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 의료기관의 1일 2회 전화 모니터링과 체온, 맥박, 산소포화도, 임상증상 등 건강정보를 기록했다.
병원에서 신속 진단 키트로 확진을 받고 집에 돌아와 자가격리, 더 정확히 안방 격리를 위한 준비물을 챙겼다. 제일 먼저 먹거리를 쟁여놓을 듯 쓸어 담고 나서 노트북과 읽을거리를 찾아 넣었다.
격리 기간 동안 할 일이 없으니 많이 읽고, 글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약을 먹고 나면 잠을 많이 잤다.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밥 먹고, 약 먹고 돌아서면 또 밥 먹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확진자의 삶이 펼쳐졌다.
동거인을 위해 방에서 절대 안 나가려고 했다. 남편의 안위가 중요한 것은 그가 유일한 음식 제공처라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없...
그래도 가끔 방 밖으로 나갈 일이 생겼다. 식은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확진자 옷은 따로 빨아야 하는데... 챙기지 못한 물건도 있고...
동거인이 출근하면 조용히 움직였다.
방 밖으로 나갈 때마다 반드시 비닐장갑을 꼈고,마스크를 꼭 착용했다.
남편이 가끔 내가 방 밖으로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생각건대 긴 꼬리는 꼬리 치기 위해 있다기보다... 밟히라고 있는 거다.
그는 놀라자빠질 정도의 경악함을 숨기며 최대한 동요하지 않은 듯, 그렇지만 심하게 흔들리는 목소리로
내 손이 닿은 곳은 빠짐없이 소독약을 뿌렸냐고 했다.
아니~ 차~암 어이가 없네!
비닐장갑을 꼈대도!
마스크를 빈틈없이 했대도!
그리고 이 체급에서는 불가능한 그 힘들다는
빛의 속도로 움직였대도!
이 모든 것은 그에게 아무 소용없다.
거기에 더하여 소독약도 뿌렸냐가 중요했다~
그래서 나의 음식물 제공자에게 지금필요한 것.
구석구석, 두 번씩. 빠짐없이 소독약을 뿌렸다고 했다.
동거인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내 양심 조금을 구겨서 내다 버렸다.
나의 방구석 사수, 철저한 위생관리(호흡기에 상당히 좋지 않다는 소독약 뿌리는 것만 빼고)덕분에 가족 간 전파는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꾸준히 따뜻한 음식을 제공받았다. 그리고 남은 음식물 처리의 곤란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남기지 않고 다 먹는 희생도 감수했다.
격리기간부터 상실된 미각과 후각은 격리가 해제된 뒤 이주일이 지나도록70% 정도만 회복된 듯하다.
그럼에도 그 웬만해서 피할 수 없다는 확찐자가 되었다.
허기와 약 때문이다. 허기는 그 성치 못한 미각과 후각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약은 빈 속에 먹으면 안 된다는 내가 꼬~옥 지켜내는 불문율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확진으로 얻은 2가지가 있다. 앞서 말한 몸무게와 남편의 생일이 그 기간 내 있었다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자~ 굳이 확진자가 자신의 생일을 챙겨주겠다고 방을 벗어난다면 저 예민한 동거인이... 하얗게 질려 뒤로 넘어가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