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서(草書), 속서의 최종본

초서는 학습서가 필요해

by 이미령

현재 우리나라가 쓰는 한자는 번체자[정체자]고, 중국은 간체자다. 중국이 번체를 포기하고 간체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높은 문맹률이었다. 1949년 당시 문맹률은 80%에 육박했다. 간체 도입 후 문해율이 96% 이상이라고 하니, 한자가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글자인지.

한자 간략화로 탄생된 간체자 보다 훨씬 더 간략한 서체가 있다. 초서다. 간체자를 만들 때 사용한 제자 방법 중 초서의 획을 활용한 것도 있다. 초서는 형태상 속서(速書)를 위한 5체의 최종본이다.

초서의 자형은 매우 간단하며, 글자는 점차 서로 이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예서를 간소하게 흘려 쓴 장초(章草)에서 후한 말 장지(張芝)와 동진의 왕희지(王羲之)로 이어져 금초(今草), 당대(唐代) 광초(狂草)가 등장했다. 이렇게 간략화된 초서가 상용화까지 뿌리를 내리지 못한 데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초서체는 해서체에 비해 간단해도 너무 간단해서 문제가 되었다. 가독성에 문제가 생겼다. 너무 간단하게 획을 줄여서 기존 한자를 읽고 쓰는 수준에서는 초서는 읽고 쓰지 못한다. 다시 초서용 한자를 익혀야 한다. 또 다른 언어가 된 것이다. 특히 초서의 한 종류인 狂草(광초)는 내 눈에는 거의 추상화처럼 보인다. 나는 맨 정신으로도 못 읽는다.

초서의 획을 줄일 때 적용되는 법칙들이 있다. 법칙만 외워서는 해결할 수 없다. 법칙에는 예외가 있어서 그렇다. 그냥도 어려운데, 쓰는 사람들마다 필체가 독특해서 더 난해하다. 해서도 제대로 다 읽고 쓰지도 못하는데, 행서도 겨우 눈치껏 대충 짐작만 하는데, 초서는... 아예 추측하지도 못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서를 위한 학습서가 나왔다. 워낙 필체의 변화가 많은 특징 때문에 시가(詩歌)의 형식으로 필법을 익히는 방법이 활용되었다. 대표적으로 송대 미불(米芾)이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한 집고초결가(集古草訣歌)가 있다. 이후 한도형이 집고초결가를 보완한 초결백운가(草訣百韻歌)가 초결가의 계보를 이었다. 초결백운가는 해서와 초서가 5자씩 나란히 있어서 눈으로 비교하면서 마치 구구단을 노래하듯 외우며 익히기 좋게 되어있다.

초결백운가

그리고 대표적인 학습서로써 서예사에서 매우 중요한 章草[예서를 간략하게 속서]로 쓴 “급취장”이 있다. 전한(前漢) 사유(史游)의 급취장은 중복된 글자가 없이 암기하기 쉽게 되어있다.

손과정의 서예이론서인 “서보”도 초서로서 완성도 높은 훌륭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손과정 서보

초서는 상용화라는 타이틀을 받지 못하고, 실용성도 행서로 넘어갔지만 한자의 정형화된 형태에서 벗어나 속서로서 최적화된 서체였다. 아무나 읽거나 쓸 수 없지만 속서로서 엄청나게 효과적인 글이다. 또한 독창적인 서체로서 붓으로 표현할 때 예술성은 현대에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속기사들의 속기문자를 보면 초서가 일종의 탈피과정을 겪으며 현대까지 이어져오는 것 같다.


청나라 포세신이 왕헌지의 초서를 평가한 글로 초서의 글맛에 갈음한다.

“왕헌지의 초서는 대개 일필로 굽이굽이 휘몰아친 듯싶다. 부젓가락으로 재에 그림을 그려 놓은 듯 시작과 마침을 알 수 없으나 자세히 보면 고비고비마다 세우로 뉘고 멈추고 꺾음에 점획의 기세가 완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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