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 중에 번아웃이 온 적이 있었다. 일도 열심히 하고 바쁜 와중에 있는데 대표로부터 주변에서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피드백이 들린다는 것이다. 드러내며 일을 하지 않은 업무스타일 때문일까. 지속적으로 받는 피드백이 이렇다보니 급기야 내가 이 회사에서 무얼하고 있나란 회의가 들었다. 그래도 애착이 있어 회사를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나 자신을 설득할 명분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CTO는 Cheif Technical Office인 최고기술책임자로서 회사의 기술적인 분야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비지니스와 연관하여 기술개발에 방향을 잡고 기술연구, 개발의 리더이다. 리더의 역할은 실무자들이 일하는데 방향을 설정해주며 의사를 결정하고 해당 업무를 진행하는데 제약요소들를 제거해주는 서포드 역할이라 생각한다. 쉽게 말해 각 프로젝트의 팀원들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역할이다.
초기엔 개발자가 없다보니 내가 중요한 프로젝트들을 마무리해야 했다. 무리없이 완료를 했기에 나름 인정도 받았다. 하지만 팀이 커지다보니 지금은 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여러 성격의 프로젝트를 리드하다보니 직접적인 개발이 아닌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했다. 실무의 보상과 책임은 그들에게 주어지고 난 최종 책임과 여기저기 불난 곳을 꺼야하는 소방수 역할에 가까웠다. 그래도 실무자들의 손에서 완전히 불이 꺼져야 한다. 난 그 불을 끄기 위한 환경을 준비해 줄 뿐이다.
프로젝트의 마무리는 실무진들이 하기에 그들이 드러나고 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지치거나 포기하겠다하면 내가 일으켜 세워야 한다. 내가 판단해도 안되는 절망 같은 상황에서 물러설 곳이 없더라도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보이면 그들이 안된다고 외칠 때 난 된다고 해결책이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밀어붙여야 한다.
중요한 프로젝트 초기에 담당자의 반발이 있었다. 이건 기술적으로 안될 거 같다고. 하지만 난 논리적으로 실현 가능성을 보았다. 그래서 이주 정도 준비해서 해당 기술을 데모로 직접보여주어 설득시켰다. 지금은 그가 알아서 좋은 솔루션으로 발전 시키는 중이다.
일을 하게 하는 것은 늘 설득의 과정이다. 설득의 기술이 필요하다. 난 말주변이 없기에 이에 매우 약하다. 그래도 이건 말의 스킬의 아닌 믿음의 문제다. 그걸 개발자들에게도 믿게 해야 한다.
"되요. 걱정하지 마요. 해결책이 있어요."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근심한다고 해서 그 근심을 한자라도 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과를 걱정한다고 바뀌는 건 아니니 포기할 거 아니면 된다라고 믿는 게 더 이득이다.
서두가 길었다. 초반에 번아웃이 왔다고 말했다. 매일 쏟아지는 이메일, 각 팀에서 요청하는 회의 요청, 개발자들의 불평과 요청들, 나 혼자 해결 해야할 일들... 그에 대한 납득할 수 없는 평가.
무엇이 문제인가 고민 중에 내린 결론은 나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성장이 없었다. 거대한 일의 파도에 휩쓸려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수면으로 머리를 쳐들 뿐이었다. 나를 파도로부터 지켜주고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줄 배가 필요했다.
모든 변화는 앎에서 시작된다. 배움을 위해서는 주변에 조언을 구할 동료나 현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난 인간관계가 그리 넓지 않다. 내 주위엔 이를 해결해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겐 이런 문제를 들쳐낼 용기가 없었다.
난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군대 첫 휴가 때 연인이 도서관에 끌고 간 이후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책을 멀리했다. 지금도 차라리 인터넷 서칭이 편했다. 하지만 삶에 허덕일 때 뭔가 이끌리듯 책을 집어들었다. 한 책이 나오기까지 수년동안 혹은 십수년이 걸린다. 그곳엔 저자의 경험과 지식이 녹아져 있다. 독자는 보통 10시간 정도를 투자하면 책 한권을 완독한다. 이해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자가 투자한 몇년, 길게는 몇 십년의 긴시간을 걸쳐 축적한 지식을 하루면 습득할 수 있다. 시간의 투자관점에서 보면 100배 이상의 이득이다. 그래서 책을 스승으로 삼았고 나를 돌보는 방식으로 독서를 택했다.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책을 들었다.
어떤 일을 하든 그와 동시에 자신을 돌봐야 한다. 그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운동, 그림이 될 수도 있고 글쓰기가 될 수도 있다. 나 또한 독서와 또다른 것들이 더해지고 있다. 비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생각된다면 나만의 씨를 뿌릴 곳을 찾아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날고날아 어느새 알 수 없는 불길에 던져져 소멸될 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