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고 타인을 지키는 마음과 방향으로 나는 타인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든 지키려고 노력했다. 물론 내가 성인의 경지에 오를 정도로 맑고 순수하다는 입장은 아니지만, 나도 한계가 있는 인간이고, 내 욕망을 의심하고 고민하는 인간이지만 나는 내 영혼을 두고 꽤 치열하게 고민했음을 알리고 싶다. 여기서 내가 전달하려는 이야기는 내가 잘났다는 이야기가 아닌, 되려 환대가 뉴욕에서 더 좋게 받아들여졌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나의 희생은 딱 두 가지로 구별된 것 같다. 호구 아니면 감사. 물론 내 주위에 이상한 사람만 있었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한 결정적 요인은 다름 아닌 ‘너와 나는 같은 공동체다-라는 요인이다. 작게는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줘도, 크게는 조직의 총대를 대신 매 주거나 남들이 하기 싫은 이야기를 도맡아 해도 ‘우리는 같은 공동체’ 이자, ‘한 배’를 탔기 때문에 고마워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짙게 깔려있는 ‘원래 답답한 사람이 하는 법이니까-‘라는 생각 혹은 그럼에도 의리가 있고, 한 팀이 됐고, 공동으로 책임진다는 생각, 이 생각이 먼저 환대를 하는 사람을 호구로 만든 것 같다. 하지만 이 희생이 고마움으로 돌아왔던 건 다름 아닌 뉴욕에서였다.
환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정말 미안하게도 맥락설명부터 해보고 싶다. 환대에는 다양한 모양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쓰함, 희생, 사랑, 묵묵함등등 솔직히 환대의 개념이 너무 넓은 개념이라 나의 설명이 독자분들에게 편협한 사고를 심어줄까 두려움이 존재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소수자들의 희생과 당연함을 ‘환대’라고 부를 수 있는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와 내가 평등하고 존중할 때 환대는 일어난다. 만약 상대가 ‘너와 나는 급이 다르고, 내가 더 급이 높아’라고 인식하는 상황에서 내가 주는 환대나 사랑은 ‘당연함’으로 인식되기 딱 좋다. 극단적인 단어지만, 상대방 입장에서 내가 ‘하인’으로 취급될 경우 내가 하는 환대는 서비스나 당연함이 된다. 심지어 ‘환대’나 ‘사랑’은 낮은 사람들만 하는 거라면? 상대는 착하니까 내가 주는 환대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럴 경우엔 더욱 괴롭다. 물론 위에서 말한 ‘집단주의’의 케이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나이니 누군가는 희생해야 해’라며 희생이 당연해지면 고마움은 사라진다. 물론 대한민국의 몇몇 집단에선 ‘등급’과 ‘집단’이 엮여 더더욱 당연해지지만.
하지만 너와 나는 자라온 환경도, 국적도, 받아온 교육도 달라서 너와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의 조그만 희생이 상대방에겐 당연하지 않다. 즉, 뒷사람에게 문을 잡아주는 것만 해도 고마움이고 감사다. 뒷사람을 신경 써서 문을 잡아준 거고, 에너지를 나눠줬기 때문이다. 편하게 문을 통과한 상대는 문을 잡아준 상대에게 ‘고맙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조그만 환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 뉴욕에 갔을 때, 나는 뒷문을 잡아주는 행동으로부터 돌아오는 Thank you가 사회적 습관인 줄로만 알았다. 이 역시 나에게도 ‘모두가 같이 사는 공동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일행 중 한 명이 뒤에 유모차를 끄는 아빠가 있어 일부러 문을 활짝 열어 배려해 줬을 때 돌아오는 반응을 보며 이는 사회적 습관이 아님을 직감했다. 유모차를 끌던 부모는 나의 일행에게 정말 고맙다며 감사인사를 했는데, 그 반응은 사회적 습관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진심이 느껴지는 감사인사였다.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희생이 당연해지지 않는 일이 이곳에선 일어났다.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환대가 환대로 굴러가는 일이 여기선 일어났다. 이에 대한 다른 사례도 하나 꺼내보고자 한다. 이에 대해 이들이 한 공간 혹은 한 구역에 있는, 더 나아가 한 사회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로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뉴욕양키스 경기가 끝나고 돌아오는 만원 지하철에서였다. 그 작은 일상의 틈 하나가 나에겐 큰 차이로 느껴졌다.
약 4만 6천 명의 만원 관중이 한 번에 쏟아나 왔지만 낙후된 뉴욕의 지하철은 이를 수용하기엔 여간 힘들어 보이는 건 아니었다. 100년 이상의 역사가 쌓인 뉴욕 지하철은 에스컬레이터는 고사하고 악취와 삐그덕거림으로 유명한데, 이는 뉴욕 양키즈 스타디움 앞 지하철역도 마찬가지인 편에 속했다. 정말 많은 관중이 쏟아져 나오는 그 순간, 나 역시도 지하철을 타려 승강장으로 갔다. 그리고 10분 뒤 지하철이 도착했다.
사람들이 들어가고 들어가 지하철은 순식간에 사람들로 가득 찼고, 저녁 6시 반 신도림이 2호선이 부럽지 않게 사람들이 지하철 안에 붐볐다. 그리고 아직 타지 않은 내 앞에 딱 0.7인분 정도의 자리가 났다. 지금 타지 않으면 15분은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양 옆에는 대부분 2명이 있어서 아무도 못한다는 특유의 한국인 눈치를 보고 나는 그 자리에 점프해 탔다. 그리고 지하철 문이 닫혔다.
하지만 지하철 문은 나의 가방에 맞고 다시 열렸다. 애매하고도 아슬아슬하게 가방은 지하철 문이 닫히는 것을 방해했다. 나는 내가 민폐가 된다고 생각하여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앞에 있던 양키즈 팬들과 안에 타있던 승객들이 나에게 몇 마디를 던진다.
“여기서 포기하면 어떻게 해! 힘내!”
“해봐!”
“왜 시도 안 해? 해봐!”
그렇게 어떻게든 가방을 잘 넣어 문이 정상적으로 닫혔을 때, 밖에 있던 사람들이 진심으로 손뼉 쳐주고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양키즈의 승리로 끝난 경기라 다들 흥이 난 부분도 있었겠지만, 내가 내리는 행동이 민폐가 아니라 되려 다시 타는 행동이 응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한국에서는 따가운 눈총으로 ‘알아서 내려’라고 했을 법한 상황이 여기선 응원으로 변하는 것이 나에겐 충격이기도 했고.
그렇게 뉴욕 중심부 맨해튼으로 내려오며 나는 이 차이가 왜 났을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그 원인은 다음과 같았다. 이 사람들은 ‘모두 같은 공동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같은 전철에 탄 사람들을 한 배를 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의 집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각 개인이 모여 한 공간에 있는 것. 모두가 지워진 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각각 한 명의 사람들이 여기 있어서 무리를 이뤘다는 것-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나 역시도 민폐가 아니라 같이 탑승하고, 같이 가는 사람이 됐다. 모두가 개개인이니 나는 전체를 위해 희생할 사람이 아니라 같이 갈 수 있는 한 명의 사람이 됐다. 그제야 문을 잡아줬을 때 부부가 왜 그렇게 감사했는지 정리가 됐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는 말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그게 왜 틀림이나 편 가르기가 아닌지 정리됐다. 이 감각이 생긴 뒤 이뤄진 대화는 나에게 더 생경한 느낌을 줬다. 어느 유럽 국가에서 한국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전공한 친구와의 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