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하얗고 이젠 작지 않은 고양이 설기

by 녀미

고양이는 두 살쯤 되어야 슬슬 어른 티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그즈음까지 골격이 자라기도 하는 것 같지만 마치 사람이 군대에 가서도 키가 크고 이십 대 중반까지 체형이 완성되지 않는 경우가 있음에도 대부분의 사람이 얼추 고등학생쯤 되면 외적인 크기(?)로는 성인에게 꿀리지 않듯이, 고양이도 한 살 전에 전반적인 성장은 멈춘다고 한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쑥쑥쑥 자라나는 급격한 성장기는 생후 8개월 정도면 거의 끝난다고 하니 2025년 4월 6일 생인 시루와 설기, 바람이는 얼핏 본다면 다 큰 고양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 나는 바람이가 한 8킬로까지 쑥쑥쑥 자라는 통뼈 왕고양이 이기를 바랬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는 것 같고, 그나마 시루가 한 7킬로 까지는 자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오늘의 시루는 5.9킬로, 바람이는 5.3킬로 언저리, 설기는 4.3킬로. 두 살 반이 넘은 달래가 4.2에서 4.5킬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 설기도 결코 작은 고양이가 아니다. 밥을 준비하고 밥그릇을 내려놓을 때 보채고, 달려들고, 순식간에 그릇을 가장 깨끗하게 비우고, 남의 그릇까지 욕심을 내는 모습을 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지만 6개월 전만 해도 설기는 체중이 오빠들 체중의 절반이 겨우 되는 작은 아기고양이였다.


4월 6일 생인 세 고양이 바람과 시루, 설기는 4주를 꽉 채우고 조금 더 지난 5월 6일에 우리 집에 왔다. 설기가 조금 작긴 했어도 다른 고양이들이 보통 2-3주 차, 빠른 경우 생후 4일 차에 우리 집에 왔으니 거의 다 큰 애들이 와서 수월하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바람이와 시루는 잘 먹는 편이라 별 걱정이 없었다. 시루가 정말 미친 듯이 바람이를 찾아다니며 쭙쭙이를 하는 것 말고는 속을 썩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기가 막히게도 6주 넘어서까지 혼자 쉬야를 못 하니 청소할 것도 많지 않아서 남자 애들은 그냥 대충대충 키운 것 같다.

그런데 설기는 우리 집에 오고 거의 곧바로 잘 안 먹기 시작했다. 잘 먹는 애들이면 젖병의 반 정도인 30미리는 그냥 비울 시기에 설기는 1미리 주사기로 두세 번을 겨우겨우 억지로 먹고 또 쉬는 엄청나게 잘 싸며 체중이 늘지 않아서 나와 빙수의 애를 태웠다.


또 아기고양이 주제에 따끈따끈하지 않고 코나 잇몸이 좀 창백한 편이기도 해서 아주 초반부터 구름이의 캥거루 케어를 받기도 했다. 혼자 두어도, 안아줘도 꾸물거리느라 깊이 자지 않는 설기가 구름이 품에서는 새근새근 깊은 잠을 자서 또 한 번 놀란 날이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 설기는 잘 안 먹었지만 이유식을 시작하고 그나마 체중이 조금씩 늘기 시작하나 했는데, 오빠들과 뛰어다니며 노는 설기 움직임이 좀 이상해 보였다. 오른쪽 앞다리가 아픈지 절면서 걷고 자세히 보니 좀 부어있기도 했다. 지금 찾아보니 5월 14일의 일이다. 집에 온 지 일주일 조금 넘어서이니 정말... 무탈히 보낸 시기가 정말 없다 설기는.


여하튼 활력은 그나마 좀 생겼지만 팔이 아파서 바닥에 잘 딛고 서지도 못하는 설기는 여전히 꼬질한 얼굴에, 살짝 붓기까지 있어서 못생겨졌다. 지금 와서야 (사실은 한 8-9주 무렵부터) 아주 심각하게 예뻐졌으니 하는 말이지만, 나와 빙수는 젖먹이 아기고양이 임보를 하며 총 4마리의 아기고양이를 하늘나라로 보냈는데 그중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하늘나라로 간 두 아가의 얼굴이 한참 아플 때의 설기와 비슷했다. 아무래도 잘 못 먹어서 작고 마른 데다, 감기 같은 걸로 인해서 눈 주변은 부어있는데 볼은 움푹하고 털이 푸석했다. 그래도 설기는 이제 좀 먹으려고 하니 나아질까 싶었는데 5월 말 무렵부터 설기가 먹은 직후에 계속 토를 하기 시작했다.

오빠들은 거의 1킬로를 향해 가는데 설기는 500그램이 되니 마니 하는 와중에, 먹으면 거의 곧바로 웩, 하고 바닥에 게워버리는 것이다. 속이 불편하거나 괴로워보이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열심히 먹고 자고 쑥쑥 자라야 할 이 시기에 영양섭취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애가 크질 않는 느낌이었다. 센터에서 진료를 보고 약을 처방받아 왔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의심되는 이유는 거대식도증이라는 질병으로, 고양이에게서는 매우 드문 희귀병이라고 하는데 식도가 비정상적으로 확장되어 음식물이 위까지 제대로 이동하지 못해 자세에 따라 음식물이 쉽게 역류하는 것이라 했다. 확실한 진단을 위해서는 조영제를 사용해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는데 진단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특별히 쓸 수 있는 약이 없고 영양섭취 부족에 따른 성장 저하, 음식물 역류로 인한 흡인성 폐렴 등의 이유로 평균 수명이 수 년 이내라고 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다. 매일 밤 설기에게 3ml 주사기로 이유식을 먹이고 (스스로 먹으려고는 하지만 혼자 먹을 경우 더 쉽게 토했다) 어깨 위에 올려서 트림을 하게 하게 한 뒤 다시 주사기 하나 분량을 먹이길 반복했다. 그렇게 열 번쯤, 약 30ml를 먹는데 삼십 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 정도가 걸렸고, 그렇게 다섯 번에서 여섯 번 정도를 먹으면 설기에게 필요한 하루 열량을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었다.

가장 마음이 아픈 건 설기가 이제 식욕이 많이 생겨서 많이 먹고 싶어 하는데도 불구하고, 먹으면 바로 속이 불편하고, 몸을 세워서 트림을 시키지 않으면 거의 늘 토하는데 토한 것을 바로 먹으려고 달려들 만큼, 늘 배가 고픈 상태라는 것이었다. 늘 배고프지만 속이 불편해서 설기는 주사기로 한 번을 먹으면 알아서 어깨로 올라와 스스로 편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지경이 되었다. 고작 7-8주 되는, 심지어 체중은 생후 5주 정도 고양이와 비슷한 이 작은 고양이가, 배가 고픈데도 알아서 주사기로 한번 먹고 어깨 위로 올라오고, 또 한 번 먹고 어깨 위로 올라오고를 반복하며 밥을 먹다니. 가슴과 어깨 사이에 엎드려 가쁜 숨을 쉬는 설기를 톡톡 쓰다듬으면서 느슨한 식도에 정체되어 있을 이유식을 내려 보내다 보면 설기가 갑자기 그릉그릉 대기를 시작하는데 그때가 바로 속이 편해진 때이다. 그때 다시 주사기로 하나를 더 먹일 수 있다. 그마저도 편하게 엎드려 먹이는 것이 아니라, 쿠션이나 옷더미에 설기를 올려 거의 뒷 두 발로 서다시피 하게 해서 먹여야 한다. 내 손가락만큼 가는 다리가 달달달 떨린다. 심지어 설기는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하나 없다. 이 작은 고양이는 어찌 된 게 짠하지 않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한 번이라도 밥을 더 먹이려고 늦은 시간까지 버티다 마음이 무너져 설기를 안고 울고, 인터넷에서 거대식도증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들의 글들을 읽으며 울기를 반복한 날들이 많았다.


https://brunch.co.kr/@lnw9136/98


이 글도 그렇게 설기를 안고 밥을 먹이다가, 울다가 했던 날에 썼다.

저 사진 속의 모습처럼, 저렇게 설기를 안고 찍은 사진과 영상이 엄청나게 많다. 밥을 먹을 때마다 어깨에 올라와 소화를 시켜야 했던 설기는 가슴 위나 어깨에 올라와 있는 걸 무척 좋아하는 사랑둥이 애교쟁이 고양이가 되었다.


위의 글에 '설기가 커다란 어른 고양이가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라고 적으며, 성질이 있어서 말대꾸가 많은 고양이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썼는데 적어도 9개월을 향해 달려가는 설기는 그렇지 않다. 여전히 사랑 많고 애교 많은 고양이인 건 예상 그대로다. 많이 무거워져서 어깨 위에 한참 올리고 있기에 버거운 것은 감히 내가 상상하고 싶고 간절히 바래왔던 딱 그대로이다. 아주 개구지고 궁금한 게 많은, 식탐이 유난히 많아서 밥을 많이, 빨리 먹는. 그러나 이젠 내가 안아주지 않아도 토하지 않는 고양이로 훌륭하게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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