 설명해 주는 마음에 나도 내가 열심히 고민한 바를 나눴다.


여기서 ‘너도 좋아서 논문을 보여줬잖아!’라고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그 사람의 소프트웨어를 존중하고, 노력을 존중하고, 나 역시도 존중받는 이 대화가 좋았다. ‘좋아서 했기 때문’에 한쪽이 무작정 희생당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사람의 노력과 가치를 존중해 주고, 학업적인 성취를 응원하고 기뻐해주는 일이 나에겐 사회가 발전하고 희생을 당연시하지 않는 일 같았다. 반대로 내 환대가 상대방과의 대화로 이어진 적도 있었다. 이건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있었던 일이다.


왼쪽 3열의 좌석 중 가운데 좌석을 예매한 일은 나에게 별로 좋지 않은 일이었다. 차라리 머리를 기대고 맨 끝에서 자거나 아니면 편하게 통로 쪽에서 있는 일이 나에게는 더 편했는데, 체크인이 늦었던 나는 가운데 자리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그로 인해 나는 35F열을 고르게 됐다. 하지만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혹시나 옆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앉을지도 모르니 괜찮다며 예약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난 뉴욕에서 탄 비행기에서 내려, 밴쿠버 공항에서 환승을 시작했고, 1시간 20분의 촉박한 시간을 쉽게 맞춰 비행기를 안전하게 탑승했고, 내 안에 남아있는 빨리빨리의 강박에 따라 꽤 빠르게 탑승했다. 나의 짐을 머리 위 선반에 올리고 에코백을 발아래 넣으려는 순간, 내 옆자리에 자신의 가방을 놓고는 캐리어를 올리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캐리어는 아무리 봐도 컸고, 내가 가방을 쳐다보자, 여성분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 제가 안쪽 자리라서요.”


나는 웃는 얼굴로 가방을 안쪽에 넣어주고는 무례가 되지 않게 “캐리어 넣는 거 도와드릴까요?” 하고 질문했다. 여성분은 나에게 “감사하다”며 대답해 주셨고, 나는 캐리어를 위에 무리 없이 넣어줬다. 그때 여성분 뒤에서 한 남성분이 감사하다며 인사를 전했다. 자기가 이 사람의 남편이 된다면서 말이다. 또한 혹시 미안하지만 중간 자리와 바깥자리를 바꿔줄 수 있냐고 정중하게 요청하기도 했다. 듣고 보니 예매를 애매하게 해서 가운데 자리를 비워 놓고 양쪽을 예매했다고 했다. 자리가 바깥으로 옮겨진다는 편안함 보단 태도와 고마움, 정중함에 있어서 나는 흔쾌히 양보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됐다.


사실 내가 그 여성분에게 호의를 베풀 때 기대한 건 적당한 감사 정도였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한국인들에게 호의를 베풀 때 적당한 냉소를 깔고 베풀곤 했는데, 그 이유는 ‘나는 너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좋아서 한다’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만큼은 냉소가 깔린 표정이 해제됐는데, 미국 여행 시 환대를 주고받을 때 오는 그 행복과 즐거움, 공감에 익숙해지고 어느 정도 들뜬 이유였다. 여성분의 생각은 깊은 의미에서 나와 통하는 것이 있었다. 여성분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좀 놀랐다. 한국 분이 이렇게 행동하는 걸 별로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놀랐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 내가 환대하지 않았다면 이후 이뤄진 긴 대화는 불가능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어떤 모습에서 ‘좀 다르다’라는 결을 감지했던 건지, 나는 그분이 어렸을 적 캐나다로 가족과 함께 이민을 가게 됐고, 30년 정도 살았다는 이야기와 자기 남편과 결혼한 이야기, 캐나다에서 살면서 느낀 것들을 들었다. 나 역시 뉴욕과 보스턴에서 경험했던 부분들을 나누고, 내가 느낀 집단주의의 차이 등이 캐나다에서도 이뤄지는지, 공감 가는지를 물었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됐고, 그분들(더 정확히는 남편 분과 더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역시 새로운 시각이나 영감을 얻은 듯 보였다. 아니, 무엇을 더 얻고 생각했다기보다 정확히는 비행 초반 3시간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반대로 내가 한국에서 느낀 건 호의에 대한 아쉬움 심지어는 호의에 대한 비난이었다. 남의 편에 서고, “그래도 이 사람 좀 힘드니까 봐주자-“라는 말이나, 나의 시간을 소모해 남을 챙겨도 혼자만 착한 척한다는 이야기나, 너의 시간을 챙기고 너를 챙기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물론 내가 나를 챙기지 못하고, 나의 할 일을 하지 못한다던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의미에서의 ‘너의 시간을 챙겨’라는 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너는 다른 사람을 챙겨? 그러다 망해’라는 의미의 발언인 경우도 있었다.


집단주의와 무속 사이의, 사람에 대한 감수성에 대한 부분에서의 ‘내가 이상한가-‘ 포인트는 여기 존재했었다. 사람의 고통 어린 표정이 나를 응시할 때 나는 그 표정이 항상 맺혔다. 무엇보다 나는 나를 위해 도와주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럴 때 집단의 룰이나 분위기를 어기면 특히 더 나에게 비난의 화살이 향하는 경우가 그랬다.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을 베풀려고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야기가 한국을 비하하거나 비난하는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분은 그분의 생각을 말했고, 비하나 비난의 혹은 더 나아가 내 표현대로 하자면 ‘한국은 틀렸어’ 라든가, ‘한국은 나랑 다른 편이니 싸우자-‘고 말한 것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의 환대의 아쉬움, 느슨한 연결, 도움등이 내가 느낀 포인트였다. 신기하게도 나는 이를 한국에서 살면서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는데, 뉴욕과 보스턴에선 이게 기본이니 나에게는 정체성의 통합이라면 통합이 일어나는 게 사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이상하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 타인에게 선의를 베풀고, 그것이 당연해지지 않는 것. 상대방의 의견과 나눔이 ‘네가 좋아서 한 거잖아-‘가 아니라 고마움으로 받아들여지고 또 고마움으로 전달되는 것. 희생이 당연해지지 않는 것. 심지어 누군가 고된 일을 했을 때 잘했다고 칭찬해 주는 것. 이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의 호의나 환대를 이용하고 호구처럼 사용하는 것. 호의가 권리가 되는 것. 희생이 당연해지는 것이 어쩌면 이상한 일이었다. 반대로 내가 먼저 말을 걸고, 에너지를 쓰고, 길을 알려주고, 심지어 환대를 받으면 고마운 얼굴로 감사를 전하고, 그렇게 친구가 되는 일이 뉴욕과 보스턴에선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감사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인 친구가 짚어줬던 “미국에서 살았던 나와 F친구는 서빙해 주시는 분에게 계속 감사하다고 하는 게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너는 계속하는 게 신기해”라는 그 포인트도 나에겐 ‘내가 한국인으로 이상한가?’라는 생각이 들게 했는데, 이제 그 의문도 풀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람으로 봤기 때문에 감사했고, 어쩌면 잘 서빙해 준 것에 대한, 굳이 말하자면 내 반응으로 주는 팁이었고, 고마움이었다.


여기서 정말 신기했던 건 나는 내 정체성을 통합하는 와중에 다른 뉴욕을 온 한국인들은 오히려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는 점이다. 내가 뉴욕에서 만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눈치를 안 봐도 된다-‘라는 점에 대해 동의하는 듯했다. 특히 예민하거나 옷차림에 신경 쓴 분들은 이를 더 많이 느꼈는데, 편의점에 나가도 옷차림을 신경 써야 할 정도로 남들 눈치를 보는 곳이라는 사실을 동의했다. 특히 이건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 무속적인 감수성 혹은 타인의 신체나 뉘앙스를 더 신경 쓰는 사람들이 더 깊이 느낀 부분인 것 같았다. 상대의 반응을 잘 살피는 사람일수록 (어쩌면 내 안에도 있는) 상대방의 상태라던가, 이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될 사람인지, 나랑 비슷한 사람인지 살피는 그 필터나 흘김에 더 예민한 것 같았다.


물론 나나 내 의견을 공감해 준 사람이 예민한 측에 속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한국행 비행기를 탈 때부터 그 묘한 습관에 대해 눈치채고 있기도 했는데,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지금 생각하는 ‘집단’에 맞는 스타일을 하는지, 너무 튀지는 않는지, 튀면 내가 먼저 움츠러들어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그 눈짓이 나에겐 미세하게 포착됐었다. 나는 그 순간부터 ‘아 이미 한국에 왔구나-‘싶었는데, 이것이 익숙했던 한국인들이 미국에선 그 눈짓을 받지 않자 긴장이 꽤 풀리며 ‘눈짓 없음’ 혹은 ‘판단하지 않음’을 느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역설적이게도 나와 다른 방향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안다. 한국도 천천히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이 변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국 사회라고 해서 따스함이나 사랑이 없는 건 아니다. 속속들이 만들어지는 대화모임이나 취향 모임 등을 보면 조금씩 다양성에 대한 부분이 깨지는 것만 같다. 어느 쪽에선 이름과 나이, 직업을 묻지 않는 모임이 만들어지는 한 편, 어느 쪽에서는 다른 생각을 나누는 모임이 한창이다. 하지만 그 다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오는 조심성, 갑분싸 등 ‘우리는 한 공간에 있다’라는 그러므로 ‘하나의 목적을 향해 가야 한다’라는 그 묘한 느낌이 잊히지 않을 때가 많다.


생각해 보면 나를 괴롭혔던 광장공포증도 여기서 온 것 같다. 한 공간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나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한 편, 내가 “나는 생각이 다르다”라고 말했을 때 내 편에 서서 나를 대변해 줄 사람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난 공황을 앓았다. 속해있던 집단이나 공동체 혹은 친구 무리를 옮겨갔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는데, 내가 항상 집단을 옮겼을 때 나를 존중하지 못하고 언젠가 이들이 나를 비난할 거란 싸한 느낌을 받았다. 나도 확신은 없었기에 처음엔 집단과 대화를 시도하고, 나의 이야기를 꺼냈지만 대화를 해보면 달리 방도가 없었다. 내가 생각한 그들의 답변의 공통점은 이와 같다. “같이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어. 왜 너만 불편해해.” 라든가 “그렇다고 너 의견으로 모두 바꿀 수는 없잖아-“등의 의견이 있었다. 여기서 난 차라리 이런 답변이 더 편했던 것 같다. “그래. 우리랑 결이 안 맞으면 어쩔 수 없지. 너의 의견을 존중해.”라는 진심말이다. 반면에 그들은 언제나 자신이 정해놓은 ‘집단’의 모습대로 희생할 누군가를 원하는 것 같았다.


이런 시간들이 쌓이자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사회 부적응자인 줄 알았다. 약 2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정체성의 혼란은 이렇게 집단주의와 서양철학의 방식으로도 대비가 됐다. 하지만 미국 혹은 미국인과 대화할 때는 조금 분위기가 달랐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에서 오는 존중의 느낌이 오고 갔다. 너의 대화의 포인트는 여기는구나-라고 하는 인정의 느낌을 받았다. 굳이 내가 ‘너의 생각은 뭐야?’라고 묻지 않아도 그들은 되려 자신의 이야기를 잘 대답했다.


나만의 착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다른 근거가 있다. 내가 만났던, 특히 나와 깊은 이야기를 했던 사람들은 추측건대 나와 정치성향이 맞지는 않았다. 그들은 나와 다르더라도 친구가 될 수 있었고, 무리가 될 수 있었고, 대화할 수 있었다. 애초에 우리는 각각의 맥락과 삶에서 살고, 다른 교육을 받고, 다른 맥락 속에서 살다가 모인 사람들이기에 굳이 정치성향이 다르다고 해도 열불을 올리지 않아도 됐다. 물론 어느 정도의 결이나 맥락은 맞아야겠지만 미국인 친구와도 유럽 친구와도 나는 대화할 때 정치성향이 달랐다는 것을 눈치챘다. 아마 그들도 눈치챘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홈파티에 나를 부르지 않는다거나 자신의 말을 숨기진 않았다. 나도 그들의 입장에서 들었을 때 배우는 것이 많았고.


나는 이상하지 않았고 틀리지 않았다.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묻는 건 맞는 행위였다. 비록 한국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질문은 ‘너와 내가 얼마나 다른 편인지 확인하는’ 작업으로 통용되어, 조심스러운 사람도 있고 나 역시도 질문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타인을 좀 더 잘 대해주기 위해, 타인을 좀 더 잘 배려해 주기 위해, 타인과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무엇보다 타인을 모르니까 질문하는 나의 태도는 옳은 태도였다.


또 광장공포나 공황을 앓았던 것도 나의 생존 방식 중 하나였다. 그건 잘못된 게 아니었다. 언제 편을 가르고, 언제 공격할지 모르고, 언제 상대를 훑고 “쟤는 대들어” 혹은 “재는 왜 눈치 없이 자기 이야기를 해?”라는 말을 뱉을지 모르니, 집단을 떠나고, 떠날 수 없는 집단이면 공황을 앓았던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집단을 이해하기 위해, 집단을 떠나지 않고 공황을 앓아가며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는 태도는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야 옳았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상대가 내편인지 아닌지 확인해 본다. 어휘, 어투, 단어뿐만 아니라 옷차림새, 억양, 뉘앙스, 걸음걸이, 머리까지도 말이다. 물론 해외라고 안 그럴까. 다양성을 존중하는 곳이라고 해서 안 그럴까. 하지만 난 맥락이 좀 다른 것 같다고 느낀다. 그들은 ‘같은 편’이 아니라 ‘친구’로 느끼고, ‘동일한 집단’이 아니라 ‘같은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싼 가격이지만 유행이라면 모두 구매하고, 명품에 계급도를 나누고, 어떻게든 상품을 구매해 그 계급에 끼려는 게 아닐까? ‘같은 편’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사실 사투리의 영역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 역시 많이 바뀌었지만 자신의 사투리를 고치려고 노력하고 “티 안 난다-“라는 것이 자부심이 되는 모습들을 종종 보곤 하는데, 이 역시 ‘같은 편’이 아니면 간접적으로 소외당하거나 배제당하는 모습을 많이 봐와서 내면에 쌓인 상처가 작동하는 결과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비록 많이 개인을 존중하지만 여전히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사투리를 고치려 노력하고, 사투리를 고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 느낌적인 느낌. 철학자 푸코는 ‘권력은 신체 규율을 통해 통제하고 권력을 유지한다.’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여전히 표준어라는 규율을 통해 이뤄지는 것 같다. 인도인들이 딱히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영어를 쓰거나, 독일이나 프랑스 사람들이 자신의 억양이 남아 있음에도 그냥 영어를 쓰는 걸 본다면 말이다.


물론 이는 빠른 소통과 빠른 처리를 가져온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가정에서 외식할 식당을 골라 아이들에게 바로 전달하면 아이들은 그대로 따르는 상황은 결정까지 걸리는 시간은 줄어들고, 아까운 주말 시간을 아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집단주의는 분명 장점이 있어서 살아남았겠고, 설득력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어져왔을지도 모른다. 돈도 돈이지만, 유교의 집단주의와 개발도상국의 독재 모델을 정석대로 밟아온 우리나라는 집단의 대표가 무언가를 결정하고, 밑의 사람들이 그 결정을 따르는 방식이 익숙해졌다고 난 생각한다. 여기에 특유의 성실성이 더해져 빠른 경제성장과 많은 인프라가 창설되었다. 다른 개발도상국의 결과와는 약간 다르게 말이다.


또한 집단주의는 대표를 모두 따르는 입장이기 때문에 대표가 좋은 결정이나 결과를 가져올 때 공동체는 큰 효과를 입기도 한다. 만약 아빠(대표)의 결정으로, 솔선수범하여 “이제부터 나는 중대사를 결정할 때 너희들의 생각을 물을 거야-“라고 한다면 집안의 문화가 전반적으로 바뀌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주의에서 힘은 (문화와 질서, 심지어는 패션, 취향까지도) 대표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결정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만약 이 대표가 좋은 결정을 한다면 그리고 좋은 태도를 가진다면 멀리는 국가까지도 뻗을 수도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믿음이. 내 안에도) 또 중간 검토가 없기 때문에 빨리빨리 처리되는 공공기관의 해결능력, 상황을 돌파하는 능력엔 영향을 끼쳤으리라-. 내가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다른 곳에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과 효율이라는 두 가지 요인 속에서 우린 빠르게 업무를 쳐낸다.


하지만 이런 가정을 겪으며 우리의 취향과 자아는 얼마나 자라났는가.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은 어디로 갔는가. 그리고 우린 성인이 되어 뒤늦게 취향과 즐거움을 찾고 있지 않는가. 혹은 그 조차 없어 쇼츠나 유튜브 등을 보고 있지 않는가. 빠른 개발 속에서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남녀노소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일 것 같다. 경제성장률은 이전과 비슷하기란 어렵고, 빠른 결정을 내리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제야 터져 나오거나 아니면 내부에서 곪아 터져 죽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한 정체성 혼란 속에서도 그럼에도 내 혼란을 함부로 통합하지 않으며 지켜낸 존중은 나에게 취향과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 작가, 책, 이럴 땐 이런 책을 읽어야 하며, 나는 이런 인테리어의 카페를 좋아하며, 이런 시간을 좋아하며, 곧 18도의 선선한 바람이 부는 40% 정도의 습도의 가을날이 최적이라는 이 취향들. 이것들은 나에게 삶의 에너지와 싱그러움 그리고 친구들을 가져다주었다. 자신의 취향을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말이다.


마지막으로 혼란했던 정체성을 어떻게 통합했는지 다시 정리해 보며 이 챕터를 마무리한다. 각 세 가지 종교적 차원을 2개씩 묶어 정체성 혼란을 정리한 뒤, 통합의 과정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집단주의 x무속신앙 x서양문화까지 정리한 뒤, 구체적 실례와 적용으로 나아가고 싶다. 우선 무속 x집단주의다.


무속 x집단주의


나의 호의는 틀리지 않았다. 당신의 호의도 틀리지 않았다. 호구처럼 타인을 돕냐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 묻는 ‘내가 이상한가?’라는 질문에 이젠 ‘이상하지 않다’고 답할 수 있다. 난 호의를 주고, 또 사람을 챙기고, 사람으로부터 고마움을 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더 정확히는 나의 호의가 집단의 당연한 희생으로 여겨지지 않을 어떤 고마움까지도 아닌, 존중정도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최소한 내가 나를 이상하지 않다고 말해주기는 것으로 나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리했다. 나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정리했다. 무작정 타인을 도와주고, 희생은 희생대로 겪고, 왜 나만 이러냐고 답답해하는 것보다 일단 내가 나의 편에 서주기로 일단락했다. 이런 마음을 갖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의 편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지지하는 사람의 편에 서주는 것 같아 나의 마음의 쪽에 나는 서주기로 했다.


물론 집단주의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은, 특히 내가 타인의 편에 서는 일이 집단의 심기나, 대표의 심기나 상황을 거스르는 일이라면 그들은 나를 ‘다른 편’으로 볼 것임이 사실이다.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와 무속은 오랜 500년 역사에서 결국 집단주의 이기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이를 이기기란 쉽지 않을 것이지만, 최소한 내 마음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내 통합의 방향이었다. 이 근거는 다름 아닌 서양문화와 무속의 방식을 들여다볼 때 나타난다.


서양문화 x무속


각 개인이 다다르다는 입장에서, 내가 (무속적인) 감수성을 발휘하여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묻고, 챙긴다면 자연스레 고마움과 환대에 대한 인정이 돌아온다는 사실, 그리고 이게 좀 더 긍정적이고 어쩌면 건강한 모델일 수 있다는 사실은 내 무속적인 감수성에 대한 마음을 더해줬다.


(위에서는 다루지 못한 내용이지만) 내가 너무 손해만 본다면, 상대가 나를 너무 이용하려고만 한다면 구조나 나 개인의 손해들을 파악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하는 건 사실이다. 지금 현재를 분석하고 쪼개 접근하는 서양문화(철학)의 방식으로 접근하여 나를 지키는 태도는 필요하다. 그렇지만 나의 환대하려는 마음은 좋은 마음이고, 그렇기에 더더욱 이용당하지 않아야 할 마음이다.


만약 상대가 나를 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나를 당연히 서포트해줘야 하는 낮은 계급의 사람’이나 ‘같은 집단’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 인정과 존중으로 오히려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고, 더 많은 즐거움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더 나아가 ‘서로가 다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나의 호의나 환대등을 베푼다면 좀 더 좋은 문화가 정착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인지한다. 일단 편협하지만 이렇게라도 선순환을 만들어보는 것으로, 이렇게 나는 내 정체성을 통합했다.



집단주의 x서양문화


“너의 생각이 뭐야? 너의 감정은 어때?”라고 묻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른 생각과 다른 감정을 말하는 건 적이 되거나 다른 편이 된다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집단주의적인 시각에서 볼 때 ‘다른 편’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최소한 나의 이야기를 말하고 다름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것이 나쁘거나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 딱히 목적 없는 대화들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나 생각을 나눠도, 어떤 목적에 달성하고, 또다시 서열을 나누고, 배울 사람과 배우지 못할 사람을 나누는 게 아니라 다름이 피어오르는 풍성한 대화를 하는 것- 이것이 나쁜 일은 아니었다. “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도, 저는 이거 이렇게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것도. 물론 상대방에 따라 예의를 차리고, 대화 방법을 바꾸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이 대화의 방식이 나쁘다거나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적어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서로 생각을 공유하는 건 지구 반대편에선 당연한 태도이기도 했으니까.


반대로 집단주의를 악용하여 자신의 목소리만 내고, 대화의 흐름이 ‘무조건 내가 옳아’로 가져가는 대표자(연장자라던가 아빠라던가)에게는 나름대로 잘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 이건 ‘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므로, 거리를 두는 수동적 대처나 모르는 척, 눈치 없는 척하는 능동적 대처로 필요했다.


그러므로 상대에 대한 개별성을 잊은 채로, 같은 지구에 살고, 같은 공동체에 있다고 함부로 결정짓지 않는 태도가 중요했다. 나 조차도 쉽사리 상대가 나와 같은 맥락과 같은 경험과 같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것이 중요했고 일단 우리는 각 개별로 모였으며, 아직 ‘우리’라고 합의되지 않은 개인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우린 같은 운명공동체가 아니라는 것- 같은 문제를 풀고 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이렇게만 생각해도 나는 마음이 풀렸다.


무속 x집단주의 x서양문화


곧 나는 이 세 가지의 차원을 이렇게 정리해 본다. 당신이 타인에게 품는 연민과 사랑은 나쁜 일이 아니다. 당신이 무언가를 주려는 선한 마음은 나쁜 마음이 아니다. 당신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잘 나누는 일은 나쁜 일이 아니다. 일부러 상대의 생각이나 마음에 맞춰주지 않아도 된다. 상대에 대한 경청은 맥락과 질문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경청일 수 있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라는 이야기가 궤변이나 고집이 아니라면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는 이야기다.


물론 자신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자신이 무언가를 나눠주고 편에 설 때 희생인지, 권력에 의한 일인지 생각해야 한다. 소진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 소진되지 않는 방식도 지구 저편에는 있다. 파악하기 어렵다면 우리 모두는 하나의 집단이 아니라 모두 개별성을 가진 개인이 모인 것-이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그 인식으로부터 나도 상대방에게 감사할 수 있고, 상대도 나에게 감사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챕터를 마친다. 실제로 이 글을 쓰며 나는 과거 속의 많은 나 자신과 화해할 수 있었다. 특히 서양문화(철학)에 있는 효율이나 결과들, “내가 나를 내어주면서까지 희생하여 얻은 건 뭐지?” “나에게 돌아온 건 뭐지?”라는 질문과 화해했다. 내 안에는 ‘역시… 주변 사람 말을 듣을걸. 내 호의는 호구였고, 나를 챙기는 게 맞았다. 역시 이기심이 나쁜 게 아니었어’라는 어딘가 불편한 마음이 있었는데, ‘아. 타인을 향한 마음은 중요하지만 나를 희생으로 보지 않고, 개개인으로 보는 사람과 나눠야겠다’라는 방향과 방식의 문제였다는, 곧 나의 마음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조선시대에 내가 태어났다면 아무래도 타인들의 마음을 풀어주며 가끔 농사하며 또 나눔도 받으며 살았을 것이다. 치열한 경제 논리가 아니라 누군가를 도와주며 내 마음의 걸리는 표정들을 지워가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내 동양적인 관습이 있는 몸에 서양의 논리를 받아들였고, 돈 욕망도 있고, 조금 주목받고 싶은 마음도 있다.


동양의, 무속적인 특질을 가진 내 몸 위에 서양의 논리를 이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걸 밀어낼 수도 없을뿐더러, 나는 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소유를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커피를 좋아하고, 옷도 조금씩 사고, 노트북, 여행, 책 등을 자본으로 사용한다. 맞다. 난 이 사회에서 내 능력으로 나를 책임지고 헤쳐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내 감정과 행동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방법을 고민한다. 몸은 동양의 몸이니 나를 인정해 주되, 방식은 서양의 방식으로 따라간다. 신기하게도 이럴 때 통합이 일어났다. 철학을 하며 간혹 들었던 느낌은 ‘내가 어떤 정밀성을 다루는 게 아니라 나의 무속적인 방향을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는 방식’이라는 기분이 들었는데, 이제야 그 기분이 왜 들었는지 이해가 간다. 타자, 환대, 연결, 감각, 사랑, 권력등의 단어가 와닿았고, 환대를 이야기한 레비나스, 경계와 해체를 다룬 데리다, 소외와 부조리에 대해 다룬 카뮈, 힘과 권력을 다룬 시몬 베유와 푸코, 그리고 사라지고 희생하는 사랑에 대해 다룬 롤랑 바르트 까지 아마 이들은 서양의 세계 속에서 사는 무당기질이 있는 나에게 어떻게 사는지 서양의 언어로 알려준 것 같다.


이제 적용파트를 써보고 싶다. 어떻게 내가 이 이야기들을 적용하며 살았는지, 사례가 무엇이 있었는지 그럼에도 2년 전부터 왜 나를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는지 그리고 어떤 효과들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싶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경험한 시간이 10박 12일이었어서 적용할만한 사례가 많지 않았겠지만 의외로 내가 미국 가서 해당 감각들을 볼 수 있던 건, 그간 쌓인 회사생활과 친구들 덕분이었다. 기세등등할 생각에 벌써부터 화가 나지만, 나의 공식적 첫 번째 사수 O님께 감사를 드린다. 글을 쓰면서 그분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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