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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고 작은 고양이 설기.

by 녀미

무릎에서 설기가 반쯤 잠이 들었다가, 깼다가를 반복하며 그릉그릉 거리고 있다.

지금은 새벽 열두시 반. 자기 전에 설기 밥을 한번 더 먹이고 약을 먹이려다가 설기가 잠에 드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 머리가 덜 말라서 조금 춥고 발도 시리지만 (6월임에도 불구하고) 무릎에 있는 설기가 따끈해서 우선은 버티는 중인데, 곧 설기를 깨워서 밥도 먹이고, 싫어하겠지만 약도 먹이고, 트름도 시키고, 체중도 재고 따뜻한 잠자리로 보내야 한다. 이젠 낮에 깊은 잠을 오래 자지 않으니 밤에라도 최대한 재워야지.


4월 6일 생이라던 바람, 시루, 설기는 무려 9주 차인 지금까지도 건사료 먹는 방법에 대해 배우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렇게 늦게까지 오직 습식만 먹은 애기들이 있던가...? 어쩌면 올라빵빵두 정도는 그랬을 지 모른다. 하지만 뭐든 늦게 늦게 배웠던 그 애기들과 달리, 이번 떡 애기들은 화장실 사용법을 전혀 헷갈리거나 실수하지 않고 단번에 해냈는데 이건 왜일까? 물론 이 떡들은 약 6주차가 될 때 까지도 혼자 쉬야를 못하는 놀라운 기록을 보여주기는 했다. 특히 설기는 정말 6주를 꽉 채우고 나서야 시원하게 혼자 볼일을 보았으니 그건 그거대로 놀라운 일이다.


시루는 아마도 1100, 바람이는 오늘 마지막으로 잰 체중이 1040 언저리. 설기는 낮에 체중이 565까지 떨어졌다. 정말 시루의 반 만한 것이다. 열심히 먹여놓으면 590 즈음까지 올라가기도 하는데 또 한번 와다다다 놀고 시원하게 쉬야 하고 응아 한번 하고 나면 체중은 다시 제자리이다. 잘 놀고, 잘 싼다는 것이 무척이나 다행이지만 조금만 더 잘 먹어주면 어떨까 설기야?


오늘 설기는 내 요거트를 핥고, 더 먹겠다고 두 발로 서서 종종대고, 치즈 냄새를 맡고, 빈 그릇을 핥고, 내 쿠키를 앙, 하고 물었다. 밥 말고는 참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이 작은 아기고양이를 어쩌면 좋을까. 3미리 주사기로 한 번, 심지어 그 마저도 쬐끔은 남기고 먹은 뒤 몇 분이나 안고 등을 쓰다듬어 주어야 하는 우리 설기는 상위 1퍼센트 어리광과 애교를 가진 아기 고양이이다. 몸이 약해서 생존에 유리하도록 귀여움을 더 많이 갖고 태어난 건지, 체중은 늘지 않지만 그래도 한 주 한 주 지날수록 얼굴도 더 예뻐지고 사랑스러운 행동을 많이 해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얘를 어쩜 좋지... 어디에 보내지...' 걱정하게 된다.


잠에서 잠깐 깬 설기에게 주사기로 하나를 더 먹이고 체중을 재니 560. 9999, 오늘 두어번 토를 해서 그런가. 저녁에 많이는 아니어도 조금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체중이 또 줄어있어 심란하다. 더 먹이려 해도 싫어해서 우선 약을 먹였다. 다행히도 약 먹는 것에는 많이 적응을 한 것 같다. 약이 쓰지 않고 양도 0.05밀리리터 밖에 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생각해 보니 도시락을 싸야 했다는게 떠올라서 설기를 상자에 두고 혼자 자게 하려 했는데 자꾸 나와서 어정쩡하게 오도카니 앉아있는 모습에 어쩔 수 없이 폭신한 방석에 애를 둘둘 말아서 한 손으로 안고 밥을 하고 야채를 볶았다. 얼른 잠에 들었으면 해서 불도 다 끄고 주방 후드 등 하나만 켜고 그러고 있자니 왠지 아기엄마가 된 기분이기도 해서 정말 얘를 어떻게 다른 집에 보내지, 싶었다.


설기가 커다란 어른 고양이가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것저것 사람 음식에 기웃거리며 유제품을 탐하는 식탐 고양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어김없이 그때도 어리광이 많을 텐데 하도 가벼워서 어깨 위에 올리고 한참동안 있을 수 있는 지금과는 달리 좀 성가시기도 하고 어깨가 뻐근하기도 하겠지. 조그마한 녀석 주제에 제법 성격이 있으니 혼낼 때마다 말대꾸를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며 배신감을 느끼겠지....

이렇게나 작은 설기가 얼마나 크게 자랄 지는 모르지만, 여튼 이 오백그램 남짓의 작은 고양이의 먼 미래를 응원하게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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