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을 지키며 사랑을 건져내는 법 - 1

by 시몬 베유

투신 소동이 지나고 10여 년이 지난 어느 가을, 한 가족은 추석에 모여 식사를 진행했다. 뉴욕에 다녀온 아들이 만나자고 한건 굉장히 낯선 기류였는데, 그동안 부모와 맞지 않는다며 자취를 꽤 오래 하던 아들은 거의 7-8년 만에 처음으로 만나자는 말을 했고, 밥을 먹었고, 기념품을 사 왔다. 아들은 유교 문화권에서 자라 학력에 대한 은근히 열등감이 있을 것 같은 아빠에게, 하버드에서 사 온 노트를 선물했다.


한정식 집에서 밥을 거의 다 먹고 대화가 오가던 도중, 처음으로 나는 ‘아빠가 참 불쌍한 삶을 살았지…’ 하는 이해의 마음이 올라왔음을 알게 됐다. 이 마음은 처음이었는데,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도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 다정한 마음은 나도 낯선 것이어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감싸 안아줘야 할지 몰랐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용서였을까. 아니면 해결하지 못한다는 체념이었을까. 한참을 고민해 봤는데, 아빠를 한 명의 사람으로 존중해 주는 어떤 존중감은 확실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존중감이 뉴욕여행에서 왔다는 점이었다. 여행을 마지막으로 나는 정체성의 혼란을 어느 정도 정리했다. 그러므로 어떤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알았고, 아빠를 대할 때 서양문화가 편한 나를 보여야 할지, 집단주의를 아는 내 모습을 보여야 할지, 아빠에 대한 연민과 답답함에 응답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야 할지 알게 됐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야 할지 아는, 그러므로 지금 당장은 아빠의 문제를 할 수 없다는 분주함의 끝에 나는 서 있었고, 그제야 그 존재가 보이게 됐고, 용서 이상의 어떤 존중이 자리하게 됐다.


물론 혹자는 내가 다른 곳에서 오래 살았고, 더 이상 그에게 행복을 빼앗길 일이 없으며 아빠도 나름대로 성숙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물론 해당 내용 역시 일부 동의하는 바이지만 나에게 뉴욕 여행은 집단주의, 서양문화, 무속이라는 세 가지 정체성의 혼란을 거두고 정리하는 경험이었단 측면에서, 아빠를 이해하는데 정체성의 정리는 꽤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아빠 이야기를 넘어 삶을 대하고 받아들이는 측면 역시 꽤 크게 바뀌었지만.


먼저 몸부터 말하자면 “고민 없이 잔다”는 것 그리고 “속이 좀 편하다”는 것이 꽤 큰 변화일 것 같다. 항상 내 주변에 문제가 일어나면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부터 했으므로 내가 자면서 할 수 있는 노력은 고민과 생각이었다. 이 습관은 꽤 오래된,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습관이었는데 나는 꿈속에서 시험공부를 한다던가, 고민하던 철학자가 꿈에 나온다던가 아니면 그날 고민하던 주제에 관련된 사람이나 환경이 꿈속에 나오는 경험을 부쩍 많이 했다. 뿐만 아니라 잠을 자면 생각이 해결되는 경험도 많이 하고, 정리되는 경험, 심할 때는 자다가 어떤 생각이 들어 적어두는 경험을 많이 했는데 힘을 주고 잠에 드는 경우가 많이 사라졌다.


두 번째로 속이 편하다는 것 역시 하나의 결과였다. 최근 내가 알기로는 심리학에서 “어깨가 무겁다”라는 비유는 단순히 비유가 아니라 정말 어깨가 아픈 것이고, “인간관계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라는 비유는 정말 머리가 아프다는 증상을 갖는다는 가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나도 비슷하게도 정체성 혼란이 걷힌 만큼 속이 편안해진 경험을 하고 있다. 혼란으로 인해 ‘내가 이상하구나’라며 스스로를 혼냈던 자기혐오와 ‘너는 이상해’라고 눈빛 그리고 ‘너의 속도대로 살면 너는 힘들게 살 거다’라며 몸으로 받아낸 혐오가 풀리며 속이 편해졌다. 내 느낌상, 내 속은 분노와 불안과 우울을 함께 견디는 신체의 영역 같았는데, ‘나는 그런갑 보다-‘하며 받아들이자 자유를 얻은 느낌이 들었다.


곧 이번 챕터에서 다룰 내용은 나는 어떻게 정체성의 혼란을 다루었고 통합했는가-라는 질문이다. 왠지 한국은 이상하고, 근데 난 사람들이 좋고, 한국에서 잘 살고는 싶은데, 화나는 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어느 정도 되리라 생각한다. 특히 인문학에 대한 독서를 통해 불편감을 가져버린 사람들은 더더욱 말이다. 결국 내가 맞닿는 지점은 거기인 것 같아서-


애석하게도 이 이야기의 시작은 조금 부정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렸을 적, 특히 1-2학년을 생각하면 나는 짜증과 혐오감이 강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생각난다. 어렸을 적 다 같이 잘되자는 마음에 ‘이거 알면 좋다고, 저거 알면 좋다고-‘ 했던 그 마음엔 환대와 사랑이 섞여있었는데, 마음을 나누는 법을 과자나 즐거움, 웃음을 나누는 법이 아니라 지식을 나누는 법으로 알았던 한 아이는 아이들에게 시기나 질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물론 당시 조금은 자랑하는 말투로 친구들에게 말한 것 같지만, 나의 마음은 언제나 자랑보단 나눔이 강했다. 그렇게 마음이 상해 집에 오면 엄마는 항상 “너의 마음은 착하지만 애들이 몰라줘”라는 말을 꼭 쥐어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건대 엄마 이외에도 어른들의 눈에는 그게 보였나 보다. 얘가 잘난 척을 하는지 아니면 정말 순수하게 마음을 나눠주는지 말이다. 물론 다듬어지지 않은 인정욕과 관계욕이 거기 있었겠지만, 잘난 척이 심하다-는 말에 몇몇 어른 들은 나를 위해 ‘잘나서 잘난척한다’라든가, 잘하니까 그렇지-라고 위로를 해줬던 기억이 난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뉴욕에 다녀오고 나서 정체성-통합 혹은 화해라고 말하는 경험을 했을 때, 다름 아닌 어렸을 적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는 “그 친구 좀 뭐랄까… 사회적으로 어색한 구석이 있지 “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미국인 C는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회적으로 어색한 구석”이라는 표현을 썼으나 그는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사회성을 논하면서 공격적이거나 완전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니, 정말 신기했다.


뉴욕에 다녀와서 나는 MIT공대를 다녀온 나는 너드들이 어떻게 학교생활을 하는지, 인싸와 아싸에 대한 부분이 있는지 조금 가볍게 다루고 있었다. 그 맥락에서 나 그 친구 둘 다 아는 어떤 친구로 비유를 들어 설명하다가 미국인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F 친구 있잖아 왜. 사회적으로 어색한 구석이 있지- 왜. 무슨 이야기하는 줄 알지?” 이 말을 경청하며 그 친구의 표정을 보았는데, 나의 뇌는 좀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어? 이런 이야기를 하면 표정이 좀 일그러지거나, 뒷담으로 돌아가는 듯한 뉘앙스가 되어야 하는데, 왜 그런 느낌이 안 들지?’


실제로 나는 ’ 사회적으로 어색한 친구’ = ‘위협적인 친구’라는 등식을 적용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챙겨줘야 하는 사람으로도 다루지 않았다. 미국인 친구에게 있어서 사회적으로 어색하다는 건 그저 하나의 특색이었다. 마치 ‘내향적인’ 이라던가, ‘외향적인’이라던가, 조금 진지하다는 등의 어떤 사회적 특색. 한국 사회에서 나는 이 단어만 나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와 대화할 땐 그 고민이 필요 없어져버렸다. 미국인 친구는 이걸 하나의 특색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 친구만큼은 그들에게서 공격성이나 나쁨을 섞지 않은 것이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또 미국인 친구가 모든 미국인을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그 친구의 성격이 좋아서 사회성과 공격성을 결부시키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진행하다가 곧이어 내 머릿속엔


사회성이 좋지 않음 = 나쁜 사람 = 집단을 망치는 사람이라는 공식이 미국인 친구의 머릿속에선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반대도 통하는지 궁금했다. 해서 이와 같은 질문을 더했다.


“그러면 미국에선 사회성과 인싸가 엮여 있지 않아?”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이런 거였다.


“응. 내향인들도 사회성 좋은 친구 많고, 반대로 외향인들인데 사회성 안 좋은 친구도 많아. 그건 완전 다른 영역이야”


생각해 보면 이 대답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철학자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는 ‘인간의 자아는 자신을 이야기로 구성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이를 좀 더 쉽게 말해보면 ‘인간은 자신이 어떤 이야기 속에 있는가’에 따라 자신을 바라보고 규정하고 인지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자기가 고난과 역경을 뚫고 왔다고 이야기를 만들면 자신은 강한 사람인 반면, 고난과 역경’만’ 있었다고 이야기를 만들면 자신을 비운의 주인공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응용해 보자면, 자신의 이야기의 기승전결, 가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전제를 바꾸면 자신의 존재가 바뀔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주장은 나에게 있어서는 그 미국인 친구의 대답과 엮였다. 존재를 조금씩 바꾸고, 내가 생각한 전제가 바뀌는,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내가 과거에 해석했던 나의 이야기를 바꾸는 그 시작점이 바로 그 대답이었다. “내향인도 사회성 좋을 수 있고, 외향인에게 사회성 안 좋은 친구도 많다”라는 그 대답이 말이다. 그 대답은 나에게 이런 식으로 들렸다. “지금까지 너의 해석이 틀렸을 수 있어. 너의 행동이 온전히 너의 어렸을 적 인간관계를 망쳤을 수 있지만, 그건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맥락의 문제 일 수 있고, 방법의 문제일 수 있어.”


그제야 과연 서구 문화였다면 내 행동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생각해 보니 내 과거는 꽤 달라질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자나 웃음보다 지식이나 방법이 더 중요한 곳에서는 나의 나눔이 정말 도움이 되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과거는 다시 엮였다. 과거가 다시 엮이니 나의 과거도 새롭게 보였다. 나는 과거 내 환대나 친구들을 좋아하는 마음까지도 잘못됐는지 근 20년이 지난 그때까지도 의심하고 있었는데, 그 마음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고 다만 방법 정도가 문제가 있었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엄마의 “너의 마음은 착하다”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제야 나는 내면의 울고 있던 아이와 어느 정도 화해했다. 물론 당시 내가 친구들에게 엄청 시달렸다던가, 비난받았지는 않았다는 사실도 인지했다.


즉, 한국의 사회성은, 한국의 집단주의는 정답이 아니었다. 내가 잘못이라는 낙인으로부터, 더 나아가 남들에게 호의를 가지고 무언가를 나눠주고, 질문하고, 같이 고민해 주는 이 방식은 최소한 다른 곳에서는 호의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던 이야기였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뉴욕에선 내 호의가 호의로 받아들여졌다. 질문과 관심이 질문과 관심으로 받아들여졌다. 상대에 대한 환대가 당연하지 않았다. 환대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내 마음이 전달됐다. 내가 지켜낸 환대가.


그럼에도 나는 사람에 대해 친절하고 사랑하려는 마음을 오랜 시간 동안 지켜왔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에게 가장 강하게 있는 마음은 환대와 호기심이었고, 세상이 나를 못살게 굴고, 아빠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해도 나에게서 타인을 향한 환대와 사랑의 마음만큼은 가져가지 못하게 꽁꽁 잘 묶어 뒀다. 이 순수함을 잃는 순간, 내 인생은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영혼을 잃는 것 같았으니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내 종교적 정체성 중 한 가지인 무속적인 감수성과도 꽤 연관이 있는 것 같다. 타인을 해방시켜 주고 사랑하려거든, 나의 마음이 먼저 잘 서있어야 함은 나는 알았다. 만약 내가 권력이나 나쁜 욕망을 가진다면 나는 상대의 약점을 가지고 휘두를 수도 있음을, 그러면서 나와 상대를 모두 망칠 수 있음을 언제부턴가 안 것 같다. 하지만 힘과 재능을 그렇게 쓰면 화를 입는다는 사실을, 내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추악해진다는 사실을 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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