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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미 Dec 29. 2019

스무 명이 저녁을 먹는 집

늘 사람들로 가득하고 불 냄새가 나던. 

 내가 살던 지리산 집은 '손님 초대를 즐기지 않는 집 중에서 가장 많이 손님을 맞는 집', 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서울에 살 때는 생일파티 한 번도 집에서 해 본 적이 없었고 집에 친구를 데려온 일 자체가 드물었다. 내가 친구와 함께 논 곳은 주로 동생이 입원해 있던 병원이나 친구의 집, 동네 골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에는 나 보다 일곱 살 어린 동생과 청결에 대해 민감한 엄마가 있었다. 한 번은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가 현관에서 신발을 신을 때 맨발로 현관으로 나간 뒤 신발을 찾아 신는 모습을 엄마가 목격했는데 친구가 간 뒤에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녀미도 현관에 나가서 신발 신니?" 


 그러니까 엄마의 이야기는 현관은 신발을 신는, 곳이지 갈아 신는 곳이 아니라는 거였다. 그러니까 그리 넓지도 않은 현관에서 바닥을 떠난 발이 곧바로 신발 속으로 들어가면 되지 현관 바닥을 디딘 후 신발로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거였다. 우리 엄마는 그렇게 쓸고 닦고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바닥에 뭔가가 떨어져 있거나 제자리에 있지 않은 물건은 못 보는 성격이었다. 바닥을 떠난 발이 신발 속이 아닌 현관을 서성이는 모습을 엄마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여하튼 그렇게 사소한 것이 깐깐한 주부가 관리하는 집에서 맘껏 놀기란 어려웠고 심지어 우리 집에는 가지고 놀만한 장난감이나 학용품도 많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이런 단어가 흔히 사용되지 않았지만 우리 엄마는 '미니멀리스트'였다. 같은 용도의 물건 두 개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 운동화를 새로 사면 원래 신던 것은 버려졌다. 크레파스 중 몇 가지 색이 부족해져서 새로 사면 원래 쓰던 것은 어느샌가 사라졌다. 잘 사지 않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 잘 버리는 미니멀리스트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친척들이 집에 놀러 오기라도 하면 또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곰인형도 큰 것 작은 것 하나씩, 쥬쥬인형도 하나, 불어펜도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굳이 친구를 초대하지 않았고 친구도 굳이 우리 집에 놀러 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우리가 지리산에 내려가 그곳에 살던 삼촌네 식구와 집을 합치게 되면서 엄마의 살림 생활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식구는 여덟이 되었는데 식기와 수저는 서른 벌은 족히 넘었다. 부족한 것은 식탁 의자뿐이었고 그 외의 모든 게 많았다. 이불과 베개도 엄청나게 많아서 친구 열명을 불러서 베개싸움을 할 수도 있었다. 거의 스무 명이 모여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어도 수저는 어디선가 계속 나왔다. 우리 가족이 가져온, 어지간한 충격에는 깨지지 않지만 깨지게 되면 산산조각이 나는 코렐 그릇들도 다 깨져서 사라지고 삼촌네 가족이 식당을 할 때 썼다는 스텐 밥공기와 플라스틱 국그릇, 반찬그릇들만 한가득 있었다. 찬장에 그 것들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면 일회용품이 연상되곤 했다. 

 

 우리 가족이 이사를 한 후로부터 일 년쯤 후에 할머니까지 오셔서 식구가 아홉이 되었고, 거기에 하숙하듯 함께 사는 삼촌이 두 명이 더해졌다. 다섯 아이들이 먼저 밥을 먹고 난 후가 어른들의 식사시간이었지만 주말에는 도시에 살다 귀촌한 사람들이 으레 겪듯이 아빠나 삼촌의 지인과 그의 가족들이 찾아왔고 평일에도 동네 삼촌들이나 나와 사촌들의 친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서 손님이 없이 우리 가족만 함께하는 저녁식사 자리가 드물 정도였다. 여름휴가철에는 거의 매일 민박객을 받는 느낌으로 저녁마다 목살과 삼겹살을, 낮에는 계곡에서 백숙을 먹는 일이 반복되었으니 손님맞이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신물이 날 지경인데 그걸 즐기지 않는 엄마는 오죽했을까! 이미 엄마는 자신의 살림에 대해 많은 것들 포기한 상태였지만 분명 견디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 또한 살림에 많은 애착을 가지는 사람으로서 가끔 하게 된다. 




 2019.12.26 쿠니와 헤나, 미치가 오기로 한 저녁 식사 자리를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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