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큼 강했던 책
치열했던 한 학기가 끝났다. 친구들과 함께 ‘우린 하루살이야. 하루 버티기 힘들다.’라며 투덜거리던 학교생활이 쉼표를 맞이했다. 방학을 하면 무엇을 할지 방학 계획을 다들 세우는데, 그중 당연 인기는 독서이다. 가장 흔하면서도, 쉬운 것. 그러면서 또 어려운 것. 나도 이번 방학에는 많은 책을 읽고 교양을 쌓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짐의 시작은 바로 이기호 작가의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라는 책이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둘러보니, 모든 책들이 다 재미있어 보였다. 대체 어느 책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러다 결국 나는 베스트셀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제목이 내 마음에 와 닿는 책을 찾고 싶었다. 그게 바로 이 책이었다. 나는 쓸데없는 고민도 많고, 작은 일에 크게 걱정하는 성격이다. 이기호 작가가 말하는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은 성격의 정반대인 것이다. 나는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꺼내 들었다.
이 책은 독서와 가깝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짧은 소설 40편이 묶인 책이다. 그러나 소설 길이가 짧다고 얕보면 안 된다. 짧다고 내용도 가벼운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면서도, 다 읽고 나면 마음 한 구석을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든다. 자기 전,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대고 즐겁게 책을 읽다가 불을 끄고 누우면 다시금 생각나는.. 그런 책이다.
특히 내겐 ‘불 켜지는 순간들’ 에피소드가 가장 여운을 주었다. 여운과 함께 날카로운 일침을 주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1956년생 김길부 씨는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다. 그 뒤 검은 양복의 사나이가 장부를 읽으며 그를 한 건물의 304호로 들여보낸다. 김길부 씨가 이 정도면 저승도 살만하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방의 불은 꺼진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수십 일이 지난 어느 하루, 불이 켜진다. 그리고 검은 양복의 남자는 말한다. “이건 우리가 선생에게 주는 벌이 아닙니다. 우리도 선생처럼, 마음 편히 선생을 모시는 거지요.”
“선생은 어머님께 얼마 만에 한 번씩 찾아갔습니까? 딱 그 주기에 한 번씩 선생 어머님 마음에도 불이 켜졌겠지요. 여기도 이승과 똑같습니다. 그럼, 전 이만.”
짧은 에피소드의 마지막 문장이 내 머릿속에 어마어마한 파도를 불러일으켰다. ‘이게 이기호 작가의 이야기구나.’하고 느끼게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웃음을 유발하는 재치 있는 에피소드들도 있고 허무맹랑한 에피소드들도 담겨있다. 방학을 시작한 대학생들도, 삶의 여유가 필요한 직장인들도, 항상 고생하시는 우리 엄마 아빠도. 함께 이 책을 읽고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밤, 나는 한 번 더 이 책을 손에 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