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배 아파. 고추 있는데도 아파"
금요일 저녁 이 말을 들었을 때 바로 병원에 갔어야 했다. 밥 먹고 노는 거 보니 괜찮은 것 같아서, 토요일 일어났더니 "어제 보다 안 아파"라고 하기에 정말 괜찮은 줄 알고 "응. 괜찮아 지나 보다"라며 쉽게 지나가지 말았어야 했다. 일요일 아침 마당에서 텃밭 정리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말했다.
"자기야, 애가 많이 아픈가 봐. 오늘 병원 가봐야겠어"
"일요일인데 문 연 곳이 있을까?"라며 아직까지 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별 문제 있겠냐는 안일한 생각으로 소아과를 갔다. 주말이다 보니 대기만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짜증을 내며 겨우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음. 좀 안 좋아 보이네요. 바로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네!!!!"
이제야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볼일이 있어 기차를 타고 올라가고 있던 아내는 내 전화를 받고 약속을 취소하고 가장 빠른 시간의 기차를 타고 다시 내려온다고 했다.
그렇게 조금 더 큰 병원엘 갔고, 거기서도 대학병원으로 바로 가보세요라는 말을 듣자 그때부터 멘털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 접수 부터 쉽지 않았다. 우리 가족 모두 격리 해제된 지 한 달 정도 지났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환자는 무조건 코로나 검사를 해야만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아들은 아픈 와중에 코로나 검사까지 받아야 했다. 또한, 보호자가 1명밖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해서 아내만 병원으로 들어가고 나와 딸은 응급실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기다린 지 1시간쯤 초조하게 병원 앞을 왔다갔다 하며 기다리고 있던 중,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야. 어떡해. 울 애기 응급으로 수술해야 될 것 같데. 너무 심각하데. 그래서 비번인 다른 전문의 두 명을 불렀데. 그 사람들 오면 다시 검사해봐야 된데"라며 거친 숨소리로 울먹이며 말을 전달해 주었다.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내 안의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게 다 내 탓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프다는 말이 나왔을 때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갔어야 했는데'. 엄마와의 통화를 옆에서 들은 딸아이는 "아프면 어떻게 해"하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후에 들어보니 그 시간 아내는 병원 안에서 아이 팔과 다리를 붙잡고 피검사에 초음파에 심전도에 각 종 검사를 하며 아들과 울며 땀 흘리고 있었고, 나는 옆에서 울고 있는딸을 달래며 다른 의사들이 왔을 때 지금과 다른 결과가 있길 기도하며 있었다.
그렇게 또 1년 같은 1시간이 지난 후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전문의가 와서 다시 초음파 했는데 수술은 안 해도 될 것 같데. 염증이 너무 많긴 한데 우선은 약 먹으면 될 것 같데"
그 소리에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 인지도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속으로 수 십 번은 한 것 같다.
"애는 어때"
"응 너무 많이 울어서 지쳐 있어"
그렇게 또 한 시간이 지나고
"이제 수속 밟고 퇴원해도 된데"
"그래? 가도 된데? 괜찮은 거래?"
"응. 우선은 내일 외래 진료 받으면 되고, 항생제 받아가서 먹이면 된데. 그리고 나랑 교대 하자. 애기가 아빠 보고 싶데"
"응" 그렇게 아내가 병원 밖으로 나오고 내가 들어갔다.
"아가. 아팠지? 이제 괜찮데. 아빠랑 집에 갈까?"
"응. 집에 갈래"
간호사 분이 와서 수액과 팔에 꽂혀 있던 주사기를 빼주고 아이를 안고 수납을 하고 약을 받아 우리 가족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오후 6시쯤 되었다. 아침 9시에 소아과에 도착해서 집에 다시 돌아오는데 까지 9시간이 걸렸다. 우리 가족에게는 1년 보다 더 긴 시간이었다.
집에 오늘 길에 차에서 아내와 이야기를 하던 중 아내가 "애가 검사 받는데 너무 아프니깐, '엄마 나한테 왜그래'라는 말까지 하는 거야"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고 이 말이 며 칠이 지난 지금도 쉬이 잊혀지지 않고 있다.
집에 와서 이제는 좀 괜찮아진 아이와 거실 의자에 앉으니 그제서야 머리가 깨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옆에있던 딸도 그랬나 보다.
"오늘 하루 힘든 꿈을 꾼 것 같아"
꿈이 아닌 현실이었지만 꿈이라고 해도 다시는 꾸고 싶지 않다.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상황을 파악하기 전 우선 병원부터 가봐야겠다. 오늘 이렇게 까지 일이 커진 이유가 모두 내 탓이다. 마음이 무겁다. 저녁에 아이 옆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한 참을 바라보았다. 쓰다듬고 안아주며 말했다.
"미안해. 그리고 잘 견뎌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